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이탈리아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인 주세페 베르디(1813~1901). 그는 생전에 28편의 오페라를 작곡했다. 베르디보다 다작을 한 오페라 작곡가들도 역사 속에는 존재한다. 하지만 시공을 초월해 오늘날까지 불멸의 파워를 자랑하며 세계 각지 유수의 극장을 가장 뜨겁게 달구는 오페라는 명실공히 베르디의 손에서 탄생했다. 21세기가 시작된 지 약 20년이 흐른 지금, 아직도 오페라를 고상한 드레스와 턱시도와 함께 패키지로 다녀야 하는 따분한 ‘품위유지 장르’로만 생각하는 분들 계실까? 당연히 계실 것이다. 뿐만 아니라, 베르디하면 ‘축배의 노래’만 떠오르시는 분 역시 계실 듯 하다. 그렇다면 오늘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레파토리를 좀 늘이게 되실 것 같다. 고상한 이야기와는 거리가 좀 있는, 눈길 확 끄는 스토리의 베르디 오페라 몇 작품을 소개하려고 한다.
지구력 끝판왕 ‘복수혈전’ <일 트로바토레: 음유시인>
15세기 초엽 스페인 바스카야. 한 집시 노파는 귀족의 아기를 쳐다봤다는 죄로 마녀라는 오해를 받아 처형당한다. 그 후 얼마 안가 노파가 쳐다봤던 아기는 곧 불구덩이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알고 보니 처형당한 노파의 딸(아주체나)이 어머니의 복수를 위해 귀족의 아기를 불길 속으로 던져 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복수에 눈이 뒤집혀 아기를 불구덩이에 던진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검게 타버린 아기의 시체가 귀족이 아닌 자신의 딸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그 자리에서 혼절하고도 남을 상황일텐데 아주체나의 정신력 대단하다. 무슨 꿍꿍이인지 귀족의 아기에게 ‘만리코’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자신이 키우기 시작한다. 만리코는 성장해 ‘트로바토레(음유시인)’가 되었고, ‘레오노라’라는 여인과 사랑에 빠진다. 한편, 레오노라를 이미 사랑하고 있던 청년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줄거리 첫머리에 등장했던 ‘그’ 귀족의 첫째 아들 ‘루나 백작’이었다. 정확히 말해, 만리코의 친형이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당연히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고, 그저 레오노라를 사이에 두고 으르릉거리더니 급기야는 결투를 벌이게 된다. 여기서 비극은 깊어진다. 형 루나 백작이 동생 만리코를 살해하게 되기 때문이다. 참으로 오랜 세월 복수의 칼날을 갈아온 아주체나. 그는 만리코가 사망하자마나 루나 백작에게 이렇게 말한다. “잘 봐! 당신이 죽인 사람이 바로 당신의 친동생이라구! 드디어 당신의 칼에 의해 내 복수는 완결되었어!”
유럽에서 오랜 세월 천대 받아왔던 ‘집시’의 삶을 주제로 한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는 현대의 막장 드라마같은 황당한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는 오페라이다.
숨길 수 없었던 스웨덴 국왕 시해 사건 <가면 무도회>
1792년, 스웨덴 국왕 ‘구스타프 3세’가 암살되었다. 구스타프 3세(1746~1792)는 통치 기간동안 스웨덴의 다각적 계몽주의를 이끈 왕이었다. 전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던 그에게도 반대세력은 있었나 보다. 구스타프는 일부 귀족들의 음모에 의해 스톨홀름 오페라 하우스에서 열린 가면 무도회에서 ‘앙카르스트룀’ 대위에게 총을 맞은 후 며칠 뒤 사망하게 되었던 것이다. 시간이 흘러, 국왕 시해 사건은 베르디에 의해 오페라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오페라의 제목은 <구스타프>. 하지만 왕이 시해당한 이야기를 다루었다는 이유로 당국은 상연을 금지했다. 우여곡절 끝에 베르디는 당국과 협상을 했다. 어떻게? 오페라 제목은 ‘가면 무도회’로, 주인공의 이름은 보스턴의 총독 ‘리카르도’로, 무대의 배경은 ‘17세기의 보스턴’으로 전면적인 수정을 가한 것이다. 과연 <가면 무도회>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보스턴의 총독 ‘리카르도’는 자신의 친구이자 비서관인 ‘레나토’의 아내 아멜리아와 밀회를 즐기는 사이였다. 믿었던 친구 리카르도가 자신의 아내와 불륜관계인 것을 알게 된 레나토는 두 사람에 대한 극심한 배신감에 치를 떨더니, 한 가면 무도회에서 시퍼런 칼을 들고 리카르도에게 돌진한다. 칼은 정확히 리카르도의 배에 꽂혔다. 피를 뚝뚝 흘리며 죽어가던 리카르도는 친구 레나토에게 말한다. 사실 자신과 아멜리아의 사이가 레나토가 생각하는 그런게 아니었다고. 레나토가 죽어도 믿지 못할 그 말… 총독 리카르도는 숨이 멎어가면서도 자신을 찌른 레나토를 사면하겠다고 말한다. 그렇게 그는 연인과 친구를 뒤로 하고 숨을 내려놨다. 음모에 빠져 시해당한 왕의 이야기는 당국의 눈을 피하기 위해 불륜과 복수 이야기를 첨가하며 모습이 확 바뀌었다. 하지만 당시의 관객들이 눈치채지 못했을까? <가면 무도회>는 누가봐도 국왕시해사건이 모티브가 된 오페라였다. 사람들의 입소문은 대단했다. 덕분에 베르디의 <가면 무도회>는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당시 가장 핫한 오페라로서의 명성을 누리게 되었다.
왕권의 유혹을 버리고 생매장된 사나이 <아이다>
오페라 <아이다>는 프랑스 출신 이집트 고대사학자 ‘마리에트 베이’가 창안한 이야기를 토대로 했다. 이집트의 ‘브라크 박물관장’으로 재직하던 마리에트는 고대 사원의 제단 밑에서 남녀의 해골이 발견된 것에서 힌트를 얻어 <아이다> 대본을 만들었고, 이것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대본작가들의 손을 거친 후 최종적으로 베르디의 음악을 만나면서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아이다> 속으로 들어가 본다.
‘아이다’는 원래 에티오피아 왕국의 공주였지만 지금은 이집트로 끌려와 공주 ‘암네리스’의 하녀가 되어 있다. 그녀는 이집트의 무장인 ‘라다메스’와 열렬히 사랑하는 사이였는데, 하필 공주 암네리스 역시 라다메스를 흠모하고 있었으니, 암네리스와 아이다 그리고 라다메스는 삼각관계에 빠진 셈이었다.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집트의 왕은 라다메스가 자신의 딸 암네리스와 결혼해 왕위를 이어가길 바라고 있다. 항 에티오피아전에서 무공을 세우며 개선장군이 되어 돌아온 라다메스는 무슨 소원이든 다 말해보라는 이집트 왕에게 자칫하면 ‘아이다와 결혼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할 뻔한다. 하지만 왕의 노여움을 살 것이 뻔한 상황이었기에 대신 감옥에 수감된 에티오피아 죄수들을 사면해 달라고 간청한다. 승리를 자축하던 만찬에서 한껏 들떠있던 왕은 흔쾌히 승인을 한다. 헌데 죄수들 가운데서 모습을 보인 에티오피아의 왕 ‘아모나스로’! 이집트의 왕은 아모나스로와 아이다 부녀를 다시 억류하라고 명령한다. 그리고 라다메스와 아이다의 사이를 어찌 눈치 챈 것인지 암네리스와 라다메스의 결혼식을 강행하라고 지시한다. 그 즈음, 에티오피아 왕 아모나스로는 딸 아이다에게 비밀 임무를 준다. 라다메스의 결혼식 날 혼잡한 틈을 타 그에게서 군사기밀을 캐 오라고. 아버지와 조국을 살리기 위해 아이다는 두려움을 뒤로 하고 라다메스를 찾아낸다. 몸은 공주 곁에 있지만 마음만은 온통 아이다에게 가 있던 라다메스는 이집트의 군사기밀을 너무 쉽게 아이다에게 흘려준다. 그런데, 그 순간을 포착한 공주는 질투심이 폭발해 라다메스를 현장 체포한다. 아이다는 현장을 가까스로 탈출했지만, 라다메스는 이미 도망갈 마음이 없었던 터. 기꺼이 포승줄에 몸을 맡긴다. 곧 군사 재판이 열렸고, 암네리스는 라데메스에게 자신과 결혼한다면 모든 죄를 용서하겠다고 말한다. 단칼에 거절한 라다메스는 사형을 선고받아 지하 돌무덤에 생매장 될 처지가 된다. 여기서 말도 안되는 장면이 나온다. 라다메스가 묻히기로 예정된 돌무덤 속에 아이다가 이미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두 손 꼭 붙들고 함께 생매장된다. 지상에서 못 이룬 사랑을 지하 세계에 가서라도 지키겠다는 듯이.
김 지 희
강원대학교 사범대학 음악교육과 졸업(교육학 학사) / 미국 맨하탄 음악 대학원 졸업(연주학 석사) / 한세대학교 음악 대학원 졸업(연주학 박사) / 국립 강원대학교 실기전담 외래교수(2002~2015) / 2001년 뉴욕 카네기홀 데뷔 이후 이태리, 스페인, 중국, 미국, 캐나다, 불가리아, 캄보디아, 베트남을 중심으로 연주활동 중 / ‘대관령 국제 음악제’, 중국 ‘난닝 국제 관악 페스티발’, 이태리 ‘티볼리 국제 피아노 페스티발’, 스페인 ‘라스 팔마스 피아노 페스티발’ 《초청 피아니스트》 E-mail: pianistkim83@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