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연휴가 끝났다.
아쉽게도 연휴를 끝내고 돌아가야 할 곳은 자유와 기쁨의 유토피아가 아니라 숨기고 싶은 너저분한 일상이다. 여기 월급쟁이에게 들려주는 싱거운 얘기가 하나 있다.
런던의 어느 달동네에서 두 사람의 재단사가 서로 마주 보고 일하고 있었다. 그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늘 그렇게 서로 마주 보며 일해 왔다. 어느 날 한 재단사가 다른 재단사에게 물었다.
금년에 휴가 갈 건가?
아니.
잠시 침묵이 흘렀다. 두 번째 재단사가 불쑥 말을 꺼냈다.
1964년에 휴가를 갔었지.
그래? 어디로 갔었나?
첫 번째 재단사는 무척 놀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친구가 자리를 비운 적이 없었다. 호기심 가득 찬 그는 그때 휴가 이야기를 해 달라고 졸랐다.
난 그때 벵갈로 호랑이 사냥을 갔었지. 빛나는 금빛 총을 두 개나 들고 말이야.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정말 엄청나게 큰 호랑이를 만났지. 내가 총을 쏘았어. 그러나 그 놈은 내 총알을 피하고 나를 덮쳤지. 내 머리가 그 놈 이빨에 바스러지는 소리가 들리더군. 그리고 나를 먹기 시작했어. 마침내 그 놈이 내 마지막 살 한 점까지 다 먹어 버렸어.
깜짝 놀라서 첫 번째 재단사가 소리쳤다.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야. 호랑이는 자네를 삼키지 않았어. 자넨 지금 이렇게 살아 있잖아?
그러자 두 번째 재단사가 다시 실과 바늘을 잡으며 슬프게 말했다.
자넨 이걸 살아 있다고 생각하나?
1년에 한번 있는 긴 연휴 끝이라 유난히 후유증은 크다. 일상을 떠났더니 살 것 같았던 세포들이 핏기 없는 아메바가 되었다. 이놈에 회의는 또 어김 없다. 직장인에게 회의란 닦달하는 상사의 물음에 맑게 닦인 목소리로 지체 없이 대답해야 하는 약식의 업무 책문이다. 이 자리에서 날아오는 질문에 어물거리나 묻는 자의 심중을 꿰뚫지 못한 대답을 할 경우 상사의 눈썹은 날카롭게 치켜 올려지고 게임은 끝나게 된다. 직장인은 여기서 자신의 능력 전부가 평가된다. 무능과 유능은 먼데 있지 않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충성심이 뚝뚝 떨어지는 자는 유능하고 그런 분위기가 정나미 떨어져 침묵하는 자는 무능하다. 살기 위해 참아 넘기는 일상에서 왜 죽음의 냄새가 나는지 모른다.
구멍 난 양말 같이 월급쟁이의 남루한 일상이 밉다.
숨기고 싶은 그 일상에서 세상에 쫄지 않는 나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멋지다. 내 생긴 대로 사는 것, 내가 하고자 하는 바를 찾고 그것이 현실에 녹아 들게 하기 위해선 거창한 이론이 필요한 게 아니다. 여기 생긴 대로 살기 위해 자신의 꿈을 감지하고 어떤 걸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 지를 알아낼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을 소개한다.
첫째, 생각만 해도 내가 즐거워지는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당신의 미래 삶에 한 조각이 될 가능성이 짙다. 그 한 조각을 낚아라. 무언가 이루어진 모습을 상상하고 이로 인해 가슴이 뛴다면 꿈의 자장(磁場) 안에 걸려든 것이다. 월급쟁이에게 앞날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자신이 즐거워하는 지점을 모르기 때문이다. 조용하게 고독할 시간과 장소를 내어 노트와 연필을 들고 나에게 침잠해보자. 중요한 것은 즐거운 상상으로 가슴이 뛰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그 상상을 잡고 머물러야 한다. 머물러서, 영상을 구체적으로 떠올리고 떠올린 영상을 글로 묘사하고 활자화 하면 당신의 꿈과 만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묘사된 꿈은 현실보다 강하다. 묘사된 장면에 나는 이미 가 있고 그 장면은 현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숨 막히는 장면을 위해 3년, 1년 그리고 지금 해야 할 일이 일사분란하게 정의해 보자. 말하자면 회계적 현가계산 방식과 같다. 향후 10년 삶의 현재적 환원이다.
둘째,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허무맹랑한 기대치를 상정하라. 현실을 뛰어넘을 수 있는 유일한 무기가 꿈이다. 꿈이 허황되면 허황될수록 무기가 가진 파괴력은 세다. 꿈은 보이지 않는 미래에 있지만 지금을 내 눈앞을 지배하는 환각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이야기 하나를 들었다. 버락 오바마(Barack Obama)가 시카고 대학의 강사였던 시절, 누군가 파티장에서 만난 오바마에게 느닷없이 질문 하나를 던졌다. ‘너는 꿈이 있니?’ 방금 전까지 웃으며 흥청거리던 그가 질문을 듣고는 정색하며 자세를 고치며 대답하더란다. 웃자고 던진 그도 순간 정색하는 오바마에게 움찔했다. ‘나는 꿈을 가지고 있고 그것은 미합중국 최초의 흑인대통령이다.’라고 웃음기 가신 얼굴로 오바마는 한 글자 한 글자를 끊어서 말했다. 좌중은 웃었다 했다. 그로부터 7년 뒤, 오바마는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된다.
셋째,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현실로 데려오기 위해서는 지금 자신의 초라함을 관리해야 한다. 누구나 초라한 경우를 맛본다. 동료와 언성을 높이고 싸우고 난 뒤, 상대방의 높은 스펙에 기가 눌린 뒤, 상사로부터 말도 안 되는 유아적인 질책을 받고 난 뒤, 조직에 몸담은 자신이 한 없이 초라해지고 측은하게 바라보는 남들의 시선을 외면하고 싶어 질 때가 있다. 당신은 잘못이 없다. 이럴 땐 지구 밖으로 잠시 다녀오라. 내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거리를 두는 연습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일상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려는 나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너를 초라하게 만들어 주겠어.” 라는 세찬 물살로 침식해 들어오기 때문이다. 시선을 천천히 그리고 무한히 확장하여 우주로 데려가 보자. 그리고 지구를 Bird View로 본다. 우리 옆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먼지 덩어리에 불과한 지구, 둥둥 떠다니는 육지에서 일어나는 70억 ‘화학적 찌꺼기’들의 사사로운 일중에 하나 일뿐이다. 이 시선으로 보면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우연이 된다. ‘우주의 관점에서 지구는 단지 하나의 특수한 사례’고 지구 관점에서 나는 동일한 인간류의 상이한 형태일 뿐이다. 거대한 산악지괴가 융기하며 스스로 두터운 층을 파괴하고 두께 1,000미터의 외피를 들어 올리거나 찢는 일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고 다시 여기, 지금의 나로 돌아온다. 조금 여유로워 진 것 같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이 방법은 나의 유한함을 인식하여 무한으로 데려 가는 연습이다. 꿈은 이루어질 수 없다고 착각하는 내가 얼마나 무한한 존재인지를 알아가는 방법이다. 아무리 잘난 인간도 결국 인간일 수밖에 없는 평균성에 기대어 남들과 그리고 주변과의 불필요한 비교를 단절하는 연습이다. 그리하여 어떤 상상을 하더라도 이룰 수 있다는 자기가능성에 대한 최면이다.
입사 후 3년, 나는 첫 진급심사에서 누락됐다. 수치스러웠다. 업무는 지지부진했고 반복되는 일과는 지루했다. 최선을 다하지도 그렇다고 형편없지도 않았다. 삶은 나를 떨리게 하지 않았다. 조직의 사다리 맨 끝을 로망처럼 우러러 봤지만 첫 관문부터 보기 좋게 미끄러졌다. 때마침 사고를 당해 내 정강이뼈는 주식 차트처럼 부러졌었고 발목은 조각 나 목발을 하고 다녔다. 구석에 내팽개쳐진 내 목발처럼 어두운 시간들이 거듭 밀려왔다. 세상과 맞짱 뜨리라던 호기 넘쳤던 신입사원은 온데간데없고 거북목을 한 월급쟁이가 되어 갔고 매력 없는 사람이 되어 갔다. 돌이켜 보면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되는 그 때, 위에 언급한 네 가지 방법을 통해 내 이야기는 시작됐다.
부러진 발목 뼈가 채 붙기도 전에 세계최고봉에 올랐다. 일상에서 죽지 않기 위해 히말라야 사지(死地)로 가는 역설을 택했다.
절망은 사람을 죽이기도 또 살리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절망을 다루는 연습이 필요할지 모른다. 희망은 절망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연휴가 끝났다. 그대 절망하지 않기를.
장재용 / 작가, 산악인, 경영혁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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