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November 25,Monday

베트남으로의 연착륙

 

연착륙_ 별다른 시행착오 없이 계획한 대로 자리를 잡는 상황

요즘 베트남이 핫 이슈다. 여러 가지 이유로 한국인들은 지금 베트남에 주목을 한다.
어떤 이는 새로 바뀐 정권이 보기 싫다는 정치적인 이유, 어떤 이는 급격하게 인상된 최저 임금으로는 도저히 사업을 할 수 없다는 경제 환경적 이유 그리고 어떤 이는 내밀한 개인적 사유 등으로 베트남을 찾는다. 그러나 이런 모든 원인을 종합해보면 베트남에 들어오는 한국인에게서 찾을 수 있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 뭔가로부터 도망치거나, 뭔가를 찾기 위함이다 –

이곳 베트남의 새로운 가능성에 혹하여 들어오는 사업가들이야 두말 할 것도 없지만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회사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대기업의 파견 근무자는 좀 사정이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요즘은 직원을 외국으로 파견을 보내면서 본인의 의사를 무시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니 그들 역시 이 두 가지 경우 중에 하나가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괴롭히는 상사를 피해 오거나 지루한 직장 생활을 벗어날 만한 새로운 가능성을 찾기 위함이리라.
그대는 무슨 이유로 이곳에 오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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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어떤 이유든 간에 베트남이라는 이국에 도착한 이들의 공동 과제는 어떻게 하면 베트남에 연착륙을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연착륙이란, 별다른 시행착오 없이 계획한 대로 베트남에서 자리를 잡는 상황을 의미한다.
이런 연착륙에 실패하여 꿈을 접고 귀국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그런 아쉬움에 이 글을 쓴다.

지혜로운 자와의 만남
이국 생활의 성공 여부는 처음 도착하는 순간 공항에서 만나는 사람에 의해 좌우된다는 시니컬한 말이 있다. 낯설고 물 설은 이국의 땅에서 정보마저 제대로 갖지 못한 채 들어오는 입국자들에게는 이국에서 만난 동포의 안내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다.
인터넷 크릭 하나로 모든 정보가 드러나는 요즘 세상에 그런 말이 지금도 유효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효능이 없어졌다고 말하기도 힘들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성적인 문제가 아니라 감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다수 입국자들이 일반적인 정보야 이미 갖고 있는지라 완전히 눈을 감은 상태는 아니지만 여전히 시각적으로 문화적으로 익숙하지 못한 환경에서의 낯선 감정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런 자신에게 누군가 세심한 관심을 쏟고 친절한 케어를 해 준다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렇게 감성의 무게가 커지면, 한국에서부터 다져온 날 선 이성(理性)은 온화한 감성의 무게에 눌려 잠시 호흡을 멈춘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미혹의 소리. 이국에서의 불행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국의 땅에서 스스로 뭔가를 찾아내겠다는 사람은 적어도 그런 미혹에 빠지지 않을 내공이 필요하다. 공자는 그런 내공이 갖추어지는 나이를 40으로 봤다.
40의 불혹. 그런데, 이 불혹이라는 말에 대한 오해가 좀 있는 듯하다. 일반적으로 이 말을 유혹에 빠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진정한 뜻은 그게 아닌 듯하다.

불혹의 진정한 의미
이 글을 쓰는 인간도 불혹이라는 이 말의 진정한 뜻을 깨닫는 데에는 40여 년이 넘는 세월을 보내야 했다. 공자가 말한 미혹에 빠지지 않는다는 말의 혹(惑)이란, 어떤 성적 유혹이나 재물의 유혹을 의미하는 것이라기 보다, 말이나 글, 혹은 세상사에 대한 의혹에 빠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즉 글을 읽거나 말을 듣거나 세상사를 바라볼 때 그 의도가 뭔지를 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정치인이나 자신에게 어떤 의도를 갖고 접근하는 이들의 헛소리를 진리로 오해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머리로는 혹하지 않지만 마음의 혹에 빠지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이성적으로 미혹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만 감성적으로 미혹되지 않는 것은 진짜 어려운 문제다. 공자는 마음으로도 어떠한 유혹에도 빠지지 않는 상태를 나이 70의 종심으로 표현했다. 마음이 가는 대로 행하여도 어긋남이 없다는 종심.
이 말에 좀 해설을 더 붙이자면 미혹을 머리로 깨닫는 것은 지식을 얻는 상태이고 그것을 마음으로 행하는 것은 지혜가 아닌가 싶다.

지식과 지혜의 차이
지식과 지혜의 차이는 의문점으로 남는 화두다.
이렇게 말해보자.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인가?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많은 지식을 지니고 있으나 전혀 지혜롭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다. 그래서 지혜와 지식은 전혀 다른 의미다.
시골에 사는 노인들을 보라. 그들의 지식은 아마도 요즘 젊은이의 지식에 반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지혜롭다고 말할 수 있다. 적어도 그들은 자신의 삶에 필요한 지식을 어떻게 활용하는 지를 안다. 즉 지혜란 배운 지식을 바르게 활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면에서 현지에서 익힌 지식을 입국자에게 활용하는 사람은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단지 도덕적인 기준으로 가름한다면 그 활용의 목적에 따라 평가가 전혀 달라질 수 있지만 일단 지혜로운 사람임은 부인 할 길이 없다.
그래서 베트남을 처음 찾는 사람들이 익혀야 할 지식은 바로 당신이 공항에서 처음 마주하는 사람의 실체다. 만약 그들이 그런 일을 업으로 갖고 있는 개인이라면, 그들은 상상 이상의 지혜를 지닌 사람이라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그들은 그들이 갖고 있는 현지의 지식을 자신의 목적에 맞게 활용할 줄 안다. 그가 갖고 있는 현지 지식의 깊이는 또 전혀 다른 주제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비유가 될지 모르지만 일단 자신을 마주하는 상대, 자신의 이국 생활에 도움을 주리라 기대되는 인물에 대한 이해가 바로 이국 생활에서 가장 먼저 익혀야 할 기초 지식이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이해가 필요한 일이 있다. 도움을 준다는 것, 이것은 적어도 동정 (同情), 공감(共感)이 있어야 가능하다. 당신이 비를 맞을 때 우산을 접고 함께 비를 맞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당신을 도울 수 있다는 얘기다. 내 소리가 아니다. 얼마 전에 작고한 신용복 교수가 자신의 책에서 한 소리다. 처음 베트남에 발을 디딘 당신을 지극 정성으로 케어하는 그 친절하신 분이 당신과 함께 비를 맞을 수 있는 사람인가를 상상해 보시라. 가능한가? 그 여부를 아는 것이 당신이 익혀야 할 필요한 지식이다. 그리고 그 지식을 어찌 활용할 것인가는 그대의 지혜로움에 좌우된다.

공인된 단체를 의지하라.
해서 이렇게 정리 하시라. 개인에게 듣는 조언으로 내리는 결정은 높은 위험이 내포되어있다. 그러니, 가능하다면 공인기관의 조언을 구하라. 금전적 대가를 지불하는 조언이 책임을 수반하는 조언이다. 베트남에는 이미 많은 법무법인이나 회계법인들이 진출해 있다. 이들에게 지불하는 대가는 시행착오로 겪는 돈과 시간에 비하며 턱없이 미미한 규모다.
선택은 그대의 자유다.
그대가 지혜로운 사람인가 아니면 지식만 가득한 사람인가를 가름하는 기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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