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가까운 지인 분이 내게 중요한 것을 일깨워 주셨다. 사람은 가끔 자신에게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설명 없이 생략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이해를 위해 꼭 필요한 설명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참 중요한 이야기이자 내가 평생 가장 어려움을 겪는 부분이기도 하다. 어렸을 적 나는 눈치가 없다는 말을 종종 듣곤 했다. 하지만 왜 눈치 없다고 하는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을 싫어하던 내 성향으로 봤을 때 사회성에 심각한 장애가 있는 것이 아닌가를 의심했었다. 그래서 내가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 다른 사람에게는 다 이해가 되는데 나만 혼자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가를 고민했었다. 그리고 그런 고민으로 인해 나는 조금 독특한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학교를 다니면서 나는 가끔 국민교육헌장을 낭독해야 할 때가 있었다. 국민교육헌장은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띄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한다. 그런데 나는 그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알 수 없었다. 민족 중흥이라는 말은 다시 일으켜 세운다는 의미가 있으니 과거에 어떤 목표점으로 삼을 영광이 있어야한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인지가 불명확했다. 또 우리가 추락했다면 얼마나 추락했는지 그리고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그 어느 하나 내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없었다.
헌장의 나머지 부분도 내가 이해하기에는 정의가 불명확한 단어들의 집합이었다. 그리고 불현듯 든 생각은 다른 사람들은 다 이해가 되는데 나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이었다. 전교생을 모아 놓고 낭독해야 할 정도면 분명 중요한 의미가 있을 텐데 나에게는 그것이 무엇인지가 전혀 와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존심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지 못했던 나는 서점에서 국민교육헌장 해설집을 찾아 보았지만 헛수고였다. 그래서 그 의미를 알아보고자 혼자 역사책을 뒤지며 씨름한 적이 있다.
어렸을 적 나는 사람들, 특히 어른들이 하는 말이 참 모호하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들의 말 뿐만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 배웠던 도덕 교과서에 실린 신라 화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얘기의 내용은 한무리의 화랑들이 나라의 곳간에서 쌀과 재물을 훔치기로 했는데 한 화랑만이 참여하기를 거부했다. 그래서 그 화랑은 불안을 느낀 다른 화랑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때 나는 그 이야기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가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죽임을 당하더라도 불의를 저지르면 안 된다는 말인지 죽지 않으려면 적당히 불의와 타협해야 된다는 얘기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죽더라도 불의에 맞서라는 얘기이기엔 그 화랑의 죽음이 너무 어이없는 개죽음이었기 때문이다. 분명 전국 모든 초등학생들이 배우는 국정 교과서에 올라온 내용이니 그 도덕적 교훈이 명확할 텐데 나 혼자만 헤매는 것이 아닌지를 정말 깊게 고민했었다.
성장하면서 나는 사람들이 말의 정확한 의미나 정의와 상관없이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가끔은 무엇 때문에 그 고민을 했는지 허탈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나는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의 바탕이 되는 정의나 의미를 명확히 정리하고 말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후에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고대 그리스인들이 인류에게 선물한 가장 위대한 유산이 연역적 사고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의 말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개념들을 정확히 정의하고 참으로 증명가능한 개념만으로 사고의 논리를 구성하는 것이 바로 연역적 사고법이다. 이 토대 위에서 고대 그리스 철학은 꽃을 피웠고 로마인들은 이를 받아들여 논리학, 수사학과 법학 개념을 발전시켰다. 서구 문명의 사상과 과학의 발전은 이런 토대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연역적 사고를 문명의 토대로 삼은 서구와 그렇지 못했던 문명들의 운명이 어떻게 나뉘어 졌는지는 역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쉽게 이해하리라 생각한다.
앞으로 이야기 될 지금 우리가 처해져 있는 거대한 역사의 변곡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이 무엇인지를 말하려면 우리를 둘러싼 중국과 일본, 그리고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우리의 상호 연관성을 이해해야 하고 그 배경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다양한 정치와 경제 개념들이 포함된다. 우리에게 꽤 익숙한 개념들일 수 있지만 실제로 그 개념들이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것을 볼 때 정확한 개념이 제대로 공유되는지는 의문이다.
예를 들어 나는 가끔 우리나라 정치인들 중에 자유 민주주의를 내세우며 하는 주장들을 들을 때 내 귀를 의심한 적이 있다. 민주주의에서 자유의 개념이 어떤 역사적 과정을 거쳐 정립된 것이고 그렇게 정립된 자유라는 개념이 어떻게 정의되는 지를 안다면 이해가 불가능한 주장들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민주주의 정치체계에서 자유란 국가 권력의 임의적인 권력 사용으로부터의 자유이다. 그래서 기본권이나 사유재산권 보장과 같은 것들이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가 되는 이유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정확히 같은 개념적 단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전혀 다른 해석을 하고 있거나 아예 개념 자체를 이해하고 있는지가 의심스러운 경우도 있다. 그래서 솔직히 나는 어디까지 개념이 공유되어 설명없이 생략해도 이해가 되는지를 가늠하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예를 들어 나는 북한이 극우 세습왕조라고 정의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 바탕에는 내가 이해하는 좌와 우에 대한 개념 정의가 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자주 쓰이는 단어이지만 심각하게 변질되어 본질을 알 수 없는 단어 중에 하나라고 생각된다.
물론 우리의 역사적 경험에 의한 부분도 있고 정치적 목적으로 본질이 왜곡된 부분도 있기에 어쩌면 지금의 혼동이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나라를 넘어 다른 국가들을 같은 기준으로 바라보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리가 필요한 부분이다. 그래서 다음 글부터는 연역적 사고법에 따라 기본적인 개념들을 정의하고 최대한 증명가능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한동준
윌리암스 대학교 경제학, 수학전공 / 전 아메리칸 하이어 에듀코리아 대표/
청담어학원 ‘NAVI’ 프로그램 개발 / BCM k-12.com 헤드컨설턴트/
현 유테카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