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호킹 (Stephen Hawking 1942~2018)| (참고한 책 : “시간의 역사”
A briefer history of time,
스티븐 호킹&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지음, 전대호 옮김, 까치, 2006.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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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시간, 인간의 시간
인도 창조 신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처음에 우주는 인간의 모습을 한 자아self 였다. 그가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아무도 없었다. 그러자 두려웠다. 사람이 혼자 있으면 두려워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자아는 생각했다.
“내가 대체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나 외에는 아무도 없는데.”
그러자 두려움이 사라졌다. 그러나 불행했다. 왜냐하면 혼자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혼자 있을 때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남녀가 부둥켜안고 있는 형상만큼 커졌다. 그러고 나서 스스로 자신의 형상을 둘로 나누었다. 형상은 남편과 아내로 나뉘었다.
그는 아내와 교합했고 인간이 태어났다. 아내는 그가 싫어졌다. 사람이 너무 오랫동안 가까이 있으면 싸우는 이유다. 아내는 암소로 변해버렸다. 그러자 그가 수소로 변해 암소와 교합했다. 그래서 소가 태어났다. 이제 아내는 암말로 변해 달아났다. 그는 수말이 되어 아내와 교합했다. 그래서 말이 태어났다. 이렇게 하여 작은 개미에 이르기까지 짝으로 존재하는 모든 생물이 만들어졌다. 드디어 그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내가 만물을 지었으니 내가 곧 창조로구나.”
그리하여 자아는 창조로 불리게 되었다.’
나는 세상이 만들어진 시간이 문득 궁금해진다. 태어난 모든 것들을 죄다 죽이고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모조리 태어나게 한 시간 말이다. 우리는 죽게 될 텐데 죽고 난 뒤에도 이 세계의 시간은 끊임없이 흘러갈 텐데 그 끝은 있는 것일까? 끝이 있다면 시작 또한 있을 터, 시간은 어떻게 해서 생겨나게 됐을까? 설명할 수 없는 질문만 늘여 놓다 나는 이 책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설화나 신화로만 가늠할 수 있었던 광막한 시간의 역사를 우리 눈 앞에 아름답게 펼쳐 놓은 책이었으니 바로 ‘시간의 역사’다. 책은 시작부터 흥미롭다.
한 과학자가 우주 천문학에 관한 대중 강연을 하던 중 강의 말미에 뒷좌석에 앉아 있던 한 할머니로부터 일종의 항의를 받게 된다.
“당신의 이야기는 말도 안 돼요. 세계는 거대한 거북의 등 위에 얹혀 있는 평평한 판이라구요.”
과학자는 여유 있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 거북은 무엇의 위에 서 있지요?” 그러자 할머니는
“똑똑하군요, 젊은이, 아주 똑똑해”라고 비아냥거린 후 “그 아래로는 그렇게 끝없이 거북들이 있지요.”
저자는 우스꽝스럽게 들릴 지도 모르는 할머니의 말에 웃지 않는다. 웃기는커녕 얼굴을 고쳐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우주에 대해, 시간에 관해 할머니보다 더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 그리곤 담담하게 시간의 시작과 무한의 질량을 간직하고 점으로 존재했던, 우주가 ‘無’였던 상태로 우리 손을 잡고 안내한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조곤조곤 이해가 될 때까지, 이해가 안 될 성싶으면 사례를 들어 친절하게 설명한다. 덕분에 알게 되는 천문학적 지식은 이제껏 살아오면서 알고 있던 상식을 능가한다. 이건 어떤가,
‘초신성 폭발 직전에 생성되는 무거운 원소들 중 일부는 은하 속의 기체 구름 속으로 다시 방출되어 다음 세대의 별들을 구성하는 재료가 된다. 우리의 태양은 그런 무거운 원소들을 약 2퍼센트 포함하고 있다. 우리의 태양은 약 50억 년 전, 전에 있었던 초신성의 방출물을 포함하고 있는 회전하는 기체 구름으로부터 형성된 제 2세대 혹은 제 3세대 항성이다. 그 기체 구름 속의 기체는 대부분 태양을 형성하는데 쓰였거나 공간 속으로 멀리 흩어졌다. 그러나 무거운 원소들 중 일부는 모여 들어 태양을 공전하는 행성들을 형성했다. 우리의 금고 속에 있는 금과 원자로 속에 있는 우라늄은 우리의 태양계가 탄생하기 전에 일어난 초신성 폭발의 잔재다!’
이로써 우리는 135억년 된 우주 안에 있음이 분명해졌다. 우리는 비록 점에 지나지 않지만 우주를 구성하는 일원이니 당당해야 한다. 투쟁하는 전사도 항거하는 열사도 평범했던 회사원도 돈 못 벌어 환장하는 사장님도 늘 후회라는 걸 달고 살겠지만 사람이 살고 죽는 곳에서 후회를 해 본들 죽은 삶이 살아나고 살아있는 삶이 죽게 되진 않는 법. 당당하지 않을 이유가 없고 늘 당당해야 할 이유는 없는 법이다. 사는 대로 살지 않을 이유가 없고 주어진 대로 살아야 할 이유도 없다. 이것은 역설이겠지만 태어났을 때부터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삶이니, 또한 죽기 위해 살아야 하는 역설은 역설 중에 역설이니 이보다 더한 역설은 세상에 없을 것. 그래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소중한 것이다. 시시한 재테크나 하면서 밥에 묶여 째째하게 살지 마라. 우주의 박동을 들어라. 살고 싶은 삶을 살아라. 큰 생각이 인생을 폭풍처럼 뒤흔들게 하자.
저자인 스티븐 호킹 박사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석좌 교수였다. 21세의 젊은 나이에 루게릭 병을 앓기 시작했고 병고에 시달리면서도 미시세계의 양자역학과 거시세계의 중력이론을 통합하는데 일생을 바쳤다. 아쉽게도 2018년 우리 곁을 떠났으니 그의 나이 76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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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용 | E-mail: dauac9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