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November 22,Friday

비의 소리

비는 소리와 모양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때는 ‘토닥토닥’ 두드리는 모양으로, 어느 때는 ‘쏴아 쏴아’ 큰 소리로 내립니다. 대기와 만나고 사물과 만나고 그리고 마침내 땅과 만나 먼저 도달한 동료들과 기쁜 해후를 할 때, 그들은 소리를 만들어 냅니다. 함께 모여 모양을 만듭니다. 어느 때는
‘졸졸’ 하며 섬세하고 리드미컬한 음률로 시작하지만 때로는 전장에 나가는 군대가 되어 ‘콸콸’ 거리며 소리 높여 함성을 외칠 때도 있습니다.

회사의 제 방은 블라인드가 창을 가리고 있습니다. 한쪽 벽면이 온통 창이지만 자연광으로 사무실내가 밝아지는 것을 저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집중도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웬만해서는 블라인드를 걷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밖에서 들리는 소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하게 했습니다. 여느 때와 달리 급히 부르는 소리 같기도 했고 빠르게 달리는 소리 같기도 했습니다. 달리다 지친 몸의 무게가 발바닥을 통해 지면에 닿을 때의 그 둔탁한 소리와도 같았습니다. 그래서 소심하게 블라인드 사이를 살짝 열고 바깥을 훔쳐 보았습니다. 거기에는 비가 있었습니다. 내친김에 아예 블라인드를 걷었습니다. 그때 들었습니다. ‘툼벙툼벙’ 떨어지는 빗소리를 요. 참 생소한 소리였습니다. 큰 소가 흘리는 눈물이 툼벙툼벙과 같을까요? 소의 눈은 크고 예쁩니다. 그 눈에서 눈 크기만큼이나 커다란 눈물이 떨어지면 툼벙툼벙 소리를 낼 것입니다. 그러고보니 하늘이 큰 소처럼 울며 눈물을 흘리는 것 같습니다. 툼벙툼벙은 묵직하고 큰 것이 물에 떨어지고 잠기는 소리입니다. 그 모양이기도 하지요. 그 묵직하고 큰 것이 빗방울이라면? 떨어지면서 지붕과 도로에 큰 물의 파편을 남기는 물덩이에서 눈을 떼어 하늘을 올려 보았습니다. 비가 변하고 있습니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내리는 것이 비인지 눈인지 아님 그것이 함께 섞여 떨어지는지 분간이 되지 않았습니다.

왜 눈 같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함박눈처럼 크다고 여겼기 때문일까요? 예. 그렇게 이상하게, 알 수 없는 소리를 만들며 내리는 눈물 같은 비를, 눈처럼 쏟아지는 비를 한동안 바라보았습니다. 우기의 마지막 때에는 비가 잦아집니다. 특히 9월 말부터 11월 사이 저녁이면 더욱 그렇습니다. 거기에 태풍까지 더해지면 큰 비가 되니 어려움이 많습니다. 이맘 때의 비는 꼭 퇴근 시간 직전에 내리기 시작하니 신기합니다. 일부러 그러는 것도 아닌데 직원들 발이 묶입니다. 다행인 것은 한 시간 정도면 빗줄기가 잦아진다는 거지요. 그럴 때면 물이 넘쳐 흐르던 도로들도 언제 그랬냐 싶게 물이 빠집니다. 그것도 신기합니다.

한국에서는 비가 그치면 계절이 바뀌는 것을 실감하곤 했습니다. 겨우내 얼어 있던 바람이 촉촉한 봄비로 화사하게 풀리는 것을 봅니다. 빗줄기가 굵어지면 여름이 성큼 다가왔음을 알게 됩니다. 내리는 비에 소름이 돋고 옷깃을 여미고 있다면 가을이 온 증거이지요. 그런데 베트남에 오니 구분을 할 수가 없네요. 비가 가늘게 내리면 약한 비, 세차게 내라면 강한 비, 하루 종일 내리면 이상 기후가 만든 정신 나간 비이라고 해야 하나요? 하기는 겪어 본 일이 없는 열대몬순 기후대에서 살고 있으니 이런 비 타령하는 것이 소용없는 일입니다. 한때 사이공에서 만나는 비에는 감정이 없는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의 봄에 내리는 비는 애절하고 여름에 내리는 비는 마음을 상쾌하게 하고 가을의 비는 추억에 빠져 들게 하며 겨울에 내리는 비는 살아온 일을 돌아보게 한다면 사이공에서 만나는 비는 그냥 ‘비’ 같기만 합니다. 사실 비에 감정이 어디 있을까요? 내가 느끼는 감상이 비에 투영된 것에 불과한 것일텐데도 참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이공에서 비를 만나면 일단 피해 보자는 생각이 들지 슬프니 상념에 빠졌다느니 할 새가 없습니다. 저 멀리 먹구름이 보이고 한 두 방울 비가 떨어지는 것이 느껴지면 오분 내에 퍼부어 댈 것이 확실하니까요. 그럴 때 비를 바라보며 생각에 빠지는 것은 베트남에 온 지 일년이 채 안된 외국인이나 하는 행동입니다. 냅다 피하든가, 얼른 우비를 꺼내 입는 게 상책입니다. 주춤거리는 순간 이미 옷이 젖어버리는 낭패를 당하게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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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사이공의 비는 ‘관념’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불러야 하겠습니다. 생각 속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지금 당장 살갗을 아프게 때리는 ‘실제’라는 거지요. 감상에 앞서는 삶 자체입니다. 그러므로 사이공의 비는 시인의 것이 아니라 노점상인의 그것에 더 가깝습니다.
그래서 비를 보면 치열한 그들의 생활이 보입니다. 먼저 오토바이의 앞바퀴를 들이밀어 빠져나가지 못한다면 신호등이 없는 사거리에서 어김없이 엉킬 수밖에 없는 고단한 삶 말입니다. 농업국가에서 산업사회로 들어서면서 이러한 치열함은 곧 각박함이란 단어로 다가올 것입니다. 우리가 산업사회로 진입하여 얻었던 그 수많은 경제적인 여유 대신에 잃어버린 다른 이름의 더욱 많은 여유들을 그들 역시 잃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잃어간 속도보다 더 빠르게 그런 상황을 겪어야 할 것입니다. 베트남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한국 사람들보다 월등히 높습니다. 그들이 아직 자신의 삶을 비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눈에 다른 이들의 가진 것이 보이고, 그 불평등을 인식하고, 그것이 사회의 구조적인 것이라는 깨달을 때부터 이런 일들은 보다 빠르게 심화되어 가겠지요. 이런 변화를 피할 수는 없겠지만 더디게 진행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툼벙툼벙 물폭탄처럼 쏟아지던 빗방울이 어느새 하나로 뭉쳐졌습니다. 비가 장막을 이루었습니다. 이젠 소리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비에 가려 풍경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우비를 쓰고 달리던 오토바이들도 어느덧 뜸해졌습니다. 모두들 어느 처마 밑으로, 또는 어느 까페에 몸을 숨기고 앉아 비를 피하며 하늘을 바라보고 있겠지요. 그들은 또 무슨 생각을 할까요? 아마도 움직여야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멈춤의 시간은 그리 달갑지 않 을 겝니다. 복권을 파는 할머니도, 그랩 오토바이 청년도, 가게를 연 아주머니도 저처럼 멈춰서 물이 차오르는 도로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고보니 10월 중 내린 비로 베트남 중부지역은 5년래 최악의 홍수피해를 겪었다고 합니다. 호이안의 올드타운 거리가 물에 잠겼다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우기의 마지막 때가 또 이렇게 힘들게 지나갑니다. / 夢先生

박지훈
건축가(Ph.D),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정림건축 베트남현지법인 대표(법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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