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November 25,Monday

회장님, 총무님!

매년 말, 초가 되면 송년회다, 신년회다 부산합니다. 한해를 결산하고 모임의 의의를 되새기며
구성원들 사이에 격려와 수고에 화답하는 자리를 갖습니다. 이때 중요한 행사의 하나가 모임의 회장을 정하고 총무를 선출하는 일입니다. 모임의 규모에 따라 부회장이나 회계, 서기를 두는 경우도 있지만 어느 모임이든지 이 두 직책이 빠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베트남의 교민사회에도 많은 모임들이 있습니다. 코참이나 한인회, 민주평통 같은 공적 모임도 있고
출신지역을 중심으로 결성되어 있는 향후회, 출신학교를 매개로 한 동문회도 있으며 골프나 테니스, 배드민턴과 같이 운동을 좋아하는 교민끼리의 모임도, 다양한 취미를 공유하는 동호회도 여럿 있습니다. 사업의 종류에 따라, 또는 비즈니스 협력관계로 맺어진 모임도 빠질 수 없습니다. 종교를 통해 모이는 그룹도, 특정한 지식을 나누기 위해 모이는 그룹도 있습니다. 이렇듯 다양하고 많은 모임들이 베트남 한국인 사회의 부분, 부분을 연결하며 저마다의 역할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모임의 회장님이 저 모임의 회장님인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 저 모임의 총무가 이 모임의 총무님이 되기도 합니다. 제가 속한 그룹에는 무려 열이 넘는 단체와 모임에 속한 분도 계십니다. 제 생각에 그 분은 서너 개 단체의 회장 및 주요 직책을 겸임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모임의 총무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젊고 열성적인 그는 속해 있는 모임마다 총무직을
거절하는 것이 더 힘들다고 합니다.
어떤 분이 묻습니다. 그렇게 여러 단체의 회장이나 총무를
맡으면 감당할 수 있어요? 못한다고 사양하는 게 예의 아닌가요? 그 분 말씀이 옳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당장에 질문한 분에게 ‘그럼 이번 기회에 나서서 회장직을 자원해 보시지요’ 하면 대개의 경우 손사래 칠 것이 뻔합니다. 결국 회장이나 총무는 그래도 그 회에 열의가 있고 부지런하며 책임 있는 분들이 맡을 수밖에 없게 되니 한 분이 몇 단체의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문득 예전에 교회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한 분이 교회 내에서 한 사람이 여러 직책을 겸임하는 것이 못마땅하셨던 모양입니다. 한 사람이 성가대도 하고, 주일학교 교사도 하고, 소모임의 리더가 되기도 하고, 무슨 위원회다 하면 거기도 소속되어 있어 몇몇이 많은 짐을 짊어지고 있는 현실에 대해 쓴 소리를 하셨습니다. 아무리 봉사라지만 분담해야 한다는 취지였습니다. 실제로 한 사람이 여러가지 역할을 맡게 되는 경우의 이유가 사람이 부족해서 라기보다는 교역자가
사람 세우는 일에 게으르기 때문도 왕왕 있으니까요.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자원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분께 이런 문제 제기에 대해 몇 가지 고려해야 할 점을 설명 드린 기억이 납니다. 그것이 우리 교민사회의 모임에도 적용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첫째, 여기에는 분별하는 기준이 있다는 점입니다. 한 사람이 여러 역할을 맡는데 가장 염려되는 점은 맡은 역할들이 짐이 되고 이로 인하여 자신이나 주변에 걸림돌이 되는 경우입니다. 스스로의 신앙생활도 힘겹고 다른 이들에게 불평마저 하게 된다면 그에게 여러 역할은 형벌과 다름없습니다. 그럴 때는 자기 직분들을 내려 놓고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짐 만을 짊어지는 것이 선한 행동입니다. 그렇지만 공동체 내에서 누군가가 큰 헌신의 마음으로 남들이 다 피한 여러 일을 맡되 기쁨 가운데 지치지 않고, 능력 있게 감당한다면 그는 공동체의 귀한 일군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그의 순종이 모두에게 덕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그 사람이 자기의 유익을 위하여 많은 직분을 자기 이름 앞에 걸어 둔다면 그는 하나님의 일을 믿음으로 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믿음으로 하지 않는 행위는 당연히 덕이 될 수 없습니다.
둘째는 그렇게 여러 일을 감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마음을 돌아보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어떤 사람이 많은 역할을 감당하는 것을 보고 우리 가운데 사람이 없는가를 생각하기 전에 앉아서 자리를 지키는 자기 믿음의 분량을 살펴야 합니다. 물론 내가 현재 그 일을 감당치 못할 합리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그럴수록 많은 일들을 나누어 감당할 수 있도록,
주신 믿음의 분량 위에 믿음을 더하여 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이런 현상은 교회뿐 아니라 어느
모임에서나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일과 단체의 일이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바쁘고 힘든 일정 속에서도 몇 단체의 맡은 역할을 핑계하지 않고 충분히 감당하는 분들의 열심을 ‘헌신’이라는 코드로 이해합니다. 그리고 교회 내에서 의문을 제기하셨던 분께 설명했던 바와 같은 기준으로 회장님, 총무님들을 바라보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그래서 열 일을 마다하지 않고 헌신하시는 그 분들의 열의가 교민사회의 선한 덕이 되기를 응원합니다.
헌신이란 대가를 받지 않고 하는 행위입니다. 대가는 커녕 오히려 자기 것을 내어놓는 행위입니다. 시간도 내어놓고, 노력도, 때로는 그 대상이 돈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런 일들을 맡은 분 가운데 손해를 보는 분도 여럿 됩니다. 개 중에는 명예욕으로 하는 분도 어쩌다 있겠지만 그런 경우는 바로 드러납니다. 그 모임이 온전해질 수가 없으니까요. 그러므로 비록 여러 직책을 맡았을지라도 이를 헌신의 기회로 여기는 회장님, 총무님이 세워진 모임이 활성화되는 것은 너무 당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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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연초가 되니 이런 분들에 대한 감사가 더합니다. 나를 대신해 더 고민하고 더 내어놓고 열심을 다해 헌신하는 그 분들이 있어 우리의 모임이 여전히 즐겁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자원하여 모임의 사람들을 섬기지 못한 나 같은 이를 대신하여 열 일을 마다 않고 2021년 우리 모임의 회장, 총무를 맡아준 분들께 박수를 보냅니다.
올해도 베트남 한국인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각종 모임을 위해 유임이든 선출이든 한 해를 헌신하기로 작정한 모든 회장님, 총무님들께 화이팅을 외칩니다. 여러분의 헌신이 코로나바이러스를 이겨내는 힘입니다. 올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 夢先生

박지훈
건축가(Ph.D),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정림건축 베트남현지법인 대표(법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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