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찌민 주석이 구국노선을 찾기 위해 프랑스로 떠난 그 자리, 벤냐롱
벤냐롱(Bến Nhà Rồng, 용집 항구)이라 불리는 이곳은 호찌민시의 놓칠 수 없는 관광지이자 베트남인에게 아주 신성한 의미가 있는곳이다. 이곳에서 당시 Nguyễn Tất Thành이란 애국 소년인 호찌민 주석이 구국노선을 찾기 위해 Amiral Latouche Tréville라는 프랑스 선으로 나라를 떠났다. 벤냐롱은 4군 칸호이(Khánh Hội) 다리 근처 사이공 강변에 위치한다.1862년에 건설된 바쁜 항구였으며 그 2년후(1864년)에 냐롱(용집이란 뜻) 건물이 지어졌다. 1911년6월5일에 벤냐롱에서 대망을 가진 Nguyễn Tất Thành 소년이 Amiral Latouche Tréville 선의 Văn Ba라는 주방 보조 신분으로 나라를 구하러 고향을 떠난 사건을 바탕으로 1975년에 냐롱 건물은 호찌민 주석에 대한 현물을 보관하고 전시하는 역사유적지가 되었다.이곳 박물관에는 희귀한 자료와 현물이 많이 보관되고 있으며 그 중에 호찌민 주석에 관한 11372 개의 현물과 자료, 3300 여 권의 책이 포함되어 있다. 전시된 유물들은 관광객들에게 베트남 민족의 천재적인 지도자였던 호찌민의 인생, 혁명 업적을 잘 설명하고 있다.
프랑스 식민 시대에 냐롱 건물은 프랑스 Messageries Impériales 운송회사의 본사로 이용됐다. 서양 건축양식으로 건설된 이건물의 지붕에는 동양의 ‘영룡쟁주’ 건축 양식으로 두 마리의 용 조각상이 붙여졌다. 이런 이유로 건물을 냐롱(용집)이라고 불렀고 건물이 위치하고 있는 벤냐롱(용집 항구)라는 이름이 생겨난 것이다. 1870년에 Messageries Impériales 회사는 지붕에 있는 달 조각상을 회사의 표상인 말 머리와 닻으로 바꿨다.벤냐롱은 옛날 사이공의 정신과 심령적 문화를 나타나는 대표적인 건축물들 중의 하나이다. 여러 해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원래모습 그대로를 가진 벤냐롱은 여전히 역사의 산 증인처럼 서있다.
야경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건축물
1979년에 호찌민시는 냐롱 건물을 호찌민 박물관으로 개조했다. 1990년과 1995년에 걸쳐 두번 보수된 후 현재 박물관은 9개의 전시실이 있으며 그 중에 6개의 방은 호찌민 주석의 이력, 혁명활동 업적에 관한 자료, 영상과 현물을 전시하고 나머지 3개의 방은 시기에 따른 정치 선전을 목적으로 시사 특별 주제를 전시한다. 더불어 박물관에 자료와 전시물 보관소 2개가 있다. 1998년에 사이공-호찌민시 설립 300주년을 맞이하여 호찌민시 인민위원회에서 박물관을 호찌민시의 표상으로 지정했으며 프랑스 라이언협회와 협력하여 박문관에 예술 조명 장치를 설치하여 야경이 아름다운 건축물로 재해석하고 있다
호찌민 주석의 혁명 업적에 대한 전시물과 영상을 통해 그의 높은 인격과 도덕심에 감동하게 되고 높은 애국심에 찬사를 보내게 된다. 호찌민 주석의 청렴함과 민중을 위해 희생한 삶, 이상을 위해 평생을 지켜 온 강직함이 그를 베트남인의 국부로 칭하기에 손색이 없다. 호찌민 주석의 삶의 발자취와 정신을 중요한 문화재로 간직하고 있는 이곳을 놓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