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하는 일 중 가장 인간 다운 일은 남에게 도움을 주는 일이다. 즉 자신을 희생하며 타인의 어려움을 돌봐 주는 일이 자신을 가장 인간 답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은, 인간이 사회를 떠나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로 증명될 수 있다. 그래서 널리 남을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나라를 세운 한민족은 어디를 가도 늘 봉사활동에 관심을 두고 접근한다. 지난 여름은 엄청 길었다. 가득이나 습하고 무더운 여름날에 코로나로 인한 봉쇄는 모든 베트남인에게 심각한 물질적 심리적 피해를 안겨주었다. 모든 이가 이렇게 절박한 어려움으로 힘들어 할 때 누군가 그들에게 따뜻한 손을 내민다면 그보다 더 위안이 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것이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말이다. 그 유난히 길고 무더웠던 지난 여름, 타인의 어려움을 덜어주고자 자신의 땀을 바치며 살아온 한국인을 만났다. “실천하는 나눔으로 모든 사람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라는 나눔 캠페인을 앞세우고 코로나 19 장기화 및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재난 취약계층을 지원하고 돕는 ‘호찌민 나눔회’의 전영준 대표를 만났다. 코로나로 세상이 엄격하게 봉쇄되던 그 힘든 시절, 봉사활동을 하며 생긴 이런 저런 애환을 들어 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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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에도 지역주민 돕다 확진 판정 받아,
총 3개월 격리를 당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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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전영준 사장님. 코로나19에도 지역주민을 위한 봉사활동을 하다가 수차에 걸친 확진 판정으로 반복적으로 격리를 당하곤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왜 그렇게 까지 해야 하는가 하는 소리를 들으실 만합니다. 전 사장님이 하시고 계신 지금의 봉사활동에 대한 소개를 좀 해 주시죠.
안녕하세요 씬짜오베트남 독자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자원봉사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2년전 과일과 야채를 파는 베트남 친구가 자신의 가게에 “어려우신 분들은 그냥 가져가세요” 라는 팻말을 붙인 “나눔의 코너” 라는 것은 마련해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을 보고, 감명을 받았습니다. 스스로 부끄럽기도 했고요. 그래서 그에게 그 나눔의 코너를 확대하고 추가분에 대한 책임은 제가 담당하겠다고 나선 것이 제가 봉사활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입니다. 즉 베트남 사람들로부터 서로 돕고 사는 법을 배운 셈입니다. 또 이런 일을 제가 참여하고 있는 이수비나 하도급 건설사 모임에서 얘기를 했더니 모임에 참여한 한국인 5분이 선뜻 참여 의사를 밝혀 그분들과 더불어 자체적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봉사활동 역시 그리 용이하게 풀리는 일은 아닌 듯합니다. 우선 의지를 다질 만한 사명감이 우선되어야 할 듯합니다. 그리고 봉사활동의 대상이 되는 어려운 분들의 심리는 복잡하기 때문에, 그들이 입장에서 이해하고 공감하는 세심한 심리적 노력도 필요한 일입니다. 또한 봉사활동은 우리가 매일 하는 운동같이 정기적이고 지속적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일시적인 기분에 한 두 번하는 봉사활동이라고 가벼운 것은 아니지만 진정한 마음이 담겼다고 보기는 힘들겠죠. 저희가 시작하면서 서로를 격려하고 약속했던 것은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활동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코로나로 인해 이동이나 활동에 제약이 있기는 했지만 그럴수록 더욱 필요한 사람이 많아지는 일이니 그냥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죠. 결국 그런 와중에 다니다 보니 확진자들도 만나고 덕분에 밀접 접촉자, F1으로 분류되어 수차례 격리를 해야 했지요.
전영준 대표가 참가하고 있는 [호찌민 나눔회] 는 사적 봉사단체다. 다들 어려운 상황에서도 십시일반 작은 정성을 모아 “어려운 이웃에게 가진 것을 나누자”는 뜻에 동참한 사람들이 월 1회 정기적으로 모여,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있는 모임이다. 초기에는 베트남인 인3명으로 시작하였고, 전영준 대표가 합류하면서 외형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그 덕분에 전 대표는 자연스럽게 외국인 멤버와 베트남인들을 연결하는 연락책을 맡게 됐다. 현재 맴버는 전 대표의 합류 후 같이 참여한 이수비나 하도급 모임의 한국인 4명 (창신하도급사 모임 : 전영준, 이성환, 배성근, 전형민)과 그리고 전 대표가 따로 아는 일본인 1명(Urakami Taka Hiro), 베트남인 3명(Mai nguyen Phuong Khanh, Dinh Dai Quang, Nguyen Thi Quoc Dan) 이 참가중이다. 3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까지의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고, 2021년 기준으로 10여명이 참가하고 있다.
(왼쪽부터호찌민 나눔회 활동 모임 모습, 지원물품 포장한 차량의 모습, 자료제공:전영준)
각국인이 참여한 귀한 모임이군요. 그동안의 호찌민 나눔회에서 진행한 활동을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저희 활동은 월1회 정기모임’을 통하여 다음달 봉사활동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참여가능한 인원 등을 확인합니다. 베트남 분들은 월 100만동, 외국인은 200만동 이상의 성금을 내어 기금을 조성합니다. 매월 활동 때 마다 2000만동 이상의 기금이 형성되는데, 이 돈을 가지고 쌀과 우유 등의 물품을 사서 저희들이 함께 포장을 하고 각 가정에 전달을 하는 것입니다. 직접 포장을 끝내고 봉사활동 장소로 가서 현물을 제공하고 돌아오는 게 저희 나눔회의 주 활동입니다. 활동을 하면서 느끼는 점이지만, 베트남사람들과 함께하여야 효과적인 나눔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외국인들이 여기서 어려운 분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은 있어도 현실적으로 실행하기가 어려운데, 베트남인들과 같이 협업을 한다면 훨씬 효과적인 활동이 가능하고 또 받는 사람들 역시 마음으로 쉽게 다가선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주로 어느 지역을 대상으로 활동을 하시나요?
동나이(Dong Nai)성에 소재 한 빈민촌지역과 더불어 떠이닌(Tay Ninh)성에 Mái Ấm Mây Ngàn이라고 사원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이 있습니다. 이 두 곳에 정기적으로 물품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도시 빈민들이 어려움의 가중된 이후 4군에 있는 낌렌사(Chùa Kim Liên) 같은 곳에도 물품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이 활동을 하다가 알게 된 사실이지만, 베트남 같은 경우에는 빈민구제나 고아원의 역할을 절에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지역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절에 지원을 해주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점도 배웠습니다. 봉사활동에도 지역 행정적 관리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었습니다.
특히 코로나 기간 동안의 활동은 많이 힘드셨으리라짐작되는데 어떤 어려움들이 있었습니까?
다 힘든 시기이니 이동이 가장 힘든 일이었지만, 개인적으로 격리가 자주 된 점이 좀 힘들었죠. 작년에는 베트남이 코로나 청정 지역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하던 활동을 이어 갈 수 있었지만, 금년에는 코로나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사람들의 격리기간이 길어지면서, 봉사활동 수요는 오히려 급증을 했습니다. 그래서 평소보다 더 많이 움직이다 보니 확진자와 밀접 접촉한 부류로 분류되어 여러 번에 걸친 격리를 했습니다. 처음에 격리된 이유는 저희가 지원물품을 포장하는데, 포장을 도와 주시던 베트남 분이 F0 판정을 받아서 F1(밀접접촉자)로 분류되어 격리되었고, 두번째 격리는 가족과 식당에서 밥을 먹었는데 그 식당에서 F0가 발생해서 격리됐습니다. 세번째는 같이 봉사하시던 한국 분이 코로나로 돌아가시면서 그리고 저도 F1으로 다시 한번 지정되어서 격리되었습니다.이번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는 많은 분들이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했습니다. 4군 지역의 주민들이 심각한 경제사정에 처했는데, 문제는 이분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주거환경이 밀집되어 있는 코로나 위험 지구에 노출되어 있어도 마스크나 신속항원키트 같은 것을 살 수 있는 여유가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오히려 봉사활동 횟수를 늘려서 락다운 초기에는 마스크와 항원키트를 지원하기위해 공급원을 찾는데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3달 간의 격리로 전대표님도 경제적인 고민이 있으실 듯 합니다만..
경제적인 타격 보다는 활동하기가 불가능해지면서 답답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래도 베트남 정부에서 격리를 많이 당해서인지 그에 대한 보상인지는 모르겠지만, 100만동 정도의 재난구호금을 10월
1일날 지급하여 주어서 받았습니다. (호찌민 거주자에서 일괄적으로 지급되었음) 그리고 운이 좋아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베트남 정부에서 외국인에 대하여 격리 때 차별을 둔 것도 아니고 백신접종에서도 차별을 두지 않아서, 베트남인들보다 백신도 우선적으로 접종 받았습니다. ( 65세 이상자의 우선 백신 혜택을 본 것으로 사려됨)
도움을 주시면서 제일 기억에 남는 어려운 분들은 어디입니까?
최근 락다운이 해제되면서 4군에 소재한 절 앞에서 빈민들의 구걸도 기억에 남지만, 사실 그보다 더 어려운 지역은 저희가 정기적으로 돕고 있는 동나이 쪽의 빈민촌입니다. 이 지역은 일용공들이 많이 사는 지역인데, 전염병으로 일도 못하고 있어서 요즘 특히 어렵습니다. 베트남의 빈민이라는 처지는 한국과는 다릅니다. 한국은 최소한의 빈민 구제를 위한 사회 안전망이 있는데, 그곳에 사는 분들은 슈퍼마켓에서 1만동정도로 파는 작은 바나나도 살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분들이 많고 전기나 수도 등 기본적 정부지원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분들이 아직 있다는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그런 분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지원제도가 생기길 바랍니다.
전 대표님 개인적인 얘기를 좀 하도록 하겠습니다. 건설업을 하시는 데 주로 어떤 분야를 맡고 계십니까?
저희 Pha An E&C는 주로 토목분야를 담당하는 건설회사입니다. 요약해서 말한다면 공장이나 산업단지를 개발할 때 기반시설 도로, 우수처리및 오·폐수 처리의 공사를 주로 담당하고 있습니다. 저희 회사가 이 부분에서는 어느 정도 기반이 있어, 무제한 A/S를 제공하고 이를 바탕으로 고객의 신뢰를 얻고 있습니다. 저희는 창신 베트남(이수비나)의 건설 협력사로 창신베트남 신규공장 건설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베트남에서의 경험을 키웠습니다.
베트남에는 어떠한 일로 오시게 됐습니까?
20여년 전에 친구 여행가는 곳에 따라왔다가, 베트남에 막연히 투자를 하면 괜찮겠다고 생각으로 밀어 부친 것입니다. 벤탄시장 뒤쪽에 10년 계약으로 건물을 지었는데, 그게 저의
베트남 사업의 시작이었습니다. 물론 4년 뒤, 그 건물을 법적인 문제로 인하여 몰수 당했지만 말입니다.(웃음) 그 후에는 건축회사를 운영하면서 동시에 Con silage(옥수수 사료) 공장을 운영했습니다. 그 사업을 한 7년 정도 운영하다 다시 한번 문제가 일어나고 지금의 토목전문 건설사로 전환하여 창신 베트남(이수비나) 건설 협력사로 등록하고 현재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이후 미래 계획이 있으십니까?
자원봉사를 확대하고 싶습니다. 같이 봉사활동을 하는 베트남분들과 확대할 계획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한달에 2천만동 가지고는 저희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이 너무도 제한적입니다. 예를 들어서 쌀 400킬로 구매하고, 라면, 간장, 우유를 포장하면, 그 자금으로는 약 75가구 정도만 지원할 수 있는 분량만 나옵니다. 도움을 준다고 노력을 하지만 금전적인 한계로 아직은 나눔의 단계가 미비한 상황입니다. 좀 더 효율적인 지원을 위해 ‘호찌민 나눔회’ 의 확대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뜻을 함께 하는 분들의 참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봉사활동에 뜻이 있으시다면, 저희 ‘호찌민 나눔회’ 에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gana6006@hanmail.net 이메일로 연락 주시면 됩니다.
호찌민 나눔회의 연락책을 맡고 있는 Pha An E&C 전영준 대표는 1961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강릉고와 강원대를 졸업 후 ROTC복무를 거쳐 삼성중공업, 다성건설에서 근무했으며, 베트남에 진출한지 20년이 넘은 중견 기업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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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a An E&C
주소: 10 Doan Nhu Hai, Ward 12, District 4, HCMC
전화번호: 097 426 7280
Email:gana6006@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