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베트남에 대한 기대치가 한껏 높아진 탓인지 베트남에 진출을 원하는 회사들의 방문이 최근 들어 잦아졌다. 대부분의 경우에 베트남에서의 건설행위에 대한 내용을 문의하는데 개중에 베트남 사업 진출방식에 대한 자문을 원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 우리 회사의 경험을 말해 주곤 한다.
그런데 듣는 이들이 관심을 두고 재미있어 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이 우리에게 없었던 세 가지이다
어느 회사나 진출 초기에 생존을 위한 그들 만의 전략이 있는 법이다. 우리도 당연히 그러했다. 정림건축의 베트남법인은 그때까지의 설계회사들과 다른 진출방식을 택했다. 베트남에 파트너를 두지 않고 본사가 파견한 단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했다. 본사 지원 없이 자체적인 현지 적응과 성장이 가능할 것인가를 실험했고 민간에서의 네트워크를 만들어내 지속성을 담보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이러한 진출 방식은 무모해 보였다. 대부분의 동종업계 회사들이 프로젝트 기반으로 진출하거나 투자자와 동반 진출하여 리스크를 줄이거나 그도 아니라면 베트남 파트너와 손을 잡아 초기 부담을 줄이는 형식을 택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특별한 초기 전략이 필요했다. 그것이 삼무(三無) 정책이다. 우리 회사에 세 가지를 두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지금 돌이켜 보니 이 전략은 무모했으나 동시에 지혜로웠다. 또 단지 회사만이 아니라 개인이 함께 성장하는 결과를 이루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그래서 여기에 그 생각을 공유한다.
우리가 세 가지를 두지 않기로 한 것은 시효를 둔 약속이다. 회사가 성장하고 어느 정도 현지에서 든든한 기반을 쌓았다는 판단이 들었을 때는 이 전략도 수정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 세 가지는 다름아니라 브로커, 통역, 승용차이다.
첫째, 브로커(Broker)이다. 브로커란 중개자이다. 한국 사람들은 브로커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병역 브로커, 경기조작 브로커 등 온갖 불법적인 일에 이 단어가 따라다녔기 때문이다. 원래 브로커는 가치 중립적이며 범죄 행위와는 관련이 없는 단어이다. 증권사 직원도 부동산 중개사도 영어로는 브로커(Stock broker, Real estate broker)이다. 설계업무에도 브로커가 있다. 자기의 인맥과 정보력을 활용하여 기업에 정보를 주거나 업무를 연결하여 주고 그 대가로 일정 몫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런 브로커를 활용하면 성과를 낼 확률이 높다. 그런데 이런 일의 특성은 대체로 사업의 규모가 크다. 사업의 규모가 크다는 것은 일이 장기화될 확률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브로커를 활용하면 일을 얻는 데는 유리하지만 불확실성이 증가한다. 우리 같이 초기 설립 사무실에 있어 불확실성의 제거는 실제적인 시장을 판단하는데 유익하다. 중간에 누군가가 끼어 들면 상황을 바로 보기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 부딪쳐 시장을 겪어내는 방식을 택했다. 그래야 경험이 내공으로 쌓일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가 통역이다. 외국인 회사에서 통역을 채용하는 일은 보편적이다. 소통의 한계가 있으므로 대외 활동이든 내부의 관리이든 통역이 없으면 감수해야 하는 불편이 늘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역을 두지 않았다.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우리가 목표하는 것이 현지화 된 회사이기 때문이었다. 현지화 된 회사라 함은 거하는 그 곳이 중심이 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모든 정책의 중심에는 현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언어는 소통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언어에는 그 나라 문화의 정수가 녹아 있다. 그러므로 그 나라의 언어를 사용하고 익힌다는 것은 소통뿐 아니라 상대방의 문화에 대한 존중의 직접적인 표현이 된다. 주재원들이 먼저 상대방의 언어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고 익히려고 노력하는 것은 현지화를 지향하는 기업에는 필수적인 절차라고 믿는다. 물론 능란하게 언어를 구사하면 좋겠지만 다른 이의 도움을 받지 않고 기본적인 생활을 하는데 무리가 없다면 그 정도로라도 좋다. 또 다른 이유는 현지 직원들과의 벽을 허물기 위해서이다. 통역이 없어지면 간격이 좁아진다. 상대의 온도가 느껴진다. 내가 답답한 만큼 그도 답답하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일을 하면서 상대에 대한 마음이 쉽게 열린다. 예전에 다른 나라에서 장기간 근무하며 깨달은 나름의 논리이다. 여하튼 통역은 중요하지만 통역으로 인해 잃어버리는 것도 많음을 알아야 한다. 다른 나라에 와서 일한다면 그 나라의 언어를 간단하게 라도 익히는 것이 상대 문화에 대한 존중의 기본적인 자세이다. 그리고 베트남어를 익혀 보라. 직원들과 더불어 더 많은 성장의 기회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이제 세 번째인 승용차이다. 여기에서 의아해하는 분들이 있다. 차가 없이 불편해서 어떻게 다녀? 오해하지 마시라. 나는 승용차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다른 의미가 담겨있다. 베트남에서는 승용차를 자가 운전하지 못한다. 도로 사정도 문제이고 오토바이의 혼잡함도 있고 사고가 났을 때 외국인이라는 점이 약점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사를 두게 된다. 문제는 여기서 생긴다. 기사가 똑똑하면 똑똑할수록, 운전을 잘하면 잘할수록 탑승자는 점점 더 기회를 놓친다. 무슨 기회이냐고? 이 도시를 이해할 기회이다. 그래서 나는 호찌민으로 장기 파견 근무를 나온 사람들에게 주말이면 오토바이 타기를 추천한다. 대부분의 경우는 본사에서 위험하기 때문에 허락하지 않는다는 대답을 한다. 이해한다. 그러나 자기가 머무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해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면 오토바이를 경험하는 것이 좋다. 오토바이를 탄다는 것은 이 도시의 사람들과 눈 높이를 같게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호찌민의 소비자 문화가 오토바이 운전자들의 편의와 이동 경로를 따라 발전했기 때문에 소비자 시장과 일반 시민 문화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또 오토바이를 타게 되면 승용차 안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엄청난 양의 정보로 쏟아져 오는 것을 바로 느끼게 된다. 물론 안전을 염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시내에서 주행해 보면 생각보다 사고 날 일이 드문 환경이라는 것도 금방 깨닫게 된다. 사고는 자신감이 생기고부터 염려해도 된다.
브로커나 통역이나 승용차나 회사에는 필요하다. 특히 통역이나 승용차가 없어서 겪어야 하는 불편은 많다. 우리도 지금은 이 정책들을 접은 상태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 세가지를 두지 않았음으로 인해 우리가 이 도시를 더욱 이해하고 현지화 된 회사를 일군다는 목표에 더욱 가까워졌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베트남으로 진출을 원하는 분들께 자문할 때마다 이 일을 말씀드린다. 불편이 우리를 성장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夢先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