2024,November 23,Saturday

고전에서 길어 올린 ‘깊은 인생’- 오, 나의 Mountain fever

고국의 내 산우山友들이 일주일간 설악엘 들어간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들은 설악으로 가는 떨리고 흥분되는 마음을 감추지 않고 찍은 사진을 보내왔는데, 나는 분했다. 분함은 설악을 향한 내 마음이 그리움의 한계를 넘어섰기 때문일 테다. 그것은 오랫동안 가지 못한 미안함도 아니고, 부드러운 바위를 한없이 어루만지고 싶은 애틋함도 아니고, 산과 몸 섞고 싶은 희한한 욕망도 아니다. 그 마음의 기원은 그렇게 하고 싶지만 할 수 없고 꿈에서라도 만나고 싶지만 만날 수 없다는 속수무책의 무참함인 듯싶다. 아, 나는 왜 베트남에 있는가!

한 주간의 겹치고 쌓인 抑鬱억울의 상태에서 한때 생사를 함께 넘나들었던 그들의 밝은 표정을 사진으로 보는 일은 잔인한 것이었다. 그들은 지금 설악에 있지 않은가, 당장 비행기로 쏘고 싶은 마음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것을 어렵게 참고 눈을 감는다. ‘아아! 지금쯤 오세암의 양지쪽엔 곰취나물이 얼마나 널렸을까. 쌍폭 아래 산다래는 얼마나 구성지게 영글었을까. 가야동의 다람쥐는 또 얼마나 토실하게 살이 올랐을까.’ 내가 세운 희운각 아래 케른은 지금쯤 사늘한 골짜기에 혼자 서서 화려한 여름, 나와의 재회를 기다리고 있겠지. 천화대 끄트머리 왕관봉에 내 땀은 말랐을까. 석주길 칼날 암봉을 넘나들던 안개는 그날 내가 불러재꼈던 노래를 아직도 메아리로 머금고 있을까.

설악의 비선대 정면에 보이는 장군봉을 오를 때 나는 생각했었다. 사지를 바위에 착 붙이고 몸 뚱아리 떨어질까 걱정하는 꼴이 내가 사는 비루한 삶의 눈물겨움과 다를 것이 없다고. 장군봉 옆 붉게 솟은 적벽을 오를 땐, 승모근과 전완근에 전해지는 혈류가 쌓이는 젖산을 막으려 안간힘을 쓰는 마이크로 세계의 눈물겨움이 내 삶에 그대로 포개어진다. 그러나 나는 그 눈물겨움에도 꿋꿋하다. 제 고통의 업식業識이 무언지도 모른 채 가끔씩은 뜬금없이 행복해하기도 한다. 중력을 배반하고 있다는 일탈의 기쁨, 오르다 솜다리(에델바이스)를 만나는, 우연에 기댄 기쁨처럼.

무릇 조건 지어진 것들의 삶은 슬프다. 슬픔을 이기지 못할 때 설악에 들어서면 설악은 와락 나를 껴안는다.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척박함에 뿌리내리는 나를, 자신이 품고 있는 바위와 솜다리와 같이 한치의 차별도 하지 않고 나를 껴안는다. 설악의 바위를 오르다 팔뚝에 힘이 떨어져 동백같이 힘을 놓아버릴 때까지. 딱딱해진 전완근이 힘을 다할 때, 추락을 앞두고 머리 위를 지나는 천정의 바위를 본다. 우주처럼 한정 없다. 절벽 밑으로 늘어진 자일을 본다. 허공에 흔들리는 모습이 이토록 자유로울 수 있는가. ‘떨어지자. 떨어지자.’ 그 옛날, 총탄의 소나기 속을 뚫고 가며 했던 인디언의 말을 빌려 말한다. ‘죽기에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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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카!’

추락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죽음의 지대’로 들어가는 천국의 빛으로 가득하리라, 떨어지는 몇 초간은 귀청을 때리는 침묵 속에 아름다운 음악 한 줄 흐르리라. 그러나, 바위 꼭대기에 기어코 올라 500m를 수직으로 뻗은 벽을 한갓 꿈처럼 내려다본다. 오르기 전의 두려움은 이제 피투성이가 된 손가락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땟물과 피가 섞여 있고 손은 덜덜 대며 떨고 있다. 찢어진 손톱 밑을 애써 무시하고 무릎을 엑스자로 껴안는다. 멀리 화채능선에 깔리는 장밋빛 노을에서 시선을 때지 못한다.

‘누가 일러 산사나이를 리얼리스트라 부르던가. 그가 설령 빈틈없는 계획을 짜내고 장비의 무게와 지도상의 거리를 측정하고 계산하며 실제적인 모든 준비를 갖추어 미지의 꿈을 현실화 해내는 용의주도한 실무가라 할지라도 그를 그렇게 몰아가는 근본 동기는 바로 이 그리움이며 설렘이 시키는 것이니 그럴 수만 있다면 한번 그의 가슴의 문을 열어 보라. 몽몽한 김이 서리는 활화산일 것이 분명하다. 알고 보면 바위꾼은 타고난 로맨티스트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나는 故김장호 시인은 쓴 존 메이스필드의 시 ‘바다에의 열병 sea fever’를 산으로 바꾸어 쓴 시를 좋아한다. 그의 희문 혹은 페러디에 내 설악을 향한 그리움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

그 외로운 봉우리와 하늘로 가야겠다.

묵직한 등산화 한 켤레와 피켈과 바람의 노래와 흔들리는

질긴 자일만 있으면 그만이다.

산허리에 깔리는 장밋빛 노을과 동트는 잿빛 아침만 있으면 그만이다.

나는 아무래도 다시 산으로 가야겠다.

혹은 거칠게, 혹은 맑게, 내가 싫다고는 말 못할

그런 목소리로 저 바람 소리가 나를 부른다.

흰 구름 떠도는 바람 부는 날이면 된다.

그리고 눈보라 속에 오히려 따스한 천막 한 동과 발에 맞는 아이젠,

담배 한 가치만 있으면 그만이다.

나는 아무래도 다시 산으로 가야겠다.

칼날 같은 바람이 부는 곳,

들새가 가는 길, 표범이 가는 길로 나도 가야겠다.

껄껄대는 산 사나이들의 신나는 얘기와 그리고

기나긴 눈벼랑 길이 다하고 난 뒤의

깊은 잠과 달콤한 꿈만 있으면 그만이다.

 

-故김장호,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

아직은 팔 다리가 성한, 그리하여 아직은 야성이 가시지 않은 그대에게 권하노니, 바위로 가자!

 

 

장재용

E-mail: dauac9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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