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이 올해로 30년을 넘겼습니다. 1992년 1월 1일자로 첫 사령장을 수령했을 때만해도 이 생활을 이토록 오래 하리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이면 독립해서 아뜰리에를 꾸리며 나름의 건축관을 세워가리라는 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삶은 계획한대로 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 길을 계획했을 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잠언의 말이 딱 맞습니다. 내 앞의 길이라고 해서 내 맘과 뜻과 계획대로 되어지지 않습니다. 사람을 만나고 사건을 겪고 마음과 생각이 변하면서 모든 길의 방향이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유학을 고민하다 2, 3년 몸 담을 요량으로 대형조직설계회사를 들어간 것이 결국 이 자리에까지 이르렀으니까요. 마치 북경의 나비가 날개를 쳐서 일어난 바람이 LA에 허리케인이 되어 불어 닥치는 것처럼 작은 하나하나의 선택들을 거치며 걸어간 길은 이제는 넓은 골짜기를 사이에 둔 것처럼 애초의 생각과는 너무도 달라져 건너갈 수 없는 길이 되어버렸습니다.
프로스트(Robert Frost)가 쓴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는 그래서 우리의 고개를 끄덕이게 합니다.
그 마지막 연을 기억해 보면 이렇습니다.
” 먼 훗날 나는 어디선가 한숨 지으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제가 선택하여 걸은 숲의 길, 여러 사잇길을 택하여 걸었던 자취가 제 이력이 되었습니다. 숲길을 걸으며 가졌던 생각이 저를 만들고 덤불을 헤치던 그간의 경험이 제 역량이 되었으며 개울을 건너던 경력이 제 배경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러한 생각과 경험과 경력을 통해 지금의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하고요.
30년을 한 길을 걸었다면 그 일의 전문가라 할 만 합니다. 그럼 저는 전문가일까요? 많은 지식과 경험, 현장에서 만나는 고민 속에서 사고의 깊이는 깊어지고 보는 시야는 넓어져서 과거의 추이를 바탕으로 현상을 관찰하고 미래를 예측해 볼만한 정도가 되었을까요? 주소록을 빼곡히 채운 인맥들이 정말 내 힘일까요? 직장을 통해 만난 적지않은 사람들과 부딪히며 쌓아간 세월로 사람들에게는 신뢰의 더미를 쌓고 있었을까요? 감히 끄덕이지 못했습니다. 그냥 눈만 끔벅일 수밖에요. 그렇다면 지난 30년은 무엇이 되어 있는 걸까요?
문득 그 일의 세월이 바람에 너울 날리듯 날렸습니다. 그 아래 감춰진 얼굴들이 슬쩍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살아온 아주 평범한 일들이 보였습니다. 웃고 울었고, 아프기도 했지만 격려했던, 고민하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했던, 크지도 대단치도 않았던 작은 일들 속에서.
아, 그런 것이었나 봅니다. 30년이라는 세월이 가치를 가진다면 그 정체라는 것은. 직장의 그것을 통해 무엇을 이루어 낸 결과치가 아니라 일을 계기로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 속에서 쌓아간 ‘관계(關係)’였나 봅니다. 단지 업무상의 네트워크를 넘어서는 끈끈한 인연의 틀, 그 관계의 단단함, 그 관계의 깊음, 그 관계의 바름이 지난 세월을 평가하게 하나 봅니다. 그러니 어떤 사람은 큰 회사에서 큰 권위와 높은 연봉으로 영화롭게 은퇴했음에도 그 즉시 모든 관계망이 사라져 외톨이와 같이 되는 이가 있고 어떤 이는 그렇지 않는 것이 이해됩니다. 우리의 끝이 성취에 있지않고 관계에 있기에 그러할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30년 되는 것이 또 있습니다. 베트남과 한국 간의 관계가 그렇습니다. 1992년 12월 22일에 양국이 공식 수교했으니 이 또한 올해로 삼십 년이 됩니다. 그 기간이 짧지 않듯이 두 나라 사이에도 많은 것들이 변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로 발전했습니다. 국가정책적으로는 2017년 말부터 신남방정책의 중심이 되었고 무역과 투자와 같은 경제협력분야만 아니라 교육, 문화, 관광, 체육. 과학기술과 같은 분야에 있어서도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뤄가고 있습니다. 발전의 객관적인 지표들을 만들어가는 실질적인 힘은 인적교류에 있습니다. 베트남에 들어오는 한국인들, 한국으로 들어가는 베트남인들의 수는 우리가 다른 나라에서 보는 양상과는 사뭇 다릅니다. 거기에 수많은 ‘가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젊은 부부들 가운데에도 한베가정을 쉽게 접할 수 있으리 만큼 양국 관계는 특별하게 묶여지고 있습니다. 이들의 존재,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2세들은 두 나라를 연결하는 굳건한 다리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양국의 국민 관계가 지금과 같이 되리라고는 처음 수교 당시만 해도 상상도 하지 못했겠지요.
수교 30년이 진정한 의미를 갖는 것은 한 세대를 헤아리는 관계 속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숫자의 성장이 아니라 결실을 이룬 나무의 덮인 흙 아래 감추어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넓고 깊게 뻗어가는 뿌리의 연결로 인해서 입니다. 이 특별한 관계의 형성은 그 속에 울고 웃은 애환의 수많은 이야기들을 얼키설키 알처럼 품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캐어내어 드러날 때가 바야흐로 다가온 듯 합니다.
이렇게 보니 직장이나 수교나 삼십 년이 된 두 사건에는 동일한 맥락이 있습니다. 보이는 것 뒤에 감춰진 관계의 힘이 그 세월을 키워나간 실질적인 동력이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개인으로도, 제가 머물고 있는 베트남도 서로의 관계에 삼 십년이 되어가다 보니 무언가를 할 궁리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때맞춰 가까운 대학 교수님으로부터 베트남의 청년들과 한국의 기업을 연결해서 서로의 문화를 알게 하고 이해의 폭을 좁히기 위해 가치 있는 일을 해보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함께 관계망을 검토해 서로를 연결해 보기로 했습니다.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합니다.
사사롭게는 여기저기에 올리는 프로필도 고쳐 쓸 때가 된 듯합니다. 삼십 년을 지냈으니 앞으로는 습관처럼 회사 이름과 직책을 배경으로 삼던 데에서 벗어나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아 가는가를 프로필로 삼아야겠습니다. 더 나아가 할 수만 있다면, 앞으로 무엇을 하면서 남은 삶을 살겠다는 내용도 넣어보자는 생각도 해봅니다. 회사나 지난 성과가 나를 보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하는 일로써 스스로를 보증할 때가 되었다 싶습니다.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예수께서 당신을 알릴 때 내가 하는 일을 보아서 나를 믿으라고 했던 것처럼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 夢先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