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비가 늦는다 싶었습니다. 4월이 다 가고 5월의 반을 흘러 보내도록 비를 볼 수가 없었습니다. 마른 하늘은 답답한 마음을 더욱 내리 눌렀고 밤이 늦어도 속이 얹힌 듯 가슴은 풀리지 않았습니다. COVID-19로 인해 보이지 않는 족쇄를 찬 채 살았던 몇 개월의 기억이 갑갑함을 더하게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어린 시절 신작로 옆 가게의 평상에 앉아 지루한 기다림 끝에 불쑥 멈추어 선 버스가 만든 흙먼지 사이를 뚫고 별안간 모습을 드러낸 반가운 누이의 웃는 모습처럼 갑작스레 비가 찾아왔습니다. 일이 있어 동나이를 다녀오는 길에 저만치 도시 위로 검은 구름이 무겁게 드리워져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곧 우기가 시작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 사이 구름들은 빠르게 움직이며 하늘 위로 층층이 겹을 쌓아가고 있었습니다. 시의 경계를 넘어서니 천둥소리가 들렸습니다. 비 소식을 들려주는 전령의 급한 목소리 같이 들렸습니다. 창문을 조금 내렸습니다. 비 냄새가 바람에 섞여 차 안으로 비집고 들어옵니다. 옛 기억처럼 새삼스럽고 반가웠습니다.
2군으로 들어서니 몇 방울의 빗줄기와 마주해야 했습니다. 사람들이 달리던 오토바이를 멈추고 우비를 꺼내 입기 시작합니다. 여기 사람들이 이런 행동을 할 때는 비가 제법 내릴 것이라는 신호로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기가 막히게 비를 구별할 줄 압니다. 아니나 다를까, 빈탄 사거리를 지나자 마자 비가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사무실에 도착하도록 비는 그 세기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도시를 채우고 있던 황량함이 일시에 씻겨가는 느낌입니다. 마음을 누르던 그 무엇들이 비바람에 풀풀 날아가 버렸습니다. 어렵게 겪어낸 이 도시의 한 계절이 비에 쫓겨 저만치 달아나고 있었습니다. 건기가 차면 우기가 옵니다. 우기의 물이 바닥을 드러내면 다시 건기가 찾아옵니다. 신호가 없어도 그 날은 그렇게 불쑥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입니다.
이 도시에서 같은 비를 보고 사는 우리들은 머문 기간에 따라 몇 그룹으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이곳에 생활의 터전을 이룬 정착형(定着型) 교민이 있고, 회사의 업무로 말미암아 기한을 정하고 머무는 주재원 같은 그룹도 있고, 단기적인 업무나 여행으로 머무는 이들도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주재원인데 본사로의 복귀가 예정되어 있지 않은 채 십년을 훌쩍 넘겼으니 주재원과 정착형 교민에 가까운 어딘가에 포지셔닝하고 있겠지요. 그 위치가 어디든지 간에 오래 머문 이들에게는 동일한 지식이 있습니다.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건기가 가면 반드시 우기가 온다 와 같은 지식입니다. 여행으로 이 도시를 방문한 사람들은 열대몬순 기후의 비를 마주할 기회가 없었을 터이니 장마비로 아닌 것이, 봄비도 아닌 것이 매일 같이 찾아와 한두 번씩 퍼 붇고 가는 것이 신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묻겠지요.
여긴 매일 이래요? 그때 우린 턱을 살짝 들어올리며 이렇게 대답합니다. 지금은 우기라서 그래요.
COVID-19로 격리와 봉쇄라는 생전 처음 당하는 험한 상황을 접하면서 우리가 반복적으로 겪던 일상에 변화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도 여간해서 뿌리를 내리기 힘든 쉽지 않은 환경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이런 일들은 징후로써가 아니라 실제로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4월 중순까지의 강력했던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통제는 풀리기 시작했고 생활과 산업 전반이 활기를 되찾아 가고 있지만 여기저기 상처를 입은 구석들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격리가 남긴 여파입니다. 문을 닫은 식당들,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업장들, 심지어는 어느 제조업체 사장님이 야반 도주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들도 가끔씩 듣는 것을 보면 그렇습니다. 조금 더 나아가면 베트남에 투자를 많이 하는 한국에 대한 대우가 각별하지 못하니 더 이상의 투자를 멈추고 주변 국가로 이전해야 한다는 둥 현상에 감정을 섞은 근본을 알 수 없는 말들도 떠돌아다닙니다. 그런데 가만히 두고 보면 이런 일은 이미 예측되어진 일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외국인 기업으로 또는 외국인 신분으로, 시민권 제도도 없는 국가에서 사업을 일구고 사람을 쓰고 생활을 영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발전의 속도가 빨라 금방 습득하고 쉽게 자리를 확장해 가는 이 땅의 사람들을 보면서 가끔 부러운 생각이 드는 것은 내가 주인이 아닌 것을 아는 나그네의 심정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머무는 나라의 발전에 기여한다 해도 우리가 향유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건기가 끝나면 우기가 시작되고, 우기가 되면 하루에 한두 번은 세찬 비를 맞아야 하는 것이 당연히 정해진 일인 것처럼 우리의 일들이 자라면 한계를 고민하고 다시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함은 어쩌면 해외에 터를 잡은 이들의 숙명인지도 모릅니다. COVID-19는 그 시점을 다만 과격하게 앞당겼을 뿐인지도요. 그러므로 최근 교민들이 겪는 고통과 사회의 어려움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 위를 덮고 떠다니는 소문과 불평들에 대하여는 우리의 한계를 알면서도 대비하지 못해 허둥지둥하고 있음을 변명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그러니 비를 구분하며 멈추어 우비를 꺼내야 할지 아니면 비를 맞고 달릴 것인지 구분하는 이들처럼 때를 구분하는 지혜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아니, 그들보다 더욱 민감하게 시절을 분별하고 준비해 가는 지혜가 있어야 하겠지요. 시절을 분별하는 지혜는 무엇보다 이 땅과 거기에 사는 사람들을 아는 지식으로부터 비롯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려면 생각은 열리고 판단에는 균형이 있어야 하겠지요. 이것이 정착하여 이 땅에 오래 산 이의 덕목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오래 머물면 머물수록 이런 근육이 붙어 가기를 소망합니다. 그런데 막상 돌아보면 실상은 그렇지 못한 자신을 발견합니다. 어느 사이에 분별의 지혜는 나만 옳다는 고집으로 바뀌어 있고 이 땅의 사람들에 대한 지식은 한 편으로 치우쳐 굳어진 편견이 되어 돌덩이 같이 저를 누르고 있습니다.
우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건기가 끝나면 비가 오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 예정된 당연한 지식을 고집과 편견으로 뭉쳐 준비도 없이 당하지 말자고 비 오는 하늘을 보며 수도 없이 다짐합니다. /夢先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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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훈 성균관대학교에서 건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건축가이자 ‘몽선생의 서공잡기’, 크룩스크리스티’의 저자이며 일러스트레이터로도 활동했다.
현재 설계, CM전문회사인 정림건축의 베트남 법인장으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