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에 입학해 보니 일년 내내 학교의 선생님들만 가르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범대학에 다니는 대학생들이 졸업 전 한달 동안 현장실습을 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교생실습 제도입니다. 제가 다니던 시골 중학교에는 청주사범대학의 대학생들이 교생으로 왔습니다. 그 가운데 한 분과 학교에서의 어떤 이유로 시내에서 만나게 되는 기회가 여럿 있었습니다. 그런데 같이 다닐 때마다 그 분이 하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좌판 노점상 또는 불구의 지체로 구걸하는 어떤 분을 맞닥뜨렸을 때와 같은 경우였습니다.
“무슨 생각을 해?”
열 세 살의 소년에게는 버거운 질문이었습니다. 대개의 경우에 생각은 커녕 그 자리를 면하고 싶은 불편한 장면들이기 십상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생각을 하는 것은 관심과 연결된다는 것을 그 후에 한참을 지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그 교생 선생님은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듯 합니다. 그리고 제 관심이 어디 있는지 듣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어려웠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하지?’
고민할 수밖에 없던 것은 제 관심사가 아니었던 탓입니다.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관심사가 있습니다. 그 관심사에 생각을 두고 삽니다. 골프를 좋아하는 이는 어떻게 머리를 고정할까로 생각이 깊고, 술 좋아하는 이는 해만 떨어지면 잔 부딪칠 생각을 머릿속에 찰랑찰랑 채웁니다. 사람이 무엇에 관심을 두고 살아가는지 알기는 생각보다 쉽습니다. 그의 말로 드러나니까요. 건강에 관심이 깊은 사람은 어느 자리에서든 건강을 말하고 투자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관계된 일을 말하기 마련입니다. 마치 항아리에 생각이 차면 넘치는 원리와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말이라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자기의 생각을 드러내는 직접적인 통로가 됩니다. 내가 무엇에 관심을 두고 사는지 보여줍니다. 그러니 말을 다듬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이 말이라는 친구는 도무지 길들이기 어려운 야생마 같습니다. 내 입에서 나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다루기가 쉽지 않습니다. 말을 사랑해도 입을 떠난 말은 많은 경우에 후회 만을 안겨 줍니다. 그러니 오죽하면 선현들이 많은 말은 허물을 면케 하기 어렵다고 가르칠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은 중요합니다.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마음을 움직이고 변하게 합니다. 그래서 세상에 금과 진주처럼 귀한 것들이 많이 있지만 정말 귀한 보배는 지각 있게 말하는 입이라고 잠언에서는 얘기합니다. 말은 말 자체로 그치지 않습니다. 결과를 가져 옵니다. 다른 이에게 영향을 미칠 말이 아니어도 최소한 말한 사람을 평가하게 합니다. 그의 생각이 어떠한 지를 알게 합니다. 그러니 자기의 말이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가려 말할 줄 아는 것은 지혜입니다. 말이 지혜로우려면 생각이 말이 되어 나오는 것처럼 그 말은 다시 생각의 체로 걸러져야 합니다.
그러려면 말과 생각의 선순환적 메커니즘을 가져야 합니다. 저는 농담 삼아 말은 요추에서부터 발생한다고 얘기하곤 합니다. 요추에서 발원한 말이 척수를 타고 올라가 뇌를 거쳐 상황을 파악하고 적절성 여부를 판단한 후에 발성 기관을 통해 나오는 거라고요. 그런데 뇌를 거치지 않고 목뼈 언저리에 이르러 덜 성숙된 말이 밖으로 나오면 이것이 생각 없는 말, 근거 없는 말이 됩니다. 남 말하기 즐겨하고 부풀리기 좋아하며 말하고 나면 좌중을 불편하게 만드는 경우가 대개 이런 경우입니다. 그러니 목뼈 근처에 말이 도착했다고 그냥 내뱉으면 안됩니다. 호흡을 고르면서 더 위로 올려 보내야 합니다. 그래야 뇌를 통해 걸러내어 생각한 바가 제대로 내보내 집니다. 물론 과학적 근거가 없는 사견입니다.
세상에는 참 말도 안되는 말, 생각 없는 말이 넘쳐납니다. 뇌의 여과 과정이 생략된 딱딱거리는 뼈의 소리라 그렇습니다. 말 중에 가짜 뉴스라는 것이 있습니다. 누가 만든 말인지 몰라도 이 용어는 우리가 얼마나 모순된 세계에서 살고 있나를 알게 합니다. 그러니 분별하는 일이 심각한 기술이 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더 나쁜 경우가 있습니다. 생각 없이 말하는 경우가 아니라 아주 깊은 생각으로 잘못된 말을 의도적으로 하는 이들이 그렇습니다. 생각의 관심이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어서입니다. 아주 나쁜 경우입니다. 그들은 분열시키고 이간질하고 책동합니다. 과오를 포장하고 작은 성과를 부풀립니다. ‘내로남불’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이유도 이와 멀지 않습니다. 남이 할 때는 비난해 마땅하지만 본인이나 자기 편이 그런다면 그럴 수밖에 없는 사연이 있다고 점잖게 보듬습니다.
본질을 흐리려 사람들의 시선을 흐트러뜨리며 사실을 호도하는, 이런 말 잔치의 챔피언이 있습니다. 특히 대선을 맞은 지금과 같은 시기에는 베스트 오브 베스트가 나타납니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는 이들과 이에 줄 서는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그들은 저마다 대한민국을 바로 세운다고 목소리를 높이니 오 년 마다 다시 세워지기 바쁜 나라로서는 경직되어 마비될 지경입니다. 그들의 입은 척추에서 말하는 이들보다 똑똑해 보이나 실상은 더 악한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나 오랜 편가르기에 휩쓸려 너덜거리는 국민들의 귀로써는 분별이 쉽지 않습니다. 모쪼록 이 혼탁한 시대에 하느님이 보우하사 그나마 적합한 사람이 국가의 리더가 되기를 바라 마지 않습니다.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더러운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말을 적게 하는 것이 낫다거나 듣기를 먼저 하라는 말이 있고 그것이 분명히 옳지만, 말은 해야만 하는 것이니 할 수 있다면 말을 잘 하는 것, 바르게 하는 것이 더욱 좋을 것입니다. 그러려면 살펴 생각해야 합니다. 목뼈에서 꺾어져 나오는 말이 아니라 뇌를 거쳐 나오는 말을 사용해야 합니다. 자기의 선호와 관심을 강요하는 말이 아니라 고민하고 나누는 말을 해야 합니다.
투표일이 가까워지니 방송에도 사람들의 대화에도 거친 말이 넘쳐납니다. 목뼈들의 긁어대는 외침이 극성입니다. 그래서라도 평안한 세상이 오면 좋겠습니다만 그리 되지는 않겠지요. 그러니 그저 작은 말, 짧은 말, 또는 비록 날 선 비판의 말일지라도 그것의 결국은 찌르는 말이 아니라 서로를 위하고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데 소용되는 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夢先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