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November 22,Friday

소중한 인연

올 해 설 연휴에는 아무 계획도 없다가 갑자기 달랏으로 3박4일 여행을 가게 되었다. 아이들이 커서 기저귀, 분유 싸들고 다니던 시절에 비하면 짐이 줄었다지만, 하루를 가던 한 달을 가던 아이들 짐은 거의 이사짐 수준이라 한국도, 여행도 가기 싫어 아무 계획 없이 뗏 연휴를 맞이했다. 막상 너무 긴 연휴가 두려워 알아보니 달랏에 비행기표와 호텔이 남아있어서 급히 짐 싸서 떠난 여행이었다. 한국에서 보던 소나무 숲도 반갑고, 높이 높이 솟아있는 산들도 반가웠다. 아침저녁으로 부는 차가운 바람은 내 정신을 맑게 해 주었다.

아이들도 그런 자연이 좋았는지 내내 숲을 뛰어다니고, 또 힘들면 걸으면서 노래도 부르며 여유를 즐겼다. 키즈카페와는 다른 자연이 주는 여유와 즐거움이 있었다. 급히 잡은 여행이라 큰 기대도 일정도 없었기에 더 여유 있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달랏의 한적한 호텔에서 이틀째 아침을 먹는 중이었다. 화장실을 다녀오는데 처음 보는 여성분이 나에게
“저, 혹시 J.Saigon님 아니신가요?” 라고 물어보신다.
‘이름도 얼굴도 안 실었는데 나를 어떻게 알아보지?’
‘육아에세이 이제 겨우 3편 썼는데, 내가 이리 유명인이 되었나?’ 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는 동시에 ‘아이고, 육아에세이 쓴다는 엄마가 애들한테 하는 꼴 좀 봐라’ 싶지는 않았을까 라는 부끄러움도 있었다.
“ 네, 맞기는 한데요…… ”
알고 보니 신짜오 베트남 편집부에서 일하시는 디자인 담당자 분이셨고, 나와 원고에 관한 메일을 주고 받은 사이였다. 시연아, 시우야 라고 부르는 이름과 예전에 보낸 사진에서 본 시연이의 빨간 안경을 보고 인사를 하신 거였다. 처음 만난 사이지만 왠지 모르게 반가웠다.
남편은 ‘ 아이고, 우리 와이프 유명 인사 되셨네~’ 라며 반은 놀리듯이 얘기했고, 나는 ‘혹시 나 밥 먹으면서 애들한테 고함 치거나 뭐 이미지 나쁘게 한 거 없었나? 다른 에세이도 아니고 육아 에세이 쓰는 엄마가 … 아오 . . .본래 모습 다 들켰네’ 라며 앞으로는 남들 보는 앞에서는 꽤나 이상적인 엄마인 척 행동해야겠다며 남편에게도 협조를 요청했다.
남편은 당신이 무슨 연예인이나 된 줄 아냐며 어이없어 했다.
아침을 먹은 후 커피 농장과 화원에 가기로 일정을 잡았다. 탁 트인 풍경의 높고 좋은 자리에서 커피 농장을 내려다보며 커피를 마실 수 있게끔 꾸며놓았다. 미세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하늘과 푸른 농장을 보니 ‘이야~’ 하는 탄성이 저절로 나오던 찰나, 내 또래의 베트남 여성이 나에게 아는 척을 한다. 같은 아파트에 살았던 남자아이 엄마였다. 이사한 지 2년은 되었고, 유치원 다니기 전에 아이들끼리 놀고 엄마와는 인사를 나누고 아이들 이야기를 주로 하는 사이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언뜻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옆에 앉아 있는 아이를 보니 단번에 누군지 알았다. 제법 컸지만, 어릴 적 모습이 많이 남아있었다.
‘아, 타오 엄마!’ 반갑다고 인사를 나누고, 호치민에서도 마주치기 어려운데 달랏에서 이렇게 오랜만에 만나서 신기하다며 소식을 나누고 헤어졌다. 여행지에서 하루에 두 번이나 아는 사람을 만나고 인사를 나누다니!

달랏 여행에서 만난 세 번째 인연은 달랏 시장에서였다. 삼겹살을 배부르게 먹고 달랏 야시장 구경에 나섰다. 시연이는 모자에 달린 줄을 누르면 물개 귀가 한 쪽씩 쏙쏙 올라가는 깜찍한 모자를 샀고, 시우는 피젯 스피너의 화려한 불빛에 현혹되어 하나를 샀다. 나는 기념품으로 3만동짜리 부엉이 가방을 사고(호치민에서는 있을 수 없는 가격이라며!) 남편은 구운 옥수수 하나를 샀다. 배도 부르고 쇼핑도 만족스러웠으며 날씨도 선선했다. 기분 좋게 길을 나서는데, 젊은 베트남 남성이 좀 전부터 나를 보고 인사를 할까 말까 한다. 눈이 마주치자,
“마담, 저 기억나요?” 라고 물어보는데….
그 순간의 당황스러움이란…. 남편도 자식도 옆에 있는데, 왠 젊은 남자가 다가와 자신을 기억하냐고 물어보니 나던 기억도 들어갈 판이었다.
“저는 @@@카페에서 일하던….”
아! 우리 아파트 안에 있는 카페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아르바이트생이었다.
시연이, 시우가 유치원을 다니기 전에는 아침에 눈뜨면 아파트 공원에 내려가서 노는 게 하루 일과였고, 낮엔 너무 더우니 그 카페에 거의 매일 가서 주스며 커피를 마셨다. 2년 정도는 하루에 한 번은 만났던 사이였던 것이다. 반갑다고 인사를 하고, 고향에 왔나 했더니 자기도 달랏 여행을 온 것이고, 카페 일은 그만두고 회사에서 일한다고 했다. 서로 만나 반갑다며 악수를 나누고, 시연이 시우와도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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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국내 여행지에서 4일간의 일정 동안 3번의 인사를 나누었다.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예상치 못한 사람들을 만나 악수를 하고, 안부를 묻고, 남은 여행이 즐겁기를 기원했다.
베트남에 오래 살긴 살았나 보다 싶은데, 알고 보면 이들 모두 아이들을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이다.
육아에세이는 시연이 시우가 있기 때문에 쓰는 글이고, 동네 아이 엄마, 카페 아르바이트생도 시연이 시우와 함께 놀며 쉬며 만난 인연들이다. 아이들 덕에 맺은 인연이 많다. 동네 아기 엄마들, 오며가며 예뻐해 주시는 이웃들, 유치원 선생님들. 이전 같았으면 인사도 없이 스쳐 지나갔겠지만, 아이들이 있으니
‘많이 컸다, 유모차에 앉아서 울던 것들이 벌써 말도 할 줄 아냐. 딸은 엄마 닮고, 아들은 아빠 닮았구나, 키우느라 고생 많지?’ 등 이런 저런 얘기들을 나누면서 알게 된 인연들도 있다. 그렇게 아이들 덕분에 알게 된 인연 중에서 어떤 이는 고민을 나누는 사이가 되기도, 어려울 때 도와주는 사이가 되기도, 맥주가 생각나는 날이면 잠깐 만나 시원하게 한 잔 하는 사이가 되어 있기도 하다.

시연이 시우가 아주 어렸을 때는 이 아이들 때문에 밖에 잘 나가지도 못하고, 그 동안 알고 지내던 사람들도 못 만나고, 더운 여름날 끝에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 잔도 즐기기 못하게 되니, 그 동안 맺어왔던 소중한 인간관계를 포기해야 하는구나, 내 인생의 즐거움은 어디서 찾아야 하나, 아이들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이 부모로서의 즐거움이고 기쁨인가 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조금 키워놓고 보니 시연이 시우 덕분에 나의 삶의 반경이 더 넓어지고 다양해지고 풍성해질 수도 있겠구나 싶다. 그렇게 확장된 관계 속에서 아름다운 인연을 이어가는 것도 새로운 즐거움과 기쁨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들을 통해서 인연을 만드는 법, 사람을 사귀는 법, 그리고 한 번 맺은 인연을 소중하게 가꾸는 법을 다시 배우는 중이다.


J.Saigon | #호치민 #육아 #남매 #쌍둥이맘 #10년차 #별의별 경험 #육아책 읽는 #전공은 문학 #알고 보면 체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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