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November 25,Monday

썸과 인간이라는 사회적 동물의 관계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
‘사회적 동물인 듯, 사회적 동물 아닌, 사회적 동물 같은 인간’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 얼마 전 유행했던 ‘썸’이란 노래 가사의 일부이다. 나는 가끔 노래 가사의 표현에 감탄하는 경우가 있는데 위의 경우가 그랬다. ‘썸’이 연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친구도 아닌 부담 없는 연애를 표현하는 말이라 그 관계를 사실 쉽고 간단하게 표현하기가 정말 어려운데 이 노래 가사가 참 적절하게 표현해냈다고 생각했다.

사실 나는 오랫동안 인간이 사회적 동물인가에 대한 답을 어떻게 한 마디로 쉽게 요약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었다. 그리고 이 노래 가사를 빌려 그 답을 표현하자면 ‘사회적 동물인 듯, 사회적 동물 아닌, 사회적 동물 같은 인간’이다.

나는 개미와 벌에 관심이 많다. 얼핏 들으면 어렸을 적 관심에서 출발했을 법한 관심이지만 내 경우는 나이가 들고 관심을 가지게 된 경우이다. 개미와 벌들이 가장 성공적인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성공적인 생명체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대체적으로 인간이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미생물을 포함해 세상의 모든 생명 물질을 모아서 무게를 재면 그 중 20%가 개미이다. 그만큼 개미는 성공적인 생명체이고 그 성공의 비결은 사회적 동물로의 진화이다.

인간의 역사에서 농업과 목축은 가히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피라미드와 만리장성과 같은 고대 구조물을 경이롭게 바라본다. 그리고 생각하기를 이런 농업, 목축, 그리고 거대한 구조물들이 인간의 우수한 지적 능력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인간이 지구상에 나타나기 3,000만년전부터 이미 개미들은 진드기를 목축하고 효모를 농사지었다. 그리고 거대한 구조물을 건설해서 자신들의 환경을 바꾸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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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농업이나 목축, 그리고 고대의 거대한 구조물들은 인간이 똑똑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동물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인간이 아무리 똑똑하다 한들 씨족구성원 몇몇으로 그런 일이 가능했을지를 생각해 보면 답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의 뇌가 현재의 크기와 기능을 갖추고도 왜 아주 오랜 세월 채집과 사냥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알 수 있다.

정치철학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토마스 홉스는 자연 상태의 인간을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라고 표현했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경쟁자인 다른 인간들과 끊임없이 투쟁하는 약육강식의 야만적 존재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야만적인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준 것이 사회라는 것이다. 홉스의 말대로 인간이 사회적 계약에 의해 사회를 만든 것인지 자연진화적으로 사회를 구성하게 된 것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인간사회가 시간이 흐르면서 더 거대하고 복잡한 구조를 가지게 되었고 그 속도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더 이상 씨족단위의 원시상태로 돌아갈 수 없고 거대한 군집을 이루는 사회적 동물로 존재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이런 거대 사회를 구성하는 사회적 동물로 전환한 기간은 극히 짧다. 그래서 인간은 홉스의 ‘만인 대 만인의 투쟁’으로 표현되는 야만적인 원시상태의 특성을 아직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우리가 흔히 이기심이나 본능적 욕구라고 말하는 것들이 이 범주에 포함된다. 반면에 이타심, 공감능력, 도덕적 욕구는 사회적 본능의 범주에 속한다. 인간이 거대한 사회를 구성하는 사회적 동물인 이상 사회적 본능에 따라 움직여야 하지만 인간은 이 두가지가 끊임없이 갈등하고 충돌하는 모순적인 동물이다.
인간이 아직도 원시적 존재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공감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여기 두 가지 아주 간단한 심리학적 예를 들어 본다. 하나는 ‘마법의 수 7’이고 다른 하나는 ‘던바의 법칙’이다.

7은 인간이 동시에 처리 가능한 정보의 최대 수치이다. 이것은 인간의 정보 처리나 기억만이 아니라 선택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예를 들어 2개 혹은 2명 중 한 명을 고르라면 쉽게 고르지만 8개 혹은 8명 중에 선택을 하라고 하면 인지적 어려움을 겪는다. 얼핏 생각하면 선택의 폭이 넓으면 그만큼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확신이 줄어들고 그 선택에 대한 만족도 즉 행복 지수가 크게 떨어진다. 다른 선택의 가능성에 대한 미련이 남기 때문이다. 또한 8개 이상의 선택지 중에 골라야 하면 명확히 잘못된 선택을 하는 비율이 급격히 증가한다. 예를들어 학생들을 멘붕시키는 방법은 간단하다. 객관식 문제를 4지선답형에서 8지선답형으로 바꾸면 오답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선택의 역설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7개 이상의 것을 동시에 분류 인지하지 못하는 것일까? 홉스의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의 관점에서 보면 나와 내 가족 이외의 모든 인간은 적이니 구지 분리 식별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는 내편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으로 사람들을 나누기를 좋아한다. 인간이 아직 진화가 덜 됐다는 좋은 증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던바의 법칙은 인간이 사회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의 최대 수치가 150명이라는 것이다. 즉 아무리 마당발이라고 해도 결국 그 사람이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의 숫자는 150명을 넘지 못한다는 법칙이다. 재미있는 것은 현재 지구에 존재하는 원시족들의 마을 평균인구가 바로 150명이다. 그리고 전쟁에서 가장 효율적인 전투 집단의 수 역시 150명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기록을 보면 뿔뿔이 흩어져 퇴각하다가 중대 단위의 병력이 모이면 다시 전투를 재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인간은 씨족 단위의 생활과 전쟁을 하던 원시 상태에 아직도 머물러 있는 것이다.

2016년 리커버 에디션 리멤버북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

 

거대하고 복잡한 사회를 구성하는 사회적 동물을 선택했음에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의 특성과 본능이 온전히 작동하는 존재로 진화하지 못했다. 인간사회의 많은 문제들은 대부분 이 모순에서 출발한다고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성공적인 사회적 동물들은 과연 어떤 특성을 가지는지가 궁금하게 되었고 그런 호기심이 벌과 개미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내게 벌과 개미는 훌륭한 선생님이 되었다. 지금까지 내가 생각해 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일깨워주었던 것이다. 다음 번에는 벌과 개미로부터 알게 된 사회적 동물의 특성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아보자.


한동준
윌리암스 대학교 경제학, 수학전공 / 전 아메리칸 하이어 에듀코리아 대표/
청담어학원 ‘NAVI’ 프로그램 개발 / BCM k-12.com 헤드컨설턴트/
현 유테카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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