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November 22,Friday

그루터기의 기도

올해 초 중국의 우한에서 이 일의 발생이 처음 알려졌을 때 이런 정도로까지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전세계로 확산되면서 팬데믹이 선언되는 상황에 이르기까지도 설마, 설마 했습니다. 한국의 방역에 대한 자신감이 충만하고 우리의 입국을 통제한 나라들을 비난하며 진단키트의 수출에 대해 선별하자는 얘기가 나올 때도 자못 으쓱거리며 잠시의 바람인 줄 알았습니다. 백신개발 얘기도 기대를 충만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길어야 올 6, 7월이면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나라들의 상황은 쳇바퀴 돌 듯한 채로 한 해가 다 가도록 변한 것이 없습니다.

2020년, 지구가 앓아 누웠습니다. 처음에는 몸살 정도로 알았는데
불치병이 될지도 모른답니다. 앞으로 영영 이 병을 달고 살아야 할 지도요. 이건 우리의 친구 슈퍼맨이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을 돌아도,
어밴저스가 총 출동해 나서도 해결할 수 없는 사태라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 인생에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두려움과 염려, 그리고 무기력증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한 해가 전염병 이야기로 시작해서 전염병 이야기로 저물고 있습니다.
우한 발 COVID-19 이전에도 세상을 놀라게 하고 공포에 떨게 했던 전염병들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바이러스가 특별히 우리를 놀라게 하는 데에는 나쁜 소식을 캐어내 증폭시키고 바이러스보다 더
빨리 옮기기에 바빴던 매스미디어와 유투브 같은 커뮤니케이션 툴들의 영향도 분명히 있지만 그런 변명을 깔고 보기에도 이 질병이 가진 파괴성은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이 파괴는 단지 감염과 고통, 그리고 죽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세워온 사회의 구조를 무너뜨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내면을 드러내고 있어 더욱 두렵습니다.
그 내면의 모습이란 우리가 인정하기 싫어하는, 그렇지만 인간성 속에 뿌리깊게 자리한 우리
안의 편견들입니다. 그것은 비이성적인 이기성과 잔혹함의 많은 예들로 드러났습니다.

정보를 숨기고 책임을 기만하는 국가와 정부들,
사실을 말하는 이들을 탄압하는 권력, 이를 지지기반 확대의 기회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정치인들,
이 기회를 이용해 배를 채우는 기업과 개인들, 그리고 무엇보다 맹목의 종교적 신념주의, 불신의 인종주의, 나만 괜찮으면 된다는 개인적 이기주의, 바로 이런 것들이 보여지는 결과들입니다.
그런데 그 속에서도 따스한 인간성의 꽃들이 피어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난무하는 배신의 칼춤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가치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고, 사회적 책임에 대해 외치는 기업들이 있고, 분별의 의미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는 종교인들과 사람들이 있음으로 하여 지구는 또다시 희망을 품게 되는가 봅니다.

인류가 겪은 질병 가운데 최악으로 일컫는 것이 페스트입니다. 일명 흑사병으로 불리지요. 흑사병은 인류가 경험한 질병 가운데 가장 짧은 시간에 사망에 이르게 하는 병이었습니다.
흑사병에 관해서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순례자가 길에서 흑사병과 마주쳤습니다. 순례자가 흑사병에게 어디로 가는 길인지 물었지요.
“나는 바그다드로 간다네. 거기에서 오천 명을 죽이려고 하지.”
얼마 뒤 순례자는 바그다드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흑사병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다시 흑사병과 마주쳤습니다. 그는 거세게 항의했습니다.
“오천 명을 죽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왜 삼만 명이나 되는 생명을 앗아간 것이요?”
흑사병이 난감하다는 듯 대답했습니다.
“난 말한대로 오천 명 밖에는 죽이지 않았다네. 다른 사람들은 공포 때문에 자기들 스스로 죽은 거라네.”
어쩌면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의 실제 얼굴은 CIVID-19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비이성적 이기심도, 불신도, 맹목적인 신념도, 실상은 이 질병의 진짜 정체인 공포심의 부산물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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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와 두려움을 이기기 위하여, 그리고 이 지구에서 숨 쉬는 모든 생명들을 위하여 교과서에서
보았던 단어들을 현실의 삶 가운데로 꺼낼 때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희망, 사랑, 절제, 그리고 용기와 같은 단어들입니다. 바이러스가 춤을 추는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따뜻한 인간성을 지켜 낼 수 있음은 이러한 가치들이 여전히 우리 가운데 살아 숨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백신보다 강하여 고통의 파고를 넘게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70년간의 포로생활로 고통받을 때 그들이 지키던 신념이 있습니다. 그것을 ‘그루터기 사상’이라고 합니다. 어떠한 일을 당하더라도 하나님은 그루터기를 남겨 둔다는 것입니다. 그루터기는 회복의 뿌리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우리가 찾아야 할 그루터기는 무엇일까요? 우리에게 희망은 숲과 같이 펼쳐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서로 사랑하고, 더 나은 미래를 소망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그루터기처럼 남아 있음으로 하여 비록 참혹한 질병의 불길이 숲을 삼킨다 해도, 공포가 시냇물을 마르게 하여도, 끝끝내 다시 생명을 회복하는 힘을 가질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예, COVID-19는 세상을 바꿀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앓던 지구도 다시 몸을 털고 일어날 것이란 사실입니다. 그 때에는 어린아이가 앓고 난 이후에 한 춤 더 자라고 한 켜 더 마음이 깊어지 듯 우리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아무리 정부들이, 기업들이 그리고 어떤 사람들이 우리를 기만할지라도 인류의 역사가 지속되는 한 우리도 부단히 성장의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것이 남은 자, 그루터기와 같은 이들에게 주어진 인생을 사는 책임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한해가 다시 저물어 갑니다. 그리고 어김없이 새해가 다가옵니다. 비록 코로나바이러스로 엉망이 되어버린 한해였을지라도 우리는 올해를 잘 견뎌왔습니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무너지지 않는 희망을 품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여전히 고귀한 인간성이 살아 있음을 믿음으로 인해 갖는 희망. 그래서 서로를 위해 안타까워하며 위로가 되고 기꺼이 도움이 되어주고자 하는 사랑. 내가 다 누릴 수 있음에도 부족하고 모자라 고통받는 이들과 나누기 위해 선택하는 절제.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기게 할 수 있는 용기. 2020년을 떠나 보내기 위해 달력 마지막 장의 며칠 남지 않은 날짜들을
헤아리며 오늘 이러한 덕목들을 내가 먼저 갖게 되기를 그루터기가
된 심정으로 기도합니다. / 夢先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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