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베 당모베’는 마술 주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는 베트남, 당신이 모르는 베트남’이라는 말의 축약어로 작년말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본사 방문 시에 가진 세미나의 제목입니다. 우리가 베트남을 잘 아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바로 알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곳에는 사업이나 생활로 오랜 시간 머무신 분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는 뭘 좀 아는 것 같지만 일을 당해보면 밑천을 금세 드러내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자기가 보았거나 경험한 정도 외에는 알지 못해서입니다. 그래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개인적인 관계의 일이라면 어쨌든 문제가 될 게 없습니다. 문제는 의도를 가지고 편협한 지식과 일면의 경험을 가지고 마치 전체의 사실인 것처럼 포장하는 이들입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사실을 호도하며 이를 돈을 벌기 위한 도구로 사용합니다. 주머니의 이익을 위해 작은 사건을 침소봉대 하거나 자극적인 주제로 ‘카더라’ 류의 기사를 남발합니다. 심지어 아예 사실을 모르면서 마치 사실인 듯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가 넘치는 나라의 국민인데 어떨까 하냐마는 그것을 듣고 보는 사람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준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이들을 걸러낼 분별의 지식이 필요합니다.
분별이 부족해서 얻는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의 몫입니다. 2008년의 상황을 기억하시는 분이 계실 줄로 압니다. 그때를 떠올릴 때마다 이 교훈을 가슴에 새깁니다. 코로나바이러스와 같이 그런 일은 모양새를 달리하여 언제든지 다시 벌어집니다. 이 때에 겪었던 우왕좌왕했던 어리석음을 다시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분별하여 알아야’ 합니다. 그것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생활도 베트남에서 하고, 돈도 베트남에서 버는데 베트남이 실제 어떤 곳인지 알고자 하는 노력이 부족해서 당하는 일이라면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 회사도 베트남에 상당 수의 프로젝트가 있고 여기에 투입되는 인력 역시 상당함에도 관광지 방문하듯 베트남을 여기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알도록 관심을 이끌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마침 대표이사의 권고로 세미나를 열게 되어 급히 제목을 잡은 것이 바로 ‘우아베 당모베’였습니다. 알아보자는 것이지요.
베트남을 대하는 방식은 대개 세 부류 정도의 입장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관광객 모드, 둘째가 주재원 모드입니다. 관광객은 잠시 흘러가는 이이고 주재원은 경험은 하되 머무는 시한이 정해진 사람들입니다. 기업에 속해서 특정 분야에서 일하게 되니 전문적이라는 장점도 있지만 그 외의 세계에 대하여는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 한 제한적입니다. 세번째가 생활의 터전이 된 사람들입니다. 일상의 사건사고들을 함께 겪으며 사회와 사람들에게 관심을 두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갖는 정보는 어떻게 구별될까요? 쌀국수를 대상으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관광객에게 쌀국수는 단지 ‘퍼(phở)’입니다. 퍼가 곧 쌀국수이지요. 그러니까 퍼 이외의 쌀국수에 대해 생각하지 않습니다. 주재원은 쌀국수가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하노이로 출장으로 가보니 퍼 맛이 남부와는 어딘지 다르다는 것도 압니다. 퍼 외에도 매운 맛의 ‘분보후에(Bún bò Huế)’, 시원한 ‘후띠우남방(Hủ tiếu Nam Vang)’ 정도가 있다는 것도 압니다. 오랜 산 교민들은 더 깊이 알겠지요. 거기에 알고자 노력했다면 고명과 육수의 차이를 가지고 지역의 쌀국수를 구별하는 법과 북부의 쌀국수가 남부로 전파된 내력에 대해서도 설명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가 많이 쓰는 ‘앰어이(Em ơi)’라는 호칭도 그렇습니다. 관광객들은 이것이 어린 여성을 부르는 말, 특히 식당 등에서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대명사로 착각합니다. 주재원들은 이것이 남녀 불문하고 자기보다 어린 사람을 가리키는 호칭인 것을 압니다. 오래 산 분들은 이 호칭이 자기를 낮춰 부를 때도 사용할 뿐 아니라 더 공부한 분들은 이 호칭에 의해 사회적 관계가 결정된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여기서 관광객, 주재원, 알고자 한 교민으로 구분하는 것은 흥미를 갖기 위한 방법이니 본인이 이런 범주와 다르다 하여도 너무 흥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보다 깊이 들어가 보면 어떨까요? 예를 들어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베트남 사람들은 왜 미안하다는 말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을까요? 왜 때에 걸맞지 않는 어정쩡한 미소로 오히려 피해를 당한 상대방 외국인의 울화를 돋울까요? 왜 베트남 사람들은 직장에서 형, 동생, 누나 하는 거지요? 왜 오래전 이혼한 남편이 자녀의 결혼식에 스스럼없이 나타나 축하를 할 수 있을까요?
문화적인 측면만이 아닙니다. 코로나바이러스 상황을 겪으면서 도시가 통제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A라는 도시에서 B라는 도시로의 이동은 가능한데 왜 B도시에서 A도시로 이동하는 것은 어려울까요? 소방 법규가 바뀌었는데 왜 내가 있는 지역은 구법의 적용을 받지요? 베트남도 아파트시장이 폭발할 것 같은데 정말로 그렇게 될까요? 오해는 마십시오. 제가 답을 안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근거를 두고 해석해 볼 수는 있습니다.
통상 해석의 도구로 가장 쉽게 접하는 정보가 ‘경제’입니다. 그러나 경제 분석만으로 베트남을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자칫 맞지 않는 답안지를 가지고 정답을 확인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럼 이런 일들을 이해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통된 특성들이 있지 않을까요?
저는 베트남을 이해하기 위한 근간을 다섯 가지 코드로 정리합니다. 하나는 농경문화를 바탕으로 한 마을 단위의 공동체 문화입니다. 중국의 문화 영향을 받은 점과 오랜 식민지 생활 중의 문화 영향, 그리고 전쟁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국가의 정체성과 비전도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민족성을 들춰볼 때 실마리를 주는 것이 신화와 전설입니다. 특별히 신화와 전설은 정제되지 않은 코드라 할 만합니다. 그래서 베트남의 비밀을 여는 감춰진 커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베트남을 바로 알고자 하는 노력은 나와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사건이 벌어질 때 요동치 않게 하고 나를 보전하며 우리를 지속하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그 결과의 열매는 모두가 향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알고자 하는 노력의 첫 단추는 상대의 입장에서 헤아리는 것과 마음을 여는 것으로 꿰어져야 합니다. 나쁘다고 불평하기보다는 숨은 가능성을 헤아리고 어지러움 속에서 질서의 끈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것이 남의 땅에서 삶을 사는 사람들이 그 땅의 사람들과 함께 미래를 나눌 수 있는 방법입니다.
/夢先生
박지훈
건축가(Ph.D),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정림건축 동남아사업단 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