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책을 손에 들고
다섯 번째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표지에는 ‘Park tiên sinh sống giữa Sài Gòn’ 이라는 제목이 베트남어로 인쇄되어 있습니다. 베트남 출판사에 의해 베트남어로 번역된 책이기에 그렇습니다.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느낌이 손가락 끝을 저리게 합니다.
지금껏 ‘몽선생의 서공잡기’란 책으로 시작해서 소설 ‘크룩스크리스티’와 ‘베트남, 체제전환국가에서의 도시개발’이라는 전문서적에 짧은 동화 한 권을 얹어 모두 네 권의 책을 출간했습니다. 한국에서의 일입니다. 그러고보니 작년에만 두 권의 책을 내어 놓았습니다. 그간 정리해 둔 원고와 논문을 쓰기 위해 공부하던 내용들을 일반인이 볼 수 있도록 쉬운 문체로 정리한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COVID-19가 준 선물입니다. 애쓴다 해도 일을 하기 어려웠던 2020년, 시간을 만들어 낼 필요도 없이 원고 정리에 몰두할 수 있었음은 지나보니 선물과 같았습니다.
2018년에 ‘몽선생의 서공잡기’를 출간했을 때만 해도 여기까지 오리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 곳에 정착한지 10년을 넘겼을 때 사이공에서의 생활을 유의미한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한 작업이었습니다. 초보 작가이니 책을 내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간신히 설립된 지 얼마 안 되는 출판사와 출판 계약을 맺었습니다. 마케팅도 없었습니다. 한국에 들어갈 때마다 서점에 가보면 동남아시아 문화란 패찰이 붙은 책장 구석에 눈에 띄지도 않게 초라한 행색으로 꽂혀 있었습니다. ‘처박혀 있었다’고 표현해도 그리 틀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반 농담 반 진담으로 그 책은 제가 가장 많이 샀을 거라고 말했는데 출판사도 손해를 보지 않았을까 슬쩍 염려가 들어 불평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일어난 모든 일이 애물단지가 되어가던 그 한권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책의 서문에서 밝힌 대로 사람의 앞일이라는 게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베트남 호찌민시에 이렇게 오래 머물게 될 줄도 몰랐고, 베트남어로 된 책을 출간하리라고는 더더군다나 생각해 본 일이 없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모든 일이 마치 계획한 듯이 흘러 갈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들은 대부분 사람들과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블로그를 통해 베트남 생활에 대한 글을 십년 넘게 쓰고, 이것을 바탕으로 ‘몽선생의 서공잡기’를 출판했을 때, 저는 한국 사람들이 베트남을 좀더 깊이 이해하기를 바랬습니다. 좁고 가는 편견의 눈으로 베트남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보다 열린 마음과 진정성을 가지고 이 곳에서 생활하기를 바랬습니다. 그렇게 했을 때 이 곳이 얼마나 우리에게 풍요하고 다정하게 다가오는지를 설명해 주고 싶었습니다. 저는 베트남의 다른 도시에서 살아 본 적이 없으니 제가 머문 사이공에서의 삶을 가지고 그 얘기를 들려주고자 했습니다. 그것이 원고를 이곳저곳 보내 거절을 당해가면서도 발간을 꾀했던 이유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인세 수입 생활자가 되겠다는 야무진 꿈은 단박에 깨어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어떤 기회로 한 교수님(베트남 사람)을 만나 얘기를 나누면서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서공잡기를 읽었다는 그 분은 제게 베트남에서의 출간을 제안했습니다. 고민도 없이 동의했습니다. 교수님의 말처럼 호찌민시에서 사는 외국인으로서 우리가 어떻게 베트남 사람과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고 있는지 그 경험을 보여주는 것은 이제 다문화 도시가 되어 글로벌 세계의 한 일원으로 살아가는 베트남 사람들에게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시각을 제공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에 마음을 같이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존 원고에서 몇몇은 덜어내고 몇몇은 추가하여 내용을 다시 정리하였습니다. 시간은 걸렸지만 번역도 그 분의 도움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감수도 직접 해 주셨고 무엇보다 유명한 쩨(Tre) 출판사에 기성 작가 자격으로 저작 계약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주셨습니다. 그 분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 분과 베트남에 대한 관심을 나누는 커피숍의 자리가 없었다면, 그 분이 어떤 경로로 책을 읽지 않았다면 이런 스토리는 이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곳에서 외국인입니다. 화산 이씨도 아니니 조상이 살던 곳도, 태어난 곳도 아닙니다. 그저 일을 통해, 생활을 위해 이 곳에 머물렀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익혀야 합니다. 그러려면 이 곳의 사람들에 대해서 배우는 것이 먼저 할 일입니다. 이 땅의 사람들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지는 것은 이러한 배움의 출발선입니다. 편견 없이 그들과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땅의 사람들도 외국인들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방인이 베트남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 문화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는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이 지구라는 둥그런 별 한 켠의 땅에서 함께 살아가며 관계를 맺어가는 사람들의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제게는 이 책을 통해 갖는 기대가 있습니다. 나와 같은 외국인도, 주인인 베트남 사람도 모두 ‘우리’가 되어 더불어 사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갖는데 대한 기대입니다. 그래서 이 작은 경험담들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이웃의 외국인들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다섯 번째 책이 제 손에 들리게 된 경위도 한 권의 책을 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건축가라는 사람이 어찌하다 짜오칼럼을 쓰는 것도 모두 같은 출발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첫 걸음, 첫 열매의 중요함을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무슨 일인가 계획하고 있다면 첫 걸음을 떼어야 합니다. 그래야 걸음이 이루어지고 그 걸음의 결과로 하나의 성과가 만들어지니까요. 비록 나아간 거리가 형편없어 보여도 그 길의 와중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떤 일로 이어질지는 아무도 알 지 못합니다. 그러니 지금 무엇인가를 해 가는 인생이라는 것이 얼마나 흥미진진합니까? 취미이든, 공부이든, 운동이든, 혹은 저처럼 글을 쓰는 일이든 말입니다.
몽선생의 서공잡기는 한국에서의 출판을 중단하고 판권을 회수했습니다. 베트남에서 출판 전에 판권에 대한 문제를 깔끔히 정리하고 싶었고 그것이 제 책을 선택해 준 베트남 출판사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쉬움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첫 정 같은 거지요. 그러나 모든 인연은 다할 때가 있고 다하는 인연으로 인해 새로운 인연을 잉태해 내었으니 그로써 역할을 다 한 것이라 하겠지요. /夢先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