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은 유난히 휴일이 많은 달이다.
개천절과 한글날, 국군의 날, 그리고 예전에는 유엔의 날까지 포함되어 10월은 만만하게 노는 달로 인식되었는데 올해는 아예 1일부터 9일까지 그것도 중간에 낀 평일을 임시공휴일로 정하면서까지 공백 없이 열흘을 쉬도록 배려했다. 한 여름 땀 흘려 일한 국민의 노고를 배려한 정부에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우리나라 법정 공휴일은 15일이다. 일반적으로 타국의 경우 10~12일인데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다. 더구나 베트남의 경우는 더욱 적은 편이다. 베트남 진출 초기 섬유관련 공장을 운영하는데, 이국의 낯선 환경에 이런 저런 어려움도 많았지만 ‘그래도 한국보다 좋은 것도 있네’ 싶은 것은 공휴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베트남 공휴일은 당시에는 뗏 연휴를 빼고는 4월 30일 남부 해방일 즉 승전기념일과 5월 1일 노동절 그리고 9월 2일 독립기념일이 전부였다. 그러니 한국에서 붉은 색 날짜가 수두룩한 달력을 보다 온 인간에게는 좀 신기하기도 했고 또 한편 사업자의 입장에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는 일이라 그저 허옇기만 한 베트남의 달력을 볼 때마다 표정관리를 하던 시절이 생각난다.
그런데 지난 2년 전부터인가, 베트남서 새로운 공휴일이 생겨났는데, 베트남의 국조인 흥왕(Hung Vuong)의 탄생을 기리는 베트남 개국 기념일이다. 베트남 역사의 시조인 흥붕의 탄생을 기념하며 국민들에게 베트남의 찬란한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 주고자 시작된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나라로 치면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세운 것을 기념하는 개천절과 같은 의미로 보면 된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의 개천절이 원래 음력 10월 3일인 것을 양력으로 바꿔서 시행하지만 베트남은 흥붕 기념일을 음력으로 그대로 사용하는데 그 날짜가 우리가 달과 날이 바뀐 3월 10일이다. 이런 베트남 정책입안을 보면서 뭐랄까, 가능하면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역사의 전통을 그대로 보존하려는 노력이 있는 듯하여 그 정신에 절로 존경이 간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5대 국경일 중에 가장 중요한 날인 개천절은 이제 마치 치매든 노인네 취급하듯 하는 것 같다. 올해 세종회관에서 열린 개천절 기념일은 한가위 연휴와 맞물린 탓도 있지만 어느 미디어에서도 그 소식을 듣기가 만만치 않았다. 사실 행사를 했는지 안 했는지 알고 있는 국민도 별로 없었다. 베트남에서의 개천절 기념은 더욱 초라하다. 독일과 한국의 개국 기념일이 겹치는 탓에 각국 외교관을 초대하는 문제도 있고 하여 이미 여러해 전부터 해를 바꿔가며 번갈아 행사를 개최하고 있는데 올해는 우리 쪽이 쉬는 해인지라 공관 주재 공식행사는 없고 대신 베트남의 호치민시 우호친선협회라는 단체에서 한 베 수교 25주년 기념식과 더불어 한국의 개천절을 함께 축하해주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그 고마운 마음 한 곁에는, 10만을 훌쩍 넘는 교민사회에서 우리 개국기념일 행사를 주관하는 민간단체가 하나 없다는 현실에 대한 아쉬움이 지워지지 않는다. 그 탓에 아무리 이국이지만 자기 자손이 올리는 상을 해를 건너 받아야 하는 우리 조상님들, 그저 죄송할 다름이다. 언젠가 우리 단군왕검께서도 베트남의 국조이신 흥붕께 올리는 베트남인의 제사상 못지 않은 거나한 상을 매년 빠지지 않고 받으실 날이 오리라 기대한다.
한가위 귀향으로 얘기를 돌리자.
가을 문턱을 막 넘어가는 한국에 들어와 보니 밖에서 보던 한국과 안에서 느끼는 한국의 입장은 전혀 딴판이다. 외국에서 보는 한국은 조만간 전쟁이 불가피한 상황에 전혀 미래가 안 보이는 나라로 인식되는데 국내에서는 불꽃놀이 축제에 평창 올림픽의 성공을 기약하며 별다른 위기의식 없이 일상을 지내는 듯하다. 평창 올림픽은 이미 여러 국가에서 안보가 담보되지 않으면 참가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지만 한국은 전혀 개의치 않은 듯 보인다. 미국과 일본은 수시로 전화나 회담을 하며 한반도의 정세에 대한 논의를 하고 중국은 그 과정에 빠질세라 신경을 곧추 세우는데 정작 당사자인 한국은 그 논의에서 빠진 채 제재는커녕 대북 지원을 논하고 있으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기도 하다. 정책이 잘 되고 아니고를 떠난 문제다. 국제 공조와 전혀 동떨어진 이런 행보가 우리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가 하는 의문이 생길 뿐이다.
또 숨은 뉴스가 터진다. 박통이 탄핵되자 마자 개성공단이 북에 의해 임의로 재가동되었다는데 우리는 몰랐다. 정부도 몰랐는지조차 국민은 모른다. 이 보도가 나가자 북에서 공화국 땅에 있는 개성공단이니 맘대로 가동할 것이라는 발표가 나온다. 정부 믿고 그곳에 투자하신 사업가들은 어쩌나? 또 다른 의문은 개성공단 전기는 한전이 공급하는 걸로 아는데 누가 그들에게 전기를 공급해 주고 있을까? 답답하다. 아는 것이 없어서 그렇다. 누구 아시는 분 계시면 가르침을 주시라.
한가위 명절, 가족이 모인 자리에는 자연스럽게 정치 이야기가 나오기 마련이다.
너도 나도 한 마디씩 거들지만 요즘은 나이가 든 사람일수록 입을 닫는다. 혹시 젊은 가족들과 의견차이라도 드러나면 오랜 만에 만난 자리가 어색해 질까 두려운 탓이다. 나이가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이나 열라는 조언이 무게를 더해간다.
정치의 존재 목적은 국민의 시름을 덜어주는 데 있다는데 요즘 이 나라 정치는 국민의 시름을 덜어주기보다는 오히려 가족간의 대화를 차단하고 마음의 문을 닫게 만들고 있는 듯하다.
결국, 그만하자, 잊자, 우리 얘기나 하자 하며 암묵적 타협을 하고 정치 얘기를 대화에서 삭제한다. 우리 손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정치 얘기로 가족 간에 얼굴 붉힐 일이 뭐 있겠는가 싶은 현실적 선택이다.
한 상 가득 차려진 명절상을 앞에 두고 미소 담긴 술잔 들어 모든 가족의 건강을 빌어본다.
忘憂臺(망우대) 라는 술잔의 받침대가 있다.
조선시대 우리 조상들이 쓰던 청화백자 중에 나온 도자기인데, 한 떨기 국화꽃이 그려진 술잔 받침대의 한가운데 ‘망우대’라는 글이 쓰여져 있어 그 받침대에 술잔을 놓고 권하고, 그 잔을 들면 ‘망우대’, 즉 ‘근심을 잊어버리는 받침대’라는 뜻의 글이 드러나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한잔을 들며 시름을 덜어대던 우리 조상의 지혜와 정서가 담긴 술잔 받침대다. (참고 문헌: 유홍준의 안목)
오늘 비록 그런 받침대는 없지만 깨끗한 사기 잔에 수정같이 맑은 청주 한 잔 마시고 온갖 시름을 잊고 어린 조카들 재롱으로 하루를 보내고 싶다.
그런데 그런 낭만을 즐기시던 조상님들도 시름이 끊이지는 않으셨던 모양이다.
이런 시구가 적인 술잔 받침대도 있다.
년래주병침 年來酒病侵 : 올해로 들어서니 술병이 도진다.
금주병하심 禁酒病何深 : 술을 끊었는데 병은 어째 깊어지는가
금칙지무병 禁則知無病 : 끊으면 병이 사라질 줄 알았는데
수다불인금 愁多不忍禁 : 시름만 느니 끊을 수가 없구나.
백성의 술병이 도진 것도 다 시름이 깊어진 탓이다.
우리 어진 백성의 시름은 누가 거두어 주려나
Bat ky luc nao va noi nao da co….nen cang ngay ung ho duoc cua doc gia nh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