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November 23,Saturday

몽선생(夢先生)의 짜오칼럼-슬기로운 격리생활

 

 

창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나갈 수도 없습니다. 빼꼼히 문을 열고 내다보니 복도에 바람만 가득합니다. 비어 있는 듯 보이지만 밖으로 나서면 소독제통을 맨 파란색 방호복으로 무장한 직원이 득달같이 달려옵니다. 문 앞에는 방번호가 붙은 의자만 덩그러니 놓여있습니다. 그렇게 창 밖 풍경을 벽에 걸린 그림 보듯 입국 후 호텔격리생활을 맞았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가르쳐 준 것이 많습니다. 당연히 여기던 일상이 당연히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우친 일을 첫 손가락으로 꼽습니다. 가족과 함께 하는 일조차 당연하지 않았습니다. 현재의 일들이 계속되리라는 믿음이 무너진 것은 충격인 동시에 최고의 깨달음이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사람들이 서로 도우며 함께 사는 가치를 귀하게 여기고 있음도 드러내 줬습니다. 위기 가운데 시간과 재물을 희생해가며 다른 이들을 돕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개인도, 사회도, 국가도 심각한 이기주의에 빠져 있음도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백신 수급에서 극명하게 노출되었습니다. 빈부의 격차는 하나의 사회조직, 하나의 국가 안에서만 발생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나라는 백신이 없어서 전전긍긍하는데 어떤 나라는 더 좋은 효능의 백신을 받겠다고 이미 확보한 백신을 유효기간이 다할 때까지 쥐고 있거나 폐기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빈부 피라미드의 상위에 있는 나라들은 아예 백신이 생산되기도 전에 상당량을 선점해 버렸습니다. 희한하게도 그런 나라의 국민은 백신을 맞지 않을 자유를 주장합니다. 와중에 섭섭한 일도 생깁니다. 외국에서 생활 하노라면 이런 위기에 조국을 바라보며 기대하는데 그 나라는 도무지 나가 사는 백성은 안중에 없는 듯싶으니 말입니다. 그나마 얹혀사는 나라에서 백신이라도 맞게 해주니 위로가 되었습니다. 비록 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효능 떨어진다며 비아냥거릴지라도 말입니다. 그렇게 쌓아 놓을 거라면 진즉 나눠서 좋은 소리라도 들었으면 얼마나 감사했을까 마는 나라나 개인이나 한 치 앞을 내다보기가 어려운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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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굵직한 일만일까요. 격리 중에도 이런 이기성은 눈에 띕니다. 호텔에 격리된 중에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관리팀으로부터 담배를 피느냐는 물음이었습니다. 아마 누군가 냄새가 들어온다고 신고를 한 모양입니다. 그러고보니 제가 머문 방에서도 디퓨저 근처에서 담배냄새를 맡을 수 있었습니다. 문득 예전에 격리호텔에서 담배를 피웠다고 무용담을 외쳐 대던 어떤 분이 떠올랐습니다. 그 분은 호텔 웨이터들에게 돈을 쥐어 주고 처리했다는 얘기를 자랑스럽게 떠벌렸습니다. 그날 저녁식사 자리에서 그 분의 목소리가 밖으로 나갈까 봐, 누군가 제가 그 사람과 같이 있는 것을 볼까 봐 신경이 쓰였습니다. 이제 격리시스템도 안정되었고 흡연 가능한 호텔이 따로 있으니 이런 일이 없을까 했는데 아직 아닌 모양입니다. 누구인지 몰라도 제가 타고 온 특별항공편이 우리 국적기이니 아마 미국이나 영국사람은 아니겠지요.

격리는 바쁜 길에 일시 멈춤이라고 써진 팻말을 만나는 것과 같습니다. 가고 싶은데 억지로 붙들어 놓으니 처음엔 당혹스럽고 다음엔 짜증이 납니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것이 맘에 들지 않습니다.
비용은 비싼데 서류는 왜 그리 많고, 대행사는 무얼 도와주는지도 모르겠고, 행정은 왜 그리 더딘 지 속을 끓입니다. 여름날 잘못 꺼내 입은 겨울 옷처럼 갑갑한데 오미크론이라고 제대로 이름을 달은 변종까지 등장했습니다. 그러니 아직 끝도 아닙니다. ‘With’ 코로나를 선포했던 많은 나라들이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습니다. 격리면제가 시행되었다가 다시 빗장을 거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만이 아닙니다. 베트남도 언제 그리 될지 모릅니다. 어쩌면 이런 일이 반복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베트남에서의 격리기간이 사흘로 단축된다는 소식이 반갑기도 하지만 우려도 그만큼 큽니다. 언제든지 상황이 변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자고 마음을 편히 먹는 것이 차라리 나은 듯합니다.

격리상황을 겪어보니 도시통제 기간 중에 갇힌 생활을 한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 있습니다. 가장 큰 차이는 끝나는 날을 알 수 있다는 점입니다. 격리 종료일이 되니 마치 전역하는 날 같습니다. 이걸 해제? 출소? 퇴소? 무어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만 끝을 알 수 있음이 이렇게 희망이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계획을 세워 보았습니다. 평소에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날이니 할 수 없는 것을 해보는 계획이지요. 사실 계획이라 할 것도 없습니다. 그냥 혼자 있기 연습입니다. 우리의 생활이 얼마나 바쁩니까. 멈춤이라고 쓰여진 통지서를 받았으니 한번 멈춰 보는 연습을 하는 겁니다. 종일 한자리에서 풍경의 변화를 지켜보거나 책상에 앉아 가만히 침묵하고 있는 거지요. 무료하다면 빨래를 하고 그것이 뽀송뽀송 말라가는 과정을 만지며 느껴보거나 창에 카메라를 바짝 붙이고 매일매일 같은 풍경을 찍는 일도 재미입니다. 하루는 구름이, 하루는 햇살이, 하루는 사람들의 물결이 달리 보입니다. 그러면 엉뚱하게도 거기에 자기자신이 서있음을 발견합니다. 단, TV는 꺼야 합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마음을 털어내며 비워가다 보면 사이사이 뜻밖의 소소한 즐거움도 생깁니다. 벨 소리가 울립니다. 문을 열고 보면 과자상자가 있기도 하고 대행사에서 수건으로 접어 만든 작은 인형선물이 있기도 합니다. 호텔측에서는 준비한 격리종료 축하케잌도 있습니다.

이런 일을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면 기쁘고 즐겁습니다. 예측치 못한 벨 소리가 평소 같으면 지나쳤을 일들에 웃음 짓게 합니다.

2021년 한 해가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오른쪽 어깨에는 격리, 왼쪽으로는 통제라는 험한 단어와 어깨동무한 채 날짜를 밟아갔습니다. 새로 맞는 해도 그럴지 모릅니다. 허나 비록 그러할지라도 좀 다르게 맞이해야겠습니다. 이젠 멈춘다는 것이 무언지 연습도 해보았으니까요. 그래서 새해에는 격리도 통제도 낯설어 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품을 넓혀 나와 주변을 돌아보아야겠습니다. 내가 누리던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 그 모든 것이 선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감사함으로 살아야겠습니다.
가끔은 격리를 하듯이 잠시 멈추는 것도 괜찮아 보입니다. 완벽하게 혼자인 공간에서, 찡그린 안면근육들을 펴서 다시 미소를 만들고, 시간을 세운 채 자신과 생활을 돌아보는 일, 잊어버린 단순함과 잃어버린 생각의 깊이를 되찾는 일, 새로이 맞는 해에는 멈춤이 준 익숙하지 않은 아픔이 굳은 살이 되어 넉넉하게 품고 지내 보낼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이것이야 말로 격리기간이 선물한 슬기입니다.

夢先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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