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영화들 속에서 배우들의 연기나 감독의 연출만큼이나 잊혀지지 않는 것이 바로 영화음악이다. 우리는 음악감독의 이름을 뚜렷하게 기억하지는 못하더라도 대신 그들이 일구어낸 아름다운 멜로디와 음악을 기억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영화음악가’라고 부른다. 영화음악가라고 하면 일반적인 가요나 팝, 밴드 음악의 작곡자보다 더 난이도가 높으며 어려운 과정을 공부해야 가능하다고 여겨지는데, 이런 상식을 파괴해버리고 기본적인 정규 코스를 밟지 않으며 오로지 독학을 통해 음악을 공부한 이가 있다. 불가능은 없다는 신념 아래 획기적인 시도와 예민한 감각에 의존하는 작곡 스타일의 소유자 ‘대니 엘프만(Danny Elfman)’이다.
가위손을 지니고 한 소년의 이야기를 독특하고 감성적으로 표현한 영화 ‘가위손’, 컬트 무비라고 할 만큼 기괴하고 발칙한 전개의 ‘화성 침공’, 따뜻한 가족애를 판타지와 허구를 동원하여 그리는 ‘빅 피쉬’까지 떠올린다면 우리는 독특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영화음악에 혼을 불어 넣는 ‘대니 엘프만’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음악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퀄리티를 보여주지만, 작품과 만났을 때 몇 배의 시너지를 일으키는 그의 일련의 스타일은 앞으로도 무수히 많은 작품에서 효과를 발휘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그의 영화음악 중 일부를 소개해 본다.
MOVIE 1 비틀쥬스(Beetle Juice)
• Scene – Main Title(1988)
이 영화의 감독인 ‘팀 버튼(Tim Burton)’ 특유의 독특한 분위기와 ‘대니 엘프만’의 음악에 끌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드러나는 작품이라 생각된다. ‘대니 엘프만’은 이 영화에 어울리는 음악을 위해 파르프 오르간, 하프시코드, 팬 파이프 등 다양한 장르의 악기를 사용한 오케스트라에 사람의 목소리까지 더해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었으며, 음악 중간중간에 나오는 빠른 템포의 음형들은 마치 집시들의 포크음악과도 같은 느낌을 준다. 이 영화를 통해 ‘팀 버튼’은 명장의 감독 대열에 올라서고, ‘대니 엘프만’은 영화음악 작곡가로서의 커리어를 쌓아가기 시작했다.
MOVIE 2 배트맨(Batman)
• Scene–The Batman Theme(1989)
1989년도에 선보인 이 테마곡은 ‘배트맨’ 시리즈를 통틀어 메인 테마로 자리 잡았고, 이 테마의 멜로디는 ‘배트맨’ 애니메이션으로도 쓰이게 되었다. 이 음악을 시점으로 ‘대니 엘프만’은 블록버스터 영화음악 작곡가로서의 자질을 보여준 시발점이 되었고, 수많은 블록버스터와 슈퍼 히어로 영화의 음악을 담당하게 되었다. 특히 다섯 음의 멜로디만 가지고 ‘배트맨’이 가지고 있는 어두운 도시와 그 도시에서 정체를 감추고 있는 주인공의 정의로운 모습을 동시에 표현한 음악이다. 이렇게 복잡한 의미와 구성을 단 다섯 개의 음만으로 표현한 ‘대니 엘프만’은 천재적이라 표현할 수밖에 없다.
MOVIE 3 크리스마스의 악몽(The Nightmare Before Christmas Intro)
• Scene –This is Halloween(1993)
신나고 밝은 분위기의 크리스마스에 어둡고 기묘한 분위기의 할로윈을 결합시켜 만든 이 영화는 ‘팀 버튼’의 작품 중에서도 명작으로 손꼽힌다. ‘대니 엘프만’의 음악적으로는 스탑모션 애니메이션에 뮤지컬을 접목시켰으며, 풍부한 상상력과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절묘하게 하나로 묶었다고 생각된다. 또한 밴드에서 보컬을 했던 실력으로 직접 주인공 ‘잭’의 목소리를 연기하면서 노래까지 부르며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인트로에 나오는 이 노래는 할로윈 마을을 전체적으로 설명해주었고, 기괴한 캐릭터들의 등장에 맞춰 마이너 풍의 익살맞은 느낌을 잘 표현해주었다.
MOVIE 4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 In Wonderland)
• Scene – Alice’s Theme(2010)
‘대니 엘프만’은 주인공 ‘앨리스’의 테마 음악을 작곡하기 위해, 앨리스가 겪는 심경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었고, 순진하고 여린 마음을 가진 주인공이 강인한 여성이 되어가는 과정을 음악적으로 설명해주었다. 어두운 느낌을 중심으로 하모니 마이너의 조성을 동시에 사용하였고, 영상의 화려한 색감에 어울리는 멜로디를 여성의 보컬과 합창으로 나타내 주었다. 주인공이 강인해질수록 음악도 함께 고조되며 오케스트라가 펼쳐지는데, 보컬과 오케스트라가 각각의 프레이즈에 맞춰 번갈아 가며 주고받는 구간은 이 노래의 백미라 생각된다. 특히 오케스트라는 셋잇단음표를 사용하고 보컬은 8분 음표를 사용해 대조를 이루었는데, 이는 이상한 나라와 대조되는 앨리스의 모습을 표현했다고 볼 수 있겠다.
MOVIE 4 스파이더맨(Spider Man)
Scene – The Goblin Returns(2002)
‘대니 엘프만’이 영화음악을 작업할 때 주로 사용하는 기법들이 있는데, 그중 자주 사용하는 스타일은 임팩트 있는 멜로디의 메인 테마를 중심으로, 그 테마를 영화 곳곳에 삽입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반대로 두 가지 테마를 하나로 합쳐 메인 테마를 만드는 방식을 선택하였다. 하나의 테마는 가족을 잃고 고통스러워하는 마음을 나타내고 있고, 다른 하나는 무언가를 깨닫고 사람들을 돕기 위해 정의를 구현하는 히어로적인 테마를 가지고 있다. 특히 음악적으로 두 가지의 테마를 연관성을 지어 표현하기란 쉽지 않은데, 역시 ‘대니 엘프만’이라는 이름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MOVIE 5심슨(Simpsons)
• Scene – The Simpsons Theme Song(1989)
만화 ‘심슨’을 아는 연령대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곡으로 모드 스케일을 중심으로 만든 노래이다. ‘대니 엘프만’은 오케스트라를 활용한 관현악 곡과 마림바 류의 타악기를 사용함과 동시에 모드 스케일을 이용하는데, 바로 이 부분이 영화음악계의 거장인 ‘존 윌리엄스’와 ‘엔니오 모리꼬네’ 의 다른 점이라 볼 수 있겠다.
‘대니 엘프만’이 이 노래에서 사용한 모드 스케일은 재즈 즉흥연주를 위한 입문자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스케일로써 이 만화의 미묘하고 엉뚱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느낌을 잘 살려주었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