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어쩌다 골프를 시작했을까? 그리고 왜 골프에 빠졌을까?
이왕 새것을 언급하는 새해 첫 글이니 이번에는 골프를 시작하게 된 동기나 그 당시의 느낌을 다시 한번 상기하고자 한다. 그것을 통해 골프에서 무엇을 얻으려 했는지 이미 골프에 식상한 골퍼에게 첫 마음을 뇌 새기는 시간을 갖게 하고 싶다.
골프를 시작한지 거의 30년이 된다. 당시 일반적인 골퍼의 나이보다는 좀 젊은 나이에 시작한 셈인데 그 이유를 따져보니 다음과 같다.
학창시절 다른 데 정신을 파느라고 공부하고는 거리가 먼 시절을 보냈지만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시작한 학업을 마치고 이미 사회에 진출한 동기생들을 따라 잡기 위하여 남들보다 일찍 자기사업을 시작한 것이 골프와 관계를 맺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당시에는 골프를 즐긴다는 것은 상당한 사회적 위상을 말해주는 고급스런 취미였다. 재정적인 부담이 많이 가는 운동인 탓이다. 당시의 골프 클럽이 지금의 가격보다 훨씬 고가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운동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상징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아마도 개인적으로 골프를 시작하게 된 동기를 따져보자면 바로 이 부분일 것이다. 골프라는 운동이 다른 운동보다 돈이 많이 들고 또 사회적 지위를 상징하는 이유, 바로 그 부분으로 늦은 학업에, 뒤쳐진 사회진출을 스스로 보상받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싶다.
그래도 젊은 나이에 중년의 신사들이 즐기는 골프에 입문하기 위하여는 뭔가 남들에게 보여줄 명분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 기껏 생각해 낸 것이 점점 살이 붙는 허리를 줄이기 위함이라는 거지발싸개 같은 너절한 핑계를 갖다 대고 골프를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골프가 이미 30년이 되어 가는데도 다른 일과는 달리 이제는 그만 두자 하고 고개를 완전히 돌리는 일은 없다. 오히려 이런 저런 사정으로 골프와 자주 만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다름이다.
지난 몇 년 전부터 거리가 줄면서 스코어도 엉망이 되어 버리는 바람에 잠시 쉬다가 다시 해보자 하며 골프채를 한구석에 밀어 넣은 지가 벌써 수 년이 되었다. 지난 해에는 분기별 라운드마저 다 채우지 못하고 필드를 고작 3번 나가봤으니 사실상 골프와는 결별을 한 셈인데, 마음 속에는 아직도 ‘내 사랑 골프’ 를 담고 있으니 참 알다 가도 모를 일이다.
골프에는 무슨 매력이 있길래 이렇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골프를 치면 그리도 행복했던가?
사실 그렇지 않다. 오히려 골프는 수시로 롤러코스터를 탄 것과 같은 감정의 기복을 선사한다. 공이 잘 맞을 때는 기쁨과 환희가 몰려들지만 뭔가 어긋나기 시작하면 절망과 분노가 파도처럼 밀려드는 것이 골프다. 단 몇 초 만에 지적이고 사려 깊은 신사를 완전히 미치광이로 바꿔버리는 유일한 운동이 골프 아니던가.
골프, 참으로 골 아픈 운동임이 틀림없다. 돈도 많이 들고 시간 소모도 상당하다. 필드에서만 그런 것도 아니고 평소에 꾸준히 연습을 해야 한다고 매일 채근하는 것이 골프다. 또 웃기는 것은 열심히 연습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주 내내 연습장에서 칼을 갈았다고 필드에서 그 결과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필드에서 연습장에서 갈고 닦은 빛나는 샷으로 상대를 주눅들게 하다 가도 어느 한순간 아차! 하며 짧은 퍼팅이 홀을 빙글 돌며 나오는 순간 그동안 연습은 모두 무위로 돌아가고 만다. 이럴 때 골퍼들은 그런 실수에 대한 핑계로 골프는 육체보다 정신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되 뇌이며 위로를 찾는다. 그런데 진짜 그럴까?
골프를 다른 별칭으로 Lila 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찾아봤다. 릴라가 뭔가? 사전을 찾아보니 신의 창조를 놀이나 게임으로 치부하여 붙인 이름이 ‘릴라(LILA)’ 라고 한다. 어느 유명 커피 숍 이름 같은데, 이를 풀이해보면 골프는 신이 만든 게임이라는 뜻인가 보다. 하긴 가끔 그런 말을 듣긴 했다.
아무튼, 신의 창조게임 골프, 릴라. 멋진 이름이다. 아마도 그래서 골프는 인간의 손 안에서만 조정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신과의 접선이 이루어져야만 비로소 완성된 골프가 나온다는 말이 가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골프를 인생과 비유하는 일이 어색해 보이지 않는 이유도 어쩌면 골프나 인생 역시 신이 창조한 창조물이기 때문이라고 정의를 내릴 만 하다.
여기까지 쓰다 보니 이제서야 아, 그래서 내가 골프를 완전히 버리지 못하는 모양이구나 하는 소리가 절로 새어 나온다. 골프를 시작 안 했으면 몰라도 일단 시작했다면 인생과 마찬가지로 그만 두려면 신의 허락이 필요하다는 얘기인가?
(점점 글이 산으로 간다.)
좋다 그렇게 인정을 하자. 일단 한번 골프에 입문을 하면 신의 허락이 있어야 은퇴가 가능한 운동. 비록 몸이 녹슬어가며 비 거리가 줄며 스코어는 엉망이지만 아직도 골프에 미련을 버리는 못하는 이유는 바로 신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의를 하니 속이 편해진다.
골프가 내 맘대로 안되는 이유도 그렇고 골프를 치며 수시로 나타나는 감정의 기복도 나의 탓이 아니라 신의 장난이라는 것이다. 자신이 행한 실수나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타인이 아니라 신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신도 애교로 봐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인간은 신과 가까워진다.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인간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신에게 더욱 가깝게 가는 것이 아닌가? 올해 나이를 한 살 더 먹었으니 신과 더 가까워진 셈이다. 그렇다면 이제 신이 내리신 나의 인생을 열심히 가꾸듯이 신이 내어준 게임 골프 역시 더욱 애착을 갖고 관리해야 하지 않는가? 그러고 보면 골프는 역시 나이가 들어서 하는게 더 어울리는 운동이 맞는가 보다.
이렇게 올해 골프에 다시 뛰어들기 위한 적당한 핑계는 마련되었다.명분이 마련되었으니 이제 하기만 하면 되는데…
그래도 아직도 연습장은 멀어 보이니 참 큰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