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November 22,Friday

몽선생(夢先生)의 짜오칼럼-추억은 방울 방울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오카지마 타에코는 평범한 20대 후반의 직장 여성입니다. 그녀는 평소에 그리던 시골생활을 위해 휴가를 얻어 떠납니다. 그녀는 도쿄에서 태어나 자란 탓에 시골의 삶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침 형부의 고향이 시골인 야마가타 현인 덕에 열흘 간의 농촌 체험을 위한 휴가 행선지는 쉽게 정해졌습니다. 최근 들어 어렸을 적 일을 자꾸 떠올리던 그녀는 짧은 시골 생활이었지만 사람들과 만나고 생각과 마음을 나누면서 어린시절의 추억, 기쁨과 슬픈 일들, 후회, 그리고 풋풋한 사랑의 기억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영화는 이런 그녀를 통해 우리의 성장을 일상의 추억으로 보여줍니다. 일본 애니메이션 ‘추억의 방울방울(おもひでぽろぽろ)’의 대략의 줄거리입니다.

애니메이션의 배경은 1980년대의 일본입니다. 2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고도 성장기를 맞은 일본 도쿄에서 사는 이 여성의 이야기는 동시대 일본인들에게 지난 시절인 1960, 70년대에 대한 막연한 향수를 갖게 했습니다. 아마도 영화를 본 사람들은 서로 모여 이렇게 이야기할 지 모릅니다. 그때 기억나?

우리 모두는 이런 추억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영화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 낸 것은 시대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호찌민시에서 출신이 다르고 나이가 다르고 배경이 다른 남자들이 오랜 통제로 갇혀 살다가 같은 식사자리에 모였습니다. 술이 한두 잔 돌고 나니 업무 이야기는 뒷전이 되었습니다. 징그럽게 달라붙는 코로나바이러스도 잊었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인간됨에 호응하며 잔을 부딪치다 보니 자연스럽게 살아온 세월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살았던 동네가 나옵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동네 이름입니다. 그래, 맞아. 난 완전 촌놈이었어.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상대방의 어린 시절에 박장대소합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의 추억은 애틋하고 아련합니다. 만화였다면 그 시절을 회상하는 남자들의 눈가에 방울이 빛나는 것을 표현했을지도 모릅니다. 대학을 가기 위해 새로운 환경 속으로 뛰어든 부분에서는 톤이 높아집니다. 지방 도시에서 서울로 올라 가는 것은 동경이기도 했지만 쉽지 않은 도전이었습니다. 주먹을 불끈 쥐고 상경하여 맞은 서울 생활은 모두에게 만만치 않았습니다. 흑석동과 노량진의 추억을 얘기하던 한 동석자가 자기가 건축학과를 졸업했답니다. 이렇게 반가울 데가! 르꼬르뷔제와 시카고학파를 거쳐 미스반데로에로 통하니 그가 수십 년 지기 같습니다. 마침내 해체주의라는 철학이 그의 입에서 나올 때는 황홀했습니다. 그렇게 동시대를 살아낸 일에 공감하고 잔을 나눴습니다. 

얘기를 나누는 동안 문득 추억은 방울방울, 애니메이션이 떠올랐습니다. 사십 대, 오십 대의 남자들이 추억에 빠져 들었습니다. 그거 기억 나? 하면서요. 그런데 놀랍게도 마지막에 이르면 모든 이야기는 한 가지 경험으로 수렴됩니다. 그것은 마치 소용돌이와 같습니다. 때가 무르익으면 소용돌이는 주변의 것들을 빨아들이기 시작합니다. 모든 화제들을 엉키고 설키게 하여 중심, 비어 있는 중심 속으로 뭉뚱그려 빨아들입니다. 몰입이 시작됩니다. 여기에는 열외가 없습니다. 이탈도 있을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남자들이 모이면 모든 화제가 마침내 도달하는 소용돌이의 중심, 거기에는 군대의 추억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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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남자들도 타에코와 같은 경험이 있습니다. 가족과의 기억, 어린 시절 친구들과의 추억, 학창시절 그리고 첫 사랑과 처음 흘린 눈물에 대해 기억합니다. 아마 우리나라가 한참 개발기에 들었을 때의 분위기가 지금의 베트남과 비슷한 것을 보면서 베트남에 마음을 두는 것도 우리가 지낸 시절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신작로가 있고 아직 흙먼지가 날리는 읍내에서 버스를 타고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을 겪어낸 우리는 과거의 추억과 현실을 서로 비춰보며 동일한 경험을 나누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테일한 각각의 경험들을 모두 하나로 묶어 용광로 같이 펄펄 끓이는 것이 군대입니다. 군대의 기억은 너무나 강렬하게 우리의 기억 속에 각인되고 편집되며 얘기를 나누는 모두를 삼키고 달아날 수 없게 만드는 쇠줄같이 이제는 노쇠한 대한민국의 장정들을 하나로 묶습니다.

그런데 군대의 추억은 동시대 사람들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네버엔딩스토리와 같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연결됩니다. 아버지에서 아들로 대물림하여 연결됩니다. 그 속에서 연대의식이 생깁니다. 우리가 이 나라의 정체와 함께 하는 역사를 살아왔구나 하는 연대의식, 우리가 이 땅의 장정으로 연결되어 있구나 하는 연대의식, 그것은 위로부터 아래로도 그러하고 우리의 좌우로도 그러합니다. 한때 386세대를 외치며 민주화를 위해 보도블록 꽤나 깨 봤던 사람도, N세대라고 불리며 자유를 만끽하던 누구도, 서로 다른 세월과 사상과 이념을 내세워도, 심지어 지금 당장 우를 지지하던 좌로 비껴 났든 군대의 추억에서만은 하나로 눈망울을 뭉치고 침을 튀기며 그때의 삶을 이야기하게 되어 있습니다.

군대 이야기가 남자들 사이에서 죽지 않는 끈질긴 생명력을 갖는 이유가 어디 있을까요? 군대 이야기의 핵심이 군대 안에 있지 않기 때문 아닐까요? 전역을 하고 군과 상관없는 관계가 되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키우다 가도 어느 날, 어느 꿈에 문득 군대가 부르는 것을 듣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끔찍하지요. 재입대라니요! 그런데 아마도 군 복무를 마친 남자는 누구라도 이 꿈을 꾸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군대가 남자들이 남자가 되는 통과의례가 되기에 그렇습니다. 이제 내 삶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살을 끊고 뼈를 파고 드는 것, 그게 군에서 나올 때의 느낌입니다. 세상에, 저는 두 번씩이나 이런 꿈을 꾸었습니다!

지금은 군생활도 많이 변했답니다. 이제 우리의 아들들은 다시 입대하는 꿈을 꾸지는 않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직 전쟁의 냄새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가장된 평화를 누리는 대한민국에서 군은 남자들의 아픈 동시에 성장의 기억입니다. 무엇보다 강렬한 추억의 연대입니다. 그래서 ‘마이크로’하고 ‘소프트’하게 말하고 싶어집니다(특정회사 홍보가 아닙니다. 남들 안 들리게 ‘작고’ ‘부드럽게’라는 의미입니다. 작가註). 군대의 추억도 ‘방울방울’입니다. 

 

‘추억은 방울방울’은 오카모토 호타루와 도네 유코 원작의 만화입니다. 1991년 다카하타 이사오가 감독을 맡아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일본 아카데미 화제상을 수상하기도 한 이 작품은 ‘천공의 성 라퓨타’, ‘이웃집 토토로’로 유명한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제작했습니다. /夢先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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