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November 25,Monday

격세지감(隔世之感) 그리고 헬조선

많은 사상자와 엄청난 재산피해를 입히는 지진이나 화산, 태풍과 같은 대규모 자연재해가 일어나면 그 지역의 출산율은 어떻게 될까? 얼핏 생각하면 집도 재산도 모두 잃고 지인들도 죽어 사라진 상태에서 아이를 갖는 것은 우선 순위에서 한참 밀릴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복수의 연구 결과를 보면 정반대로 자연재해 뒤에는 임신율과 출산율이 증가한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자연재해 외에도 대형 테러나 전쟁과 같은 인재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과거에는 전쟁 뒤 출산율 증가는 전쟁에서 남자들이 돌아와서 발생하는 현상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전쟁에 나갔던 남자들이 돌아오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이나 2차 세계대전 독일 동부전선처럼 수백만명의 군인들이 몰살당하거나 포로가 되어 돌아오지 못한 사례들을 연구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급격한 출산율 증가가 해당 국가들에 나타난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전후 출생률 증가는 남자들이 전쟁에서 돌아오건 돌아오지 못하건 상관없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연의 세계와 그 역사를 들여다보면서 깨닫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모든 생명의 존재 목적이 종족을 보존하는 것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 역시 예외가 아니다.
최근 한국은 연간 신생아 35만명 시대를 열었다. 과거의 모든 예측을 무려 19년이나 앞당긴 놀라운 결과다. 70년대 초 100만명을 훌쩍 넘던 신생아 숫자가 이제 1/3토막으로 줄어든 것이다. 또 최근 한국의 출산율은 1.03까지 떨어졌다. 이미 인구감소와 초고령화 사회로 신음하는 일본의 출산율이 1.46을 꾸준히 유지했던 것과 비교해 보면 지금 한국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고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생명의 목적이 다음 세대를 보존하는 것이라면 지금 우리는 생명의 가장 기본적인 존재 이유도 이행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지금의 부모들이 과거 세대들보다 아이에 대한 관심이 적거나 애정이 없는가? 답은 당연히 ‘아니다’이다. 오히려 지금의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더 많은 투자와 노력을 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자연재해나 인재 뒤에는 출산율이 증가한다. 그런데 거기에는 한가지 조건이 붙는다. 자연재해나 인재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닌 예외적 상황일 경우에만 출산율은 증가한다. 반대로 이런 재해가 고질적이고 장기적으로 지속될 경우에는 출산율이 떨어진다. 다시 말해 재해 자체가 피할 수 없는 생존 환경의 일부가 되는 경우에는 출산율이 하락한다. 오랜 기간 일본의 지진과 출산율 관계 연구는 이와 같은 현상을 잘 말해준다.
위 두 경우의 비교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은 아무리 심각하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무의식적으로 종족 보존 본능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문제를 한시적이고 예외적인 상황으로 인식해야만 작동한다. 반대로 문제의 끝이 보이질 않고 불가항력적으로 생존 환경이 악화될 경우 출산율은 하락한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지금 처해진 심각한 상황은 출산율 장려로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로 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말에 격세지감이라는 말이 있다. 고려말, 조선초 성리학자였던 야은 길재의 시조에 나오는 말이다. 고려가 멸망하고 찾은 도성 개경의 모습을 보면서 야은은 산천은 그대로인데 불과 얼마 전까지의 영광은 사라져 혹시 현실이 아니고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를 의심했다. 그래서 자신이 알고 익숙해서 계속될 것만 같던 세상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 당혹한 심경을 표현한 말이다. 변화의 속도가 느리고 느리던 그 시대에 비해 변화가 숨가쁘게 일어나는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아마 순간 순간이 격세지감의 순간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얼마나 격세지감을 실감하며 살고 있을까?
기성 세대중에는 요즘 젊은이들이 ‘흙수저’, ‘헬조선’이라고 말하는 것을 배부른 불평이라고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치부하고 넘어가도 되는 것일까? 나는 사교육이 금지된 시대에 중, 고 생활을 지냈다. 그래서 그때는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직장을 얻는 것이 스스로 얼마나 공부하고 노력하는지에 달렸다고 생각했다. 나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력 여하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잠시 한눈을 팔더라도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하면 기회가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어떤가? 어린 나이부터 진학 과정내내 요구되는 고스펙과 실적은 아이 스스로의 힘으로는 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지는 격차는 학년이 거듭될수록 누적되고 벌어진다. 최순실의 딸 최유라가 ‘돈도 실력이다. 돈 없는 네 부모를 원망해라”라고 당당히 주장할 수 있는 시대인 것이다. 돈이 실력이라 스스로의 노력으로는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없는 세상에 사는 아이들이 느끼는 것은 무기력함, 소외감, 그리고 좌절감이다. 그리고 그런 세상에서 아이가 절망하지 않을 만큼 쏟아 부을 재력이 뒷받침되지 않고 과연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그래서 ‘신생아 35만시대’와 ‘헬조선’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헬조선’의 실체는 없다고 확신했더라도 객관적인 자료가 보여주는 출산율 1.03, 신생아 35만, 인구 절벽, 초고령화까지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내가 알고 익숙했던 세상이 사라졌다고 받아들이는 일은 참으로 두렵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현실을 애써 외면하고 과거의 향수에 사로잡혀 있다면 어떻게 될까? 자연의 법칙은 이런 경우 과거 세대가 죽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해 왔다. 하지만 생각하는 동물인 인간에게 장년층 세대가 빨리 죽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면 참으로 비통한 일이 아닌가? 그래서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얼마나 격세지감을 실감하고 사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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