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두 도시의 문화 이야기
역사적 배경 차이로 두 지역의 소비 성향까지 같은 듯 다르다.
하노이 ‘뭐니뭐니해도 고급브랜드!’, 호찌민 ‘실속있는게 최고라니까~!’
하노이(河內)는 7세기 무렵 중국이 베트남을 지배하던 시절에 남중국해를 통해 중국과의 해상 교역 중심지로 성장했다. 또 중국 윈난을 연결하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거점도시의 역할을 했다. 중국은 하노이에 안남(安南)도호부를 설치해 지배했다. 베트남이 중국으로부터 독립한후 리(李) 왕조(1009~1225)에 의해 ‘떠오르는 용’이라는 뜻의 탕 롱(昇龍)으로 불리웠다. 마지막 왕조인 응우옌(阮)가 집권한 1802년까지 베트남의 수도이자 정치행정 중심지였다. 이후 1902년 프랑스의 식민지 시절에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수도가 되었으며 1940년~1945년 일본 점령기에도 행정중심지 역할을 수행했다. 1945년 9월 2일 베트남 민주공화국이 독립을 선언한 이후, 북베트남의 수도가 되었다. 1975년 사이공 함락 이후 베트남은 하노이를 수도로 정했다. 2008년 8월 하떠이 성을 통합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호찌민은 베트남 레(黎) 왕조 시절인 17세기 중반에 남부 지역에 지배하던 응우옌(阮) 일가가 개척한 도시다. 원래 이 지역은 원래 캄보디아 왕국의 땅이었다. 응우옌 정권은 캄보디아의 왕위 계승 문제에 개입해 그 대가로 캄보디아 영토였던 메콩강 하류지역을 잠식해 갔다. 이후 남부 정권은 사이공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해 교두보를 마련했고, 1698년에는 남부를 지배하는 행정 기구로 가정(嘉定, 쟈 딘)부를 설치했다. 이에 18세기 중엽에는 당시는 작은 촌락으로 습지가 많았으나, 프랑스인들이 점령한 후 이곳에 배수시설을 설치해 전형적인 식민도시로 만들었다. 1908년 시(市)로 승격된 뒤부터 급속히 발전했으며, 프랑스풍의 관청을 비롯하여 많은 건물이 건축되었다. 또 남부 메콩강 삼각주의 쌀, 북서부의 고무 수출을 위해 항구를 축조했다.베트남 남부 전역을 영토로 편입했다. 1954년 베트남이 남북으로 갈라지면서 남베트남(월남)의 수도가 되었으며 인구도 급격히 증가했다. 1975년 북베트남에 의한 점령 이후 주변 위성도시를 병합하여 베트남 민족지도자 호찌민(胡志明)의 이름을 따 호찌민 특별시로 개칭했다.
『사람들의 성향』
하노이 사람들과 호찌민 사람들은 많이 다르다고 한다. 서로 같은 나라가 된지 오래 되지도 않았을 뿐 더러 살아온 환경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하노이 사람들은 중국의 유교에 영향을 많이 받은 데다가 오랫동안 수도의 시민으로서 지내 오다 보니 대체적으로 예의와 격식을 차리는 대신, 약간 심심하고 경직된 표정을 하고 있다고 한다. 저축을 부의 개념으로 보고 있어 진짜 부자는 ‘하노이에 몰려있다.’ 라는 이야기도 있다.
반면 호찌민 사람들은 참파 민족의 힌두교 문화와 풍요로운 자연환경 덕분인지 좀더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고, 격식을 차리기 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오랫동안 세계 무역의 거점이었던 지리적 특성 상 서양 문물이 많이 흡수되어 먹는 것부터 사고 방식까지 좀더 개방적이고 다양하다. 부의 개념 역시 얼마나 돈을 잘 쓰는가에 맞추어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