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November 22,Friday

한주필 칼럼-하루 한 줄 채우기

하루 한 줄의 글을 채우며 살기를 원합니다. 

지난년말 한국으로 들어와 추위에 밀려 집안에 꽁꽁 쌓여 지내면서 외부 활동은 완전히 봉쇄를 했습니다. 단지 이 글을 매일 쓰고 있는 것으로 스스로 살아있다는 증거를 만들고 있지요.  

두 달 가까이 꼼짝없이 집에 있으니 생각이 많아집니다. 앞으로 살 날도 그리 많지 않은데 이렇게 죽을 날을 카운트하며 집안에 머물러 있어도 되는지 의문이 자주 스칩니다.  

그래도 제 손이 필요한 운명을 외면할 수는 없으니, 그 운명 속에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은 이렇게 하루에 한 줄의 글이라도 쓰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가 이 시간에 살고 있었다는 증거가 될 터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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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느끼는 일이지만, 글을 쓰는 일은 참으로 지난한 작업입니다. 아무리 오래해도 익숙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노래를 하는 가수들이나 그림을 그리는 이나 연설을 하는 이들은, 있는 노래를 반복해도 되고, 보이는 것을 그려도 되고, 또 하던 말을 되풀이 언급해도 되지만, 글이라는 것은 절대로 같은 글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기본 규칙이 있습니다. 같은 주제나 같은 내용이라 해도 쓸 때마다 달라야 합니다. 매번 새로운 글을 써야 한다는 절대 규칙을 지켜야 하니 아무리 자주 써도, 네버 익숙해진다는 느낌이 안 듭니다.  

그러니 요즘처럼 데일리 뉴스에 한 코너를 맡아 매일 글을 올리는 작업은,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두고 머리에 떨어지는 물방울 밑에 서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언젠가 그 물방울이 돌덩이와 같은 무게로 다가올 것이라는 두려움에 얼른 자리를 피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렇다해도, 이 일을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니고, 그나마 지금 이 일마저 없으면 사는 게 지루해서 물통에 머리라도 처박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마음을 고쳐 먹습니다.  

그러고 보면 만만한게 아무것도 없는 세상입니다. 

하루의 글을 쓰고 나면, 시간이 휑하니 주위를 감싸고 돕니다. 나를 어떻게 채울테냐고 묻는 듯합니다. 

문명의 성공여부는 여가시간을 어떻게 사용했는가에 달렸다고 하는데,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 인 듯합니다. 쫓기듯 사는 시간에서는 새로운 것이 나올 여유가 없지요.  이렇게 주변에 널린 시간을 어찌 보내느냐에 따라 삶의 무게가 달라질 것을 직감적으로 느낍니다.  하지만 여가시간을 잘 활용하는 것은 일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듯합니다. 한번도 여가활용에 대한 공부를 하거나 훈련 받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평생 일이라는 틀에 매달려 살다 은퇴를 하게 되면 그동안 일로 채우던 자리가 비고, 그 넓은 자리를 무엇으로 채울지 모르는 사람들은 생활의 리듬을 잃고 우울증에 시달립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산을 오르며 위로를 받습니다. 산에서 만나는 자연과 사람들을 통해 자신 역시 살아있음을 확인합니다. 그러고 보면 삶이란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작업인 듯합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삶의 승부는 살아있음을 확인하기 힘든 은퇴 후의 생활에서 가려지는 듯합니다. 그동안 가졌던 사회의 허울이 다 벗겨진 상태에서 자유의지만으로 성패를 가릅니다. 앞으로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말입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목표가 사라지고 교감할 수 있는 사람마저 남아있지 않은 은퇴 이후에 진정으로 그 가치가 발휘됩니다. 순수한 날 것의 의지만으로 자신의 생을 살다가 죽을 지,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며 숨지기 전에 미리 죽을 지를 결정합니다. 

해서, 숨쉬고 있는 한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아야 합니다. 성큼 다가온 빈자리를 채울 나만의 시간을 찾아야 합니다. 물론 찾지 못할 확률이 더 많은 줄 압니다. 그러나 그 찾아가는 과정이 살아있는 모습이고, 그것이 살면서 죽는 길이라는 것을 믿기에 오늘도 찾아보려 합니다. 

비록 한 줄이 글이 된다 해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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