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이 재능을 앞선다? 성실한 노력이 재주 있는 것을 이긴다는 얘기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뚜벅뚜벅 성실하게 걸어가는 것이 우세할까요, 아니면 재능에 기대는 것이 나을까요? 분명 여러분을 이렇게 되물을 겁니다. 그런 말 같지도 않은 질문이 어디 있어?
실은 그 대답이 정답입니다. 재능이 덜해도 성실함으로 자기 앞 길을 개척하는 사람도 있고, 성실함이 덜해도 하늘이 준 타고난 재능으로 일을 이루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일 좋은 건 재능도 있으면서 그 재능을 바탕으로 성실함을 가진 경우일 겁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제일이라고 말하는데 관심과 재능이 있으니 좋아하게 되고 거기에 그 일이 즐거우면 성실할 수밖에 없으므로 이런 일을 품고 사는 인생이 제일이라는 게 맞을 것입니다.
갑자기 말도 안되는 질문으로 시작한 것은 골프에 대한 제 얘기를 꺼내기 위해서 였습니다. 이건 또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물으시는 분들이 눈에 선합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연습장 가기를 가뭄에 콩 나듯이 하는 저로써는 (그렇다고 연습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고요) 연습도 없이 나가야하는 필드에 대한 두려움을 삭이는 방안이 필요했습니다. 머리로는 생각이 많을지라도 연습이 없으면 몸이 기억 못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런데 골프가 멘탈게임이라니 저의 멘탈을 먼저 다스릴 방안이 필요한 거지요. 그런고로 연습이 부족해도 잘 칠 수 있다는 다소 황당한 기대를 자기 최면처럼 주입하는 겁니다. 그래서 동반자에게 큰 소리 치며 말합니다.
“오늘만큼은 재능이 성실을 이기는 것을 보여 주겠어!”
결과는 가뭄에 콩 나듯이 연습하는 것처럼 가뭄에 콩 나듯이 재능이 앞선다는 것을 증명하네요. 그러니 이제 아무도 제 말을 믿지 않습니다. 같이 가는 주재원들은 대놓고는 못해도 속으로는 ‘연습이나 열심히 하시지요’ 하고 말하는 것이 제 머리 속에 들립니다. 그런데 저희 주재원들은 다 성실합니다. 최소한 주 1회 이상은 연습장에 나가고 어떤 이는 시간만 되면 연습합니다. 두 사람은 저와 비슷하게 시작했고 한 사람은 시작한지 이제 일년을 넘겼을 뿐입니다. 그런데 처음엔 저보다 못하던 직원들이 갑자기 넘을 수 없는 벽이 되었습니다. 희한한 일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무슨 짓을 한 거야?’ 하며 엉뚱한 바이러스를 탓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슬럼프가 온 줄 알았습니다. 백돌이가 슬럼프라니요!
그런데 진짜 원인은 제가 못하는 것도 있겠지만 상대가 잘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지난 달에는 충격적인 사건이 생겼습니다. 가장 늦게 시작한 우리 직원이 저를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한 타 차로! 근육 강화제를 먹었을까? 아님 고반발 비공인 채를 사용했을까? 의심해 보지만 마찬가지 이유입니다. 무엇이겠습니까? 연습에 성실했기 때문입니다. 골프에 재미를 느낀 그는 아내와 더불어 골프연습장에 ‘열심히’ 다녔답니다. 이제는 우리 법인에서 아무도 저보다 못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니 성실이 재능을 앞선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말도 안되는 내용으로 우스개같이 시작한 이번 칼럼이었지만 저로써는 심각한 자기 반성이 들어있는 사례입니다. 골프연습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가만히 앉아 지난 13년의 시간을 돌아보았습니다. 회사 일로 연결되어 시작된 베트남 생활, 길어야 6년으로 예상된 최초의 체류 기간이었는데 사람의 길은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체험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동안 무엇을 이루었을까요? 회사 생활의 이력? 쌓아간 급여통지서? 아니, 그런 거 말고 베트남에서 베트남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 저에게 어떤 소양과 실력들이 쌓였을까요?
베트남어를 잘 하나? 밥 먹고 길 가는데 지장 없을 정도는 하지요. 택시를 타면 이래저래 방향 지시를 하는 저를 보고 택시기사는 베트남어 잘한다고 추켜 세웁니다. 그런 다음 폭풍 질문을 쏟아내지요. 반은 커녕 10분의 일도 못 알아듣습니다. 그래서 베트남 사람이 저 보고 얼마나 살았냐고 물으면 찔끔합니다. 그 사람이 한국에서 13년 간 살았다면 어땠을까요?
아니면 베트남의 건설관계분야에 대하여는 정통한 지식이 있나요? 최소한 법적 절차와 내용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있나요? 그래도 전문가이니까요. 하지만 설레설레 고개를 저어야 합니다. 베트남 법이 워낙 자주 바뀌니까 라는 말하는 것은 이유가 안됩니다. 그것도 13년이면 흐름을 알 수 있으니까요.
혹시 베트남의 문화와 사람들의 속성을 이해하는 깊이가 있나요? 오늘도 ‘도대체 이 친구들은 왜 이러는 거야?’ 라는 짜증스러움이 꼭지를 돌게 하는 걸 보면 상대에 대한 이해도 멀었습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10년, 15년 또는 20년을 머물 줄 알았다면 달라졌을까요? 그것은 혹시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한 변명을 아닐까요? 3년 만에 넘사벽이 되어버린 직원과 벌어져 버린 타수의 격차를 실감하며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일 거야’ 라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요?
고민하는 사이에 정년도 5년 앞으로 닥쳐왔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딱 그만큼의 시간입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깨달은 제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한 번의 기회입니다. 그 기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심각하게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성실하게, 마치 처음 걷는 길처럼 한발한발 걸어가야겠습니다.
이제 베트남에서 생활을 시작하셨나요? 3년 보고 오셨다고요? 주재원이시라고요? 사업 거리를 찾고 계시다고요? 남편을 따라 가족과 왔기 때문에 뭘 해야 할지 모른다고요? 뭐 라도 좋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모릅니다. 그러니 무엇이라도 ‘닥치고’ 시작해 볼 일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고요? 그럼 오늘 펼쳐 든 씬짜오베트남의 기사부터 꼼꼼히 읽어보세요. 그것도 귀한 지식 쌓기가 되리란 것을 제가 보증합니다. 이런다면 막상 그날이 닥쳤을 때 성실이 뒷받침한 삶의 걸음은 그 걸음을 시작했던 날의 고민이 가치 있었던 것이라고 증명해 줄 것입니다. 제가 아는 금융전문가 한 분이 말했습니다. 그런 성실함 가운데 우리가 얻는 상급은 ‘지식’과 ‘경험’과 ‘네트워크’라고.
자, 이제 이미지 트레이닝 한답시고 침대에서 뒹굴거리지 말고 몸을 일으켜 연습장부터 나가야겠습니다. 성실이 받쳐주면 졸고 있던 재능이 살아날 터이니까요. 아, 그런데 왜 이렇게 몸을 움직이기가 싫지요?
박지훈
건축가(Ph.D),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정림건축 베트남현지법인 대표(법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