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November 22,Friday

‘군주론 (君主論)’ – 마키아벨리

마키아벨리만큼 후대 역사가의 평가가 극명한 사람도 드물 것 같다. 잔악한 군주의 교본을 만들어 백성과 인민들의 잠재적인 적으로 평가하는 반면, 아무도 얘기하지 않은 솔직함을 바탕으로 비도덕적 권력의지 표방한 첫 번째 근대인이라는 평가도 있다. 그에 관한 사람들의 평가는 어디까지나 주관의 영역이어서 옳고 그름을 가릴 시비의 대상은 아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통해 혁명적인 발상을 세상에 내 놓았다는 사실이다. 무엇이 혁명적인가? 그 이전의 시대까지만 해도 누구도 입 밖에 내지 않았던 것, 과감하게 악(惡)을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는 르네상스가 절정에 달할 무렵의 사람이다. 역사학자 윌 듀란트에 의하면 “르네상스는 미술에 자신의 영혼을 바치고 작은 부분을 문학에, 철학에는 아주 조금 그리고 과학에는 가장 조금 영혼을 바쳤다.” 고 말했다. 인간의 모든 활동을 신이 지배하던 영혼의 시대에 마키아벨리는 영혼을 말하기는커녕 거칠고 사나운 ‘표면’을 이야기한다. 즉 국가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군주가 악을 자행해도 된다고 주장한 것이다. 권력과 정치학의 입장에 서면 정치는 도덕적인 것과 무관해진다고 설파하며 그저 무한한 권력의지만 갖고 있으면 된다고 말한다. 그 시기를 살펴보면, 로마 가톨릭의 힘이 엄연하던 시대였다. 마키아벨리 이전 시대의 정치사상의 목표는 인간에게서 악을 제거하고 선을 쌓는 것이었다. 이 전통을 마키아벨리가 ‘박살’낸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혁명가라 불리는 이유다.

‘우리는 개혁자들이 자신들의 힘에 바탕하여 행동하는지 아니면 타인에 의존하는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즉 성공하기 위해서는 타인을 설득할 필요가 있는지 아니면 능히 자신의 무력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지를 검토 할 필요가 있다… 결과적으로 무기를 든 예언자는 모두 성공한 반면 말뿐인 예언자는 실패했다.’

무기를 든 예언자는 공권력을 장악한 권력자다. 마키아벨리 이전 시대까지만 해도 권력이란 신과 가장 가까이에 있을 수 있는 신권이었다. 현대적인 무력, 그러니까 군대, 경찰, 법률, 제도를 주무를 수 있는 권력이 아니라 누가 얼마나 신과 근접한 자리에 있느냐가 곧 권력이었다면 마키아벨리는 권력의 의미를 근대적 무력과 실제적인 파괴력 설명한 첫 인류였던 것이다. 그는 군주론에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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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무력에 근거하지 않는 권력의 명성처럼 취약하고 불안한 것은 없다.’ 고 하면서 영혼이나 세계의 배후에 존재하는 잡히지 않는 신을 이야기하기 보다 사건과 인간의 표면에 존재하는 세속적 힘의 원리를 파악하고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고 매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론이나 사변보다는 사물의 실제적인 진실에 관심을 경주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현실 속에 결코 존재한 것으로 알려지거나 목격된 적이 없는 공화국이나 군주국을 상상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 어떻게 사는가’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와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바를 행하지 않고 마땅히 해야 하는 바를 고집하는 군주는 권력을 유지하기 보다는 잃기 십상이다.’

말하자면 마키아벨리가 이해한 정치학은 국가를 만들고 보존하고 보호하고 강화하는 고급 기술이었다. 프란시스 베이컨은 일찍이 마키아벨리의 솔직함에 자극을 받아 그에 관한 언급하기를 ‘우리의 감사는 마키아벨리와 그 비슷한 저술가들을 향한 것이다. 그들은 공개적으로 전혀 위장하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그들이 무슨 일을 하는 데 익숙한가를 보여 주었다.’고 했다. 마키아벨리의 솔직함에는 어떤 자극의 요소가 있다. 어떤 철학자도 감히 토론하려고 하지 않았던 질문에 마주치게 된다. 일상의 공기를 낯설게 만들어 체제와 국가, 민족, 사회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묻게 만든다.
마키아벨리에서 비롯된 이 질문들이 시대를 거쳐 발전하게 된 것이 존 로크의 ‘통치론’과 장 자크 루소의 저작들로 이어지게 되는데 마키아벨리가 자신의 시대 최대 권력이었던 ‘군주’에 관해 말했다면 로크와 루소는 전통적인 토지귀족에게 대항해서 상업활동으로 돈을 번 신흥 부르주아들의 권력 쟁취투쟁이 녹아 들어 있다. 루소는 프랑스대혁명의 도화선이 되었고 이는 ‘사회계약’과 관련된 18~19세기 근대 ‘국가체제’를 잉태하게 되는데 여기서 인간의 평등과 자유를 사상적으로 서술한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으로 녹아 들게 된다. 결국 자유론은 토머스 재퍼슨에 의해 미합중국 독립선언서에 그대로 인용되면 세상의 패권을 장악한 현대 국가의 사상의 중심으로 자리 잡는다. 말하자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으로부터 촉발된 근대적 권력 개념은 현대를 낳게 한 사상의 원류인 것이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를 일컬어 ‘마지막 르네상스 인간이자 첫 번째 근대 인간’이라 부른다.

군주론이 쓰여지게 된 계기가 다소 비굴하다. 1512년, 스페인의 공격으로 피렌체 공화국이 무너지고 메디치 가문이 재집권하면서 공직에서 밀려난 그는, 공직의 끈을 이어가려 갖은 고민을 했고 결국 당시 최고 권력이었고 메디치 가문의 전성기를 일군 로렌초 데 메디치의 눈에 들려 ‘군주론’을 집필하여 바쳤던 것이다. 불운하게도 메디치 가문에서는 철저하게 그를 외면했다. 1527년에 메디치 정권이 또 다시 무너졌고, 공화정이 재건되었을 때 마키아벨리는 메디치 가문을 위해 일 했다는 이유로 역시 공직을 맡을 수 없게 된다. 그는 실의에 빠져 마지막까지 어디에도 부름을 받지 못하고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훗날 그의 고향인 피렌체에 세워진 그의 기념비에는 사람들이 그를 기리며 이렇게 세겨 놓았다. ‘어떤 묘비명도 이 위대한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다.’

장재용 | 작가, 산악인, 꿈꾸는 월급쟁이 | E-mail: dauac9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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