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온, 그리고 살아갈 시대에 이처럼 많은 변화를 단기간에 일으킨 것은 COVID-19가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생활에 충격이 되었던 부분에 있어서는 외환위기 때가 떠오릅니다만 이는 대한민국의 사회 경제구조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는 했지만 우리나라를 비롯해 아시아권에 제한된 문제였고 사람들의 실제 생활을 구조적으로 바꾼 것은 아니니 이에 비교할 바는 아닌 것 같습니다. 마침 본지 420호에 세계를 뒤흔든 경제위기 세 번째 시리즈로 IMF 경제위기에 대해 다룬 스페셜 리포트가 있습니다. 최근에 경제에 관한 특집기사들이 본지에 실리고 있으니 이해를 더하고 싶은 분들은 인터넷 기사로 찾아보시면 도움이 될 듯합니다.
사실 태국, 인도네시아, 한국, 러시아, 브라질로 전이되며 1년간 지속되었던 외환위기는 우리 기억에 가장 뚜렷이 남았던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구조조정의 여파로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통합, 조정,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많은 것들이 변하거나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이 번에 겪는 COVID-19는 이와 비슷한 듯 다릅니다. 무엇보다 전세계적인 범주의 사태라는 면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사라진 듯 아닌 듯 지속되고 있다는 점도 우려됩니다. 알게 모르게 광범위한 영역에서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경제의 문제만이 아니라 생활의 모습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생활의 변화로 사회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한마디로 표현한 것이 ‘비대면 사회(Untact society)’가 아닌가 싶습니다. 사람들과 직접적인 접촉이 사라진 사회가 된다는 거지요. 물건을 사도 점원을 만나지 않습니다. 은행에 가도 창구에 사람이 없습니다. 재택근무가 당연시되고 회상회의가 활성화됩니다.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직원이지만 만나 본 일은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학교에서 수업을 받지만 친구와는 저만치 떨어져 있어야 합니다. ‘짝’이란 말이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상호 간에 전염을 피할 거리를 지키고 마스크를 써야 하며 손세정제가 가방에 필수품으로 들어 있는 사회, 그것이 COVID-19가 만들어 가는 비대면 사회입니다. 사람은 상호관계 속에서 자기를 발견하고 규정하는, 이른바 사회적 존재라 하는데 이런 개념을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 COVID-19의 가장 무서운 점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니 ‘격리’라는 대응책에 때때로 존재의 무력함을 느끼는 것이 당연합니다.
비슷한 사건이 예전에도 있습니다. 유럽에 전염병의 공포를 각인 시켰던 두 차례에 걸친 흑사병(페스트)의 창궐이 그것입니다. 2차 혹사병은 봉건제도를 몰락시킨 한 원인이 되기도 했으니 질병이 사회 구조를 바꿔 놓은 예라 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예를 보면서 이번 COVID-19로 인해 우리의 사회 구조가 어떻게 바뀔지 우려되면서 동시에 궁금합니다.
COVID-19가 바꾼 구조의 첫번째는 사회적 거리 지키기 일 것입니다. 사실 말이 멋있어 사회적 거리 지키기이지 사람을 피하고 경계하며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당연히 다수가 밀집된 장소에 간다는 것은 해서는 안될 일이고요. 중국에서 만든 비디오클립에 이 부분을 우스꽝스럽게 풍자한 것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마주치니 서로 반대 벽에 바짝 붙어서 최대 이격 거리를 유지한 채 다니는 내용입니다. 그처럼 거리 중앙을 활보하는 것이 금지될지도 모릅니다. 마치 자석이 같은 극끼리는 서로 밀어내 듯 사람 사이의 관계가 그렇게 변해버릴 지도요.
록키로 유명한 배우 실베스타 스텔론이 주연으로 나온 SF영화 데몰리션맨(Demolition Man)에서처럼 악수 같은 가벼운 스킨십도 병원체를 옮길지 모르므로 금지되고 신체접촉으로 인한 생식활동도 사라진 사회가 현실이 된다면 어떨까요. 타인의 체온을 느끼는 일이 금기시되는 사회가 된다면요? 사랑하는 이를 안아 줄 수 없는 사회가 된다면요? 등교길에 초등학생인 자녀가 묻는답니다. 친구와 손잡고 가도 돼? 당연히 허락할 리 없습니다. 어느 사이에 이미 그렇게 변해가는 부분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어느 누군가가 예전엔 좋은 일이 생기기를 바랬는데 요즘엔 아무 일 없기를 바란다고 쓴 글을 읽었습니다. 문득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안녕하세요 하는 인사가 새삼 실감 나는 때입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좋은 이야기들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 때를 살아가면서 보다 본질적인 삶의 부분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나 봅니다. 어떤 분과 식사자리에서 나눈 이야기입니다.
“코로나라는 것이 대상을 가리지 않지요. 돈이 있거나 없거나, 선진국에 살거나 개발도상국에 살거나 그냥 걸리는 거거든요. 아무리 조심한다 해도 어디서 걸리는 지도 모르게 걸릴 수 있고요. 회복될 수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 그냥 죽음을 맞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지요. 내가 한 행동과 전혀 관계없이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코로나가 알게 해 주었어요. 그래서 후회하기 전에 중요한 일을 하자고 결심했죠.
한국으로 전화를 걸었어요. 장성한 딸이 있거든요. 보기만 하면 타박을 했는데 말이예요. 애에게 그랬죠. 골프 배워라. 애가 물어요. 왜 뜬금없이 골프? 아빠가 너와 좋은 골프장 가서 같이 라운딩도 하고 좋은 것도 먹고 싶어서 그래. 엄마는 아빠가 말하면 잘 안들을 테니 네가 졸라. 둘이 같이 연습하러 다녀.”
딸이 까무러치게 좋아했답니다.
그리고 한마디 까먹지 않고 덧붙이더래요.
“아빠가 갑자기 왜 그래?”
그 분은 조건이 허락되니 가족과 함께 하는 방식을 골프에서 찾았지만 저 같은 사람은 약속 없는 평일 저녁과 주말에는 폰을 무음으로 설정해 두는 것으로 생활을 바꾸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놓치는 전화도 있습니다. 그래도 확인해 보고 필요한 경우에 메시지를 보내거나 다시 연락 드리면 상대도 이해해 주시지요.
덕분에 전에는 제 저녁과 휴일 일정을 움직이는 것이 타인이었다면 이제는 제가 주도적이 된 셈입니다. 처음에는 이것이 비즈니스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염려도 약간 있었는데 지금까지 그런 심각한 일은 일어나지 않네요. 오히려 저녁시간의 평화를 얻었다고 할까요. 바이러스가 바꿔 놓은 일상의 변화인 셈입니다.
그런데 희한하지요? 베트남이 안전해져서 저녁의 생활이 살아나니까 제가 먼저 알아서 전화를 하고 약속을 잡는 등 생활이 다시 부산해 집니다. 어렵게 찾은 평화를 제가 먼저 파기하고 있답니다. 심각하다가도 금방 언제 그랬냐 싶게 바뀌는 걸 보면 확실히 사람은 환경에 적응하도록 지어졌나 봅니다. /夢先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