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November 25,Monday

진짜 영웅

영웅이 넘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마블과 DC라는 출판사가 쌍끌이한 영웅의 시대는 지난했던 과거 코믹스(Comics)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세계관을 가진 역동적인 영웅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빠르게 과포화 상태에 달한 그들의 세계에는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할 만큼 많은 영웅들과 그 보다 더 기억하기 어려운 그들만의 세계관을 화려한 영상기술과 자본을 힘입어 구축하고 쉴 새 없이 우리의 시세포 위로 현란한 폭죽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TV를 통해 보던 헐크가 만화 속의 아이언맨과 팀을 이루고, 배트맨과 원더우먼이 한 팀이 되어 콜라보를 자랑하는 것도 모자라 수 십을 헤아리는 초인간 수퍼 영웅들이 우주 악당들과 싸우기 위해 대치하는 멋진 장면들은 이제 그들이 더 이상 삼류 잡지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아님을 알게 합니다. 그러니 캡틴아메리카가 대한민국 어린이들의 캡틴이 되는 것도 더 이상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아무리 멋져도 그들은 진짜가 아닙니다. 만들어진 인물이고 가상의 영웅입니다. 그들이 살아가는 세계는 진짜 세상이 아닙니다. 열한 겹의 평행 우주도, 토르가 사는 아스가르드도 우리의 세계가 아닙니다. 그들이 지구라 하는 별은 존재하지 않는 또다른 가상의 행성인 지구-1999999일 따름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아무리 애타게 불러도 그들은 그린랜턴을 들고 찾아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내가 사는 별에 살고 있는 영웅을 보았습니다. 그는 스파이더맨보다는 작아보였고 슈퍼솔저프로젝트로 재탄생되기 전의 스티브 로저스처럼 허약해 보였습니다. 게다가 아무런 가면도 쓰고 있지 않았고 몸에 달라붙는 쫄쫄이 타이즈도 입고 있지 않았습니다. 엉뚱하게도 그는 평범한 검은색 트레이닝복 차림이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응우옌응옥마인(Nguyễn Ngọc Mạnh) 입니다. 지난 2월 28일 타인쑤언(Thanh Xuân)의 한 아파트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는 긴급하게 외치는 여자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아이가 떨어져요!” 그는 맞은편 아파트를 올려 보았습니다. 거기에는 한 어린 소녀가 창의 난간을 넘고 있었습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의 몸은 펜스를 뛰어 넘었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떨어질 지점에는 어른 키 높이의 가건물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붕 위로 올라서는 그의 행동에는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믿기지 않는 높이였습니다. 철판 한 겹에 불과한 지붕은 출렁거렸고 경사가 있어 중심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여자의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습니다. 그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고 아이의 몸 일부가 그의 팔에 걸렸습니다. 추락하는 세 살 아이의 무게는 그를 고꾸라뜨리기에 충분했고 지붕을 받치던 쇠파이프가 구부러질 정도의 충격이 몸을 울렸지만 그는 벌떡 일어났습니다. 팔 안에는 어린 소녀가 안겨 있는 채였습니다.
소녀가 추락했을 때 그녀의 부모는 손님을 배웅하고 있었습니다. 아이 혼자였지만 난간이 있었기 때문에 안심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손님을 보내고 나서 아이가 떨어졌다며 웅성거리는 주민들의 소란을 들었습니다. 그들도 사람들이 모인 속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놀라 비명을 질렀습니다. 떨어진 것은 그들의 세 살 된 딸이었습니다. 한 남자가 사람들 사이에서 아이를 안고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 언론마다 그를 취재하기에 바빴습니다. 그리고 이
기적적인 구조 사건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공안에 의하면 아이의 집에는 난간 위에 1.5m 높이의 추락 방지용 철제 울타리가 추가로 설치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그 위로 올라갔고 난간을 넘은 순간 손이 미끄러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일들이 자주 벌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긴장의 끈을 놓기만 하면 벌어지는 일이 이런 사고들입니다. 하노이시에서도 다낭시의 고층아파트에서도 잊혀질 만하면 이런 사고가 벌어집니다. 호찌민시에서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런데 이 소녀의 경우처럼 생명을 구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 사례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를 기적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가 TV에서 인터뷰하는 모습이 3월 1일 방송을 통해 공개되었습니다. 큰 사건을 겪은 것 치고는 생각보다 차분해 보였습니다. 그는 다음날 정상적으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인터뷰에 응했다고 합니다. 그에게 리포터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아이를 구했다고 생각하세요? 당신은 영웅이예요. 그는 도리질을 했습니다.
“나는 영웅이 아니어요. 다만 위험한 상황에 처한 아이를 보았고 그 아이가 내 아이와 같다고 생각했을 뿐이에요.” 그에게도 세 살 먹은 딸이 있었습니다.
사건이 벌어졌던 날 집으로 돌아온 그의 행색은 평소와 달랐다고 합니다. 부상을 당한 채였으니까요. 그가 제일 먼저 찾은 것은 딸이었습니다. 딸을 본 그는 그대로 끌어안고 덜덜 떨며 울더라고 그의 가족은 말합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너무 두려웠기에 그랬다고 합니다. 그 일이 내 딸에게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사고를 겪은 아이는 안전하답니다. 부상이 있기는 하지만 큰 상처 없이 병원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다니 얼마나 다행인지요. 아이는 새로운 생명을 얻었습니다. 같은 사고로 여러 생명이 사라져 갔지만 아이는 그로 말미암아 두 개의 생일을 갖게 된 셈입니다. 부디 그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랍니다.

진짜 영웅은 슈퍼맨이나 앤트맨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는 사람들, 두렵지만 그 일을 해내는 사람들, 어려움에 처한 이를 내 딸, 내 아들과 동일하게 여기는 사람들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한국에서 스포츠계, 연예계 학폭 사건의 폭로가 심상치 않습니다. 그러한 사건이 벌어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다른 이를 나와 같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 자녀, 내 형제자매와 같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의 약함이,
아픔이, 눈물이 다가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남자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말로 이 참혹한 불신의 시대에 우리에게 위로를 주는 사람들이 아닐까 합니다. 내 가족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가족과 같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들, 이 시대의 진짜 영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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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오늘이 3월 1일임을 되새깁니다. 우리의 오늘을 있게 한 잊혀진 이름의 영웅들을 생각합니다. 그들도 자기의 안위가 아니라 고통을 당하는 이웃, 곧 동포의 아픔을 나와 내 가족의 고통과 같이 여겼기에 몸을 바쳐 희생했을 것입니다. 우리의 영웅들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그들이 우리의 위로가 되었습니다.
/夢先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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