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 있어서 사이공의 역사는 17세기 말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 이전에는 크메르에 속한 항구도시였습니다. 사이공이라는 이름도 1862년 프랑스에 의해 채택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어원이 분명치 않은 이 이름은 훨씬 이전부터 사용되어 왔습니다. 베트남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역사와 문화의 중심은 하노이입니다. 하노이에 비하면 사이공의 역사는 꽤나 짧습니다. 베트남인들이 사이공을 본격적으로 개척한 것은 응우옌왕조 시절이었습니다. 탁월했던 개척가이자 행정가였던 응으옌흐우까인이 그 중심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본래 프레이노꼬르라 불렸던 이 지역을 현재의 베트남 역사에 편입시킨 장본인입니다. 잘 아는 사이공펄, 빈홈센트럴파크 앞을 지나는 빈타인군의 도로 이름이 응우옌흐우까인 인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이공과 하노이는 분위기가 참 많이 다릅니다. 하노이는 어딘지 대륙의 이미지가 있습니다. 건물들도 육중하고 비장해 보입니다. 호안끼엠 주변 올드타운의 가로는 물론이거니와 신도시 계획 방식도 어딘지 사이공과는 다릅니다. 사이공은 어떤가요? 5군이나 6군 같이 차이나타운을 이룬 지역과 외곽을 제외하고 시의 중심 가로를 기준으로 본다면 유럽의 냄새에 더 가깝습니다. 같은 프랑스제국주의의 영향을 받았는데 어떻게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요? 도시는 그것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노이와 사이공을 다르게 느끼는 것처럼요.뉴욕하면 무엇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까? 당연히 자유의 여신상입니다, 런던은요? 저는 런던 시계탑이 생각납니다. 그리고는 건물에 아예 랜드마크 타워라고 이름을 붙여 줍니다. 곧 투티엠에 더 높은 건물이 들어설 계획이라지요? 이름을 어찌 지을지 궁금합니다. ‘리얼 랜드마크 타워’라고 하지는 않겠지요? 그런데 이런 높이를 갖지 않아도, 이런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랜드마크는 저절로 자기가 랜드마크임을 드러냅니다. 벤탄시장 처럼 말이지요.
도시의 이미지는 건축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건축은 길을 만나면서 의미를 갖습니다. 사람들이 길을 통해 건축을 만나고 길을 통해 공간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도시를 이해합니다. 다시 풀어 말하면 건축과 공간이 가로를 만나 그 범위를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 곧 도시입니다. 그래서 길의 경험은 도시의 이미지를 부여하는 중요한 매개가 됩니다. 하노이 구시가지의 길들을 생각해 보세요. 서울의 정동길을 걸어 보신 적이 있나요? 이처럼 가로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길의 경험을 통해 이미지를 갖게 합니다. 그러므로 도시를 이해하고 이미지를 갖는 데는 건축뿐 아니라 그것이 면하는 가로의 체험이 중요합니다. 그러한 경험을 통해 전체로써 도시의 이미지를 갖게 되는 것이니까요. 이를 도시탐험이라고 부를 만합니다. 이러한 도시의 이미지, 곧 도시의 물리적인 형상의 시각적 명료함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지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표현이 어려운데 선명한 도시 이미지를 갖는 도시는 잘 읽히고, 읽기가 쉽고, 또 찾기가 쉬운 도시가 그런 도시라는 얘기이지요. 더 어렵나요? 여하튼 그런 연구를 한 이는 케빈 린치라는 미국의 도시계획가입니다. 그는 통로(Path), 교점(Node), 랜드마크(Landmark), 지역(District). 경계(Edge)라는 다섯 가지의 요소를 통해 도시를 인식하는 방법을 정의한 사람입니다. 비록 그의 이론에 비판적인 시각이 있으나 일반인이 단순하게 도시공간의 시각적 경험과 관련하여 도시를 이해하는데 유용한 방식이기도 합니다. 일본의 유명한 건축잡지 프로세스(Process: Architecture)에서는 도시 이미지와 관련하여 유의미한 작업을 한 적이 있습니다. 파편과 같은 도시의 이미지를 모아서 분석하고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들이 도쿄를 대상으로 했던 ‘Tokyo Urban Language(49호, 1984년)’가 도시 이미지 분석이었다면 ‘Imageable Tokyo(99호, 1991년)’는 분석된 도시와 건축 어휘를 바탕으로 구상한 미래의 도쿄였습니다. 저는 이 책을 너무 좋아해서 대학 때부터 지금까지도 들고 다닐 정도입니다.
사이공은 아직 도시 이미지를 갖지 못한 듯합니다. 서울도 여전히 정리된 도시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못한데 무슨 사이공이 벌써~,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건축과 도시에 관한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현재 머물고 있는 도시에 대한 이런 관심은 당연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이 도시의 이미지들을 모으고 정리하고, 그것을 도시 어휘(Urban Language)로서 형상화하는 일을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것이 돈이 되는 일이 아니고 괜한 수고만 더할지도 모르지만 강산이 한 번 변할 세월을 넘도록 살아왔고 또 앞으로도 세상이 한 번 더 변할 것을 봐야 할 베트남에서의 삶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땅에 머물면서 인연을 맺었고, 돈을 벌었고, 자녀를 키우며 그래도 제법 평안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에 대한 작은 보답 같은 것이지요. 프로세스라는 일본의 잡지사가 건축가, 도시계획가들과 그런 작업을 이뤄낸 것처럼 저도 베트남의 어느 매체와 더불어 그런 일을 할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근거 없는 상상도 해봅니다. 물론 게으름이 저의 최대의 적이긴 하지만 이런 궁리가 개인의 바램으로만 끝나지 않고 속칭 전문가라 하는 이로써 정말로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곳에는 많은 전문가들이 있습니다. 단지 지식으로서 만이 아니라 경험과 관심의 깊이로서도 현지 전문가라 할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 이들이 모여 이 도시의 미래를 그려보는 일에 생각을 더하는 것은 어떨까요? 부동산을 개발하고 그 수익을 논하는 일도 충분히 가치를 두고 해야 할 일이지만 동시에 바람직한 개발의 방향을 이 땅의 사람들과 함께 고민하고 도시의 한계와 어려움을 극복할 방안을 모색해 보는 일도 가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날이 오겠지요? / 夢先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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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훈
건축가(Ph.D),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정림건축 동남아사업단 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