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인류에 남겨준 가장 위대한 유산은 본질을 이해하고 다가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말이 바로 와 닿지 않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교육이 어디에서 실패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역사적 경험’이 공동체의 ‘눈높이’를 규정한다면 ‘통찰’은 개인의 ‘눈높이’를 규정한다. 그리고 통찰이란 쉽게 말해서 본질에 다가가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눈높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부끄럽지만 내 개인적인 경험을 예로 들어보자.
내가 기억하는 한 아버지와 나는 5분이상 정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관점과 생각이 거의 극과 극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공안 계열의 경찰 간부셨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박정희’는 국부, ‘김대중’은 빨갱이, ‘도고 헤이하치로’는 최고의 영웅이었다. 반면에 나는 초등학교 4학년때 한 급우가 자신의 꿈은 대통령이 되는 것이고 그래서 육사를 가겠다는 말을 듣고 그 급우와 졸업할 때까지 단 한마디도 말을 섞지 않았다. 내 눈에 그 급우는 더 이상 말을 나눌 만한 가치조차 없는 인간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아버지와 나였기에 내 눈에 아버지는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이상의 ‘거울’이라는 시를 읽게 되었다. 내 말귀를 못 알아듣고 항상 나와 반대로 행동하기에 악수를 받을 줄 모르는 거울 속의 존재, 하지만 그 거울 속의 존재는 결국 내 자신의 모습이라는 깨달음을 얻는 계기였다.
내가 단 한번도 생각해 보거나 내 머리 속에 떠올려 본 적 없는 새로운 관점을 얻게 된 것이다. 그러고 내 눈에 비친 아버지의 모습이 결국은 거울 속 내 모습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본 아버지의 모습에서 나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때까지 아버지는 나와는 너무도 다른 사람이기에 그토록 싫어하던 아버지의 많은 모습들이 나와는 상관없는 것들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 바램과는 달리 나는 아버지와 닮아도 너무 많이 닮아 있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차이에도 불구하고 나는 본질적으로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중학교 배치고사가 끝나고 초등학교 6년 생활이 끝자락으로 향하던 겨울, 나는 내가 평생 하지 말아야 할 것과 내가 평생 경계해야 할 것 10가지를 적었다. 그리고 그것을 머리 깊이 새겼다. 한 손으로 셀 정도의 예외를 제외하고 나는 평생 그 10가지를 지키고 살았다.
그래서 이상의 ‘거울’은 내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 시로 인하여 나는 새로운 깨달음, 즉 통찰을 얻게 되었고 그로부터 새로운 관점, 즉 ‘눈높이’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본질을 알고자 하는 마음과 자세가 바로 통찰의 시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본질을 안다는 것은 중요하다. 그 예로 북한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한번 생각해 보자. 우리는 흔히 북한을 공산주의 국가로 생각한다. 하지만 북한이 과연 공산주의 국가인가? 역사에서 3대 세습하는 왕조 공산주의 국가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마르크스의 서적을 금서로 규정하는 공산주의 국가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아무리 막 나가는 공산주의 국가도 공산주의 이론을 창시한 마르크스를 이런 식으로 적대하는 국가는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공산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모순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공산주의가 아니라 그들의 ‘주체 사상’을 보는 것이 빠를 것이다. 그리고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그들이 내세우는 ‘주체 사상’이 공산주의와 대척점에 있는 파시즘, 다시 말해 극우 이론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거기다 기독교의 배타적인 구원 이론까지 도용하고 있다. 이쯤 되면 ‘이건 뭐지?’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한마디로 북한은 절대권력을 지향하는 극우성향의 세습왕조라는 것이 훨씬 더 정확하다. 그리고 그들에게 공산주의란 그들의 본질을 숨기기 위한 가면 혹은 코스플레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 공산주의 관련 책자를 아무리 읽고 연구해도 북한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예 번지수를 잘못 찾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을 공산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은 본질을 흐리고자 하는 그들의 의도에 정확하게 호응하는 협력자가 되어주는 셈이다.
인간이 자신의 모습을 보려면 거울이 필요하듯 북한은 우리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거울이자 우리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거울이기도 하다.
민족은 유전자 공동체이다. 다시 말해 역사적으로 같은 유전자를 공유하는 집단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나타나는 행동 패턴이 비슷할 수 밖에 없다. 다만 주어진 환경의 차이로 나타나는 정도와 형태가 다를 뿐 본질은 같다. 한 번 생각해 보면 우리는 미국에 의해 해방되고 그들의 군정을 거쳐 민주주의 정부가 설립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역사의 대부분은 1인 독재로 흘러갔다. 그것이 과연 단순한 우연의 일치였을까? 북한의 삼대 세습을 비웃고 욕하면서 돌아서서 박정희의 딸 박근혜를 권좌에 앉히는 우리의 모습이 그들과 닮았다는 생각은 한번도 들지 않았던 것일까?
북한을 욕하고 일본을 비난하고 중국을 폄하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을 거울삼아 우리가 비난하는 바로 그 모습을 거울 속 우리 스스로의 모습으로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그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본질에 다가가서 그것을 직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한 단계 더 높은 ‘눈높이’를 가지고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하고 역사를 이끌어 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런 자각이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나는 확신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거대한 역사의 변곡점에 서 있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이런 변곡점은 그리 자주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우리가 서 있다.
그래서 우리 한사람 한사람은 우리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가진다. 우리가 지금 하는 판단과 행동은 거대한 물줄기가 되어 우리의 역사만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에 커다란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 높은 ‘눈높이’를 가져야만 하고 가지려고 노력해야 할 절실한 필요와 의무가 있다. 다음 편에는 우리가 중심에 서 있는 이 역사의 변곡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중요한지를 이야기 해 보도록 하자.
한동준
윌리암스 대학교 경제학, 수학전공 / 전 아메리칸 하이어 에듀코리아 대표/
청담어학원 ‘NAVI’ 프로그램 개발 / BCM k-12.com 헤드컨설턴트/
현 유테카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