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November 22,Friday

요단강

‘요단강을 건넌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개신교 기독교인들이 부르는 찬송가에 많이 언급되는데 천국에 가서 만나자는 의미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독교인들에게도 요단강은 죽음을 건너는 강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약속된 복된 땅에 들어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표현입니다.

요단강은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국경을 이루는 강입니다. 요르단(Jordan)이라는 국가명이 요단강, 곧 요르단강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요단강은 건기와 우기에 따라 수량의 차이가 현격한 강입니다. 평상시에는 넓어야 폭이 약 30미터가량이고 깊이는 허리에 차일 정도여서 건너기에 만만해 보일 수 있지만 우기가 닥쳐 수량이 많은 때에는 강 폭이 1.6킬로미터가 넘게 되고 깊이도 3~4미터에 이를 정도로 변화가 심한 강입니다. 이 때가 되면 홍수의 피해를 입는 지역도 여럿 된다고 하니 만나는 시기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강이 바로 요단강입니다.

베트남법인을 맡고나서 한 사람 한 사람 더해 간 조직이 이제 어엿한 규모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베트남을 조금이나마 겪은 데다가 최초의 직원들은 저와 개인적인 관계가 있던 터라 큰 문제가 없이 초기 성장을 해왔고, 그 과정 속에서 베트남의 관습과 문화, 그리고 함께 일하는 관점에 대해 고민하고 논의해 왔던 터라 자신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막막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건기의 요단강이 우기를 만난 것처럼 말입니다. 처음엔 만만한 사행천 같이 여겨졌는데 그게 실제로는 건널 수 없는 폭과 깊이를 가진 탁류가 세차게 흐르는 강이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느낌입니다.
그럴 때 이 강이 지금껏 내가 알아왔던 강이었을까 하는 의심이 드는 것처럼 내가 베트남에 대해 알고 있는 것, 내가 베트남 사람들과 함께 겪어 온 것, 그들과 맺고 있는 관계들, 그것이 사실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현지직원들이 많이 늘고 직접 관리하는 시간은 줄면서 이런 느낌들이 갈수록 더해 갑니다. 그러다 보니 직원들이 어느 순간 눈에 안 찹니다. 이 정도 같이 했으면 알 텐데 하는 아쉬움이 가슴을 채웁니다. 내가 그동안 어떻게 저들을 대했는데 하는 마음이 섭섭함이 되어 파도 칩니다.
문득 베트남 직원들을 평가했던 한 한국인 법인장의 얘기가 떠올랐습니다. 그는 베트남 직원이 회사에 ‘로열티(Loyalty)’ 없다며 불평했습니다. 실은 이런 평가는 낯설지 않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그런 얘길 들으니까요. 물론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해 왔습니다. 그런데 자꾸 그 말이 귓가를 헤매네요.

로열티라는 것, 우리말로 하면 ‘충성심’ 정도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충성심이 뭡니까?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스러운 마음,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주로 그 대상이 임금이나 국가에 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잘 다가오지 않네요.
중국 고전에서는 ‘한번 마음을 정해 어떤 대상에 충실하기로 했으면 그 자세를 끝까지 견지하는 태도’를 뜻하기도 한답니다. 자기 이익에 따라 메뚜기와 같이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는 것이 아니라 지조를 지키는 거지요. 표준대사전의 설명과 이런 고전에서의 해석을 살짝 버무려 보면 ‘마음을 정하면 진정으로 그 방침을 지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시 말해 국가나 단체, 사람 또는 신념에 대해 자기가 마음으로 정한 바를 지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베트남 직원이 로열티가 없다는 말은 그들이 회사를 진심으로 위하지 않는다 라는 것이고 회사 이전에 개인을 생각하는 구나 라는 말이 됩니다. 그래서 뭐 하나 개인에게 손해가 있는 일이 있으면 그걸 감추지 않고 요구 먼저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문제만 지적하고 고민은 안하고, 혼자 결정하고 통보만 한다는 거지요. 시간이 지날수록 외국인 직원들을 다룬다는 것이 점점 벅차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영어 해석을 찾다 보니 ‘신의’가 로열티의 의미로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영어로는 ‘faithful’입니다. 그러고 보면 로열티에는 신뢰가 배경이 되나 봅니다. 무조건적으로 마음을 정해 따르는 게 아니라는 거지요. 따를 만하니까 따른다는 것입니다. 거꾸로 짚어보면 신뢰한 상대가 배신을 한다면 철회할 수 있다는 뉘앙스도 있습니다. 물론 그것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상대를 저버리지 않겠지만요. 그렇다면 로열티는 충성이긴 하지만 신뢰가 기반이 된 충성이라 말하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
대개 베트남 직원들의 충성심을 논할 때 사례로 자주 드는 것이 있습니다. 이직률이 높다는 것이지요. 많이 하는 표현으로 백 불만 올려줘도 옮긴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한국인들은 야근, 철야를 밥 먹듯이 하는데 베트남 직원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글에서 눈에 띄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충성심을 요구할 자세가 회사에 되어 있는가?’ 라는 것입니다. 한 줄에 불과했는데 갑자기 먹은 것이 체증을 일으켰습니다.
최근에 직원들과의 사이에 느낀 요단강은 혹시 이런데 기인한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아니라고 부인하지만 나도 모르게 그런 바램이 자라 갔다면요? 어려운 때이니까 알아서 희생하며 함께 해야 하는 것 아니야? 하면서요. 실제로 회사가 그들의 미래를 보장하지도 못하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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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의 여파가 심각합니다. 하노이 타임즈에 따르면 2020년 상반기 8개월 간 일시적으로 영업을 중단한 기업의 수가 34,300개로 작년에 비해 70.8%로 급증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수치로도 어려운 상황이 증명되고 있으니 여러 회사에서 구조조정 얘기가 들려오는 것이 더 이상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아직 그런 상황이 아니지만 모든 일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니 아무도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상황을 베트남 직원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그들은 또 얼마나 불안할까요? 회사가 그들에게 먼저 신뢰를 줄 수 있을까요?

곧 추석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횡행해도 명절은 변함없이 다가옵니다. 외국인 회사에서 외국인 법인장을 만나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일, 아니 저보다 더 할지도 모르는 우리 직원들에게 월병이라도 한 상자 씩 전해줘야 할 텐데. 짜증내기 앞서 호흡을 가다듬고 신뢰를 쌓을 방안을 찾아보는 일을 더해야 하겠습니다.
교민 사회의 관계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나를 먼저 주장하기 전에 상대의 상황도 살피는 여유가 이런 때 필요합니다. 모쪼록 인사로 라도 정을 나누는 위로와 이해와 격려의 추석이 되었으면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어려움 속에서도 지켜내는 기대와 희망이 보름달처럼 환하고 가득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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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훈
건축가(Ph.D),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정림건축 베트남현지법인 대표(법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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