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인회문제로 교민사회가 시끌합니다. 국내의 언론사들이 이 문제를 보도하는 바람에 더욱 문제가 확대된 상황입니다. 결국 외교부에서 파견된 조사단이 나와서 교민들의 애기를 듣는 자리까지 이어져 버렸습니다. 이제는 호치민 한인회는 국내에서도 문제가 되는 사고 한인회가 되어버린 셈이죠.
그런데 그 외교부에서 나온 영사의 마지막 발언이 귓전을 맴돕니다. 나라에서 민간 기관인 한인회의 분쟁을 해결할 방법은 없다는 발언입니다. 결국 돌고 돌아봐야 모든 공은 다시 제자리 우리 교민들의 손으로 돌아왔습니다.
우리 호치민 한인회가 왜 이렇게 사고뭉치 한인회가 되었는지 한번 돌아보자는 의미에서 해외 한인회라는 단체의 기본에 대하여 한번 짚어보는 것은 어떨까 싶습니다,
친목단체로 출발하는 한인회
한인회는 어느 교민사회나 다 친목회로 출발합니다. 처음부터 수천 명의 교민이 생겨나는 것은 아니고 고작 수십 명이 있어도 일단 한인이라는 공통점을 갖게 되면 뭔가 모임이 필요해 집니다. 이때 모임은 순수하게 서로 알고 지내자는 의미에서 출발하는 친목단체입니다.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자생적 단체인 셈이죠. 그 정도의 규모라면 친목 이상의 기능이 필요하지도 않고 구성원 역시 더 다른 기능을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교민의 수가 기만 명 기십만 명이 되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이제는 교민을 대표하는 단체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생겨납니다. 왜냐하면 예전에 그들이 담당했던 친목기능은 이미 수많은 다른 단체들이 나타나 그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으니 한인회마저 그런 친목 역할을 한다면 존재 이유가 상실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한인회는 뭔가 다른 일을 해야 합니다.
교민수가 늘어나고 교민사회가 확장되다 보면 개인이 처리 못할 일들이 생겨납니다.
예를 들어 고국의 명절이라던가 기념일 날이면 어딘가에 모여서 단체로 행사를 하면 고국에 대한 향수를 나누고 싶은데 개인이 이렇게 하자고 하기에는 좀 버거운 일들입니다. 또 이국의 땅에서 현지 물정을 몰라 교민들이 계속해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고생을 하고 있다면 누군가 그런 일을 깨워줄 봉사자가 필요한데 특정 개인에게 지속적인 봉사를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또, 누군가 사고를 당했다면 그 처리 역시 개인보다는 단체가 나서는 것이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개인이 해결하지 못할 이국 생활의 어려움을 해결하거나 미연에 방지하는 일을 생업에 바쁜 교민들을 대리하여 그 궂은 일을 해주는 조직이 필요해 집니다. 그래서 교민들은 마침 성격이 모호해 지는 한인회에게 “그래’ 너희들이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 일을 맡아서 해결해 다오” 하며 대표성을 주는 것입니다.
한인회, 대표성 확보가 전부다
이 대표성, 이것이 참 중요합니다. 이 대표성이 확보 되었느냐 아니냐에 따라 한인회의 정통성이 좌우됩니다. 대표성이 확보되지 않은 한인회는 사실 그들만의 친목단체일 뿐이지 결코 교민들의 대표단체는 아닙니다. 이 대표성이 왜 중요한가 하는 것은 흔히 생기는 한인회의 분쟁을 보면 역으로 알 수 있습니다. 특정 지역에서 한인회가 두 개니 세 개니 하면 다투는 모습을 자주 접합니다. 그렇게 한인회가 복수로 등장하는 사건이 나타나면 그 사회가 심하게 분열되었구나 하며 그 사회 자체를 콩가루 사회로 치부합니다. 이게 바로 한인회라는 단체의 성격을 보여주는 역설적인 증거입니다. 한인회가 대표성을 지니지 않은 친목단체라면 두 개면 어떻고 세 개면 어떻겠습니까? 많을수록 좋지요.
그런데 대표는 하나면 충분합니다. 아니 대표기관은 반드시 하나여야만 합니다. 그것이 한인회라는 단체가 갖는 정체성입니다.
호치민 한인회의 변형된 태생
여기서 이런 일반론을 우리에게 적용하기 전에 호치민 한인회의 특수성을 잠시 들쳐볼까 합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한인회라는 조직은 어디서나 다 자생적 친목단체로 출발하는 것이 상례인데 호치민 교민회 만큼은 조금 달랐습니다. 1996년 교민수가 고작 2천여 명을 헤아릴 당시 한국의 대통령 김영삼이 베트남을 방문합니다. 그러자 공무원들이 움직입니다. 대통령과 교민을 대표하여 악수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그래서 그들이 몇몇 목소리가 큰 교민들을 만나 누구를 교민회장으로 만들었으면 좋은지 의논을 합니다. 자생적인 한인회가 생기기도 전에 공관의 필요에 의해 한인회장이 먼저 만들어 집니다. 조직보다 먼저 회장이 탄생합니다. 그렇게 공무원들의 손에 의해 호치민 초대 한인회장으로 서울대 법대 출신인 박옥만씨가 지정되고 동시에 한인회가 탄생합니다. 순서가 좀 바뀌었죠 바쁜 시절이라 그렇습니다.
얼떨결에 한인회가 교민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만들어졌습니다, 그것도 공관의 손으로. 이런 인위적 탄생과정을 거친 호치민 한인회의 역사는 그 후로도 계속해서 공관과 밀접한 유대관계를 갖습니다. 그 당시 호치민 총영사는 아예 한인회의 당연직 고문으로 정관에 못이 박힙니다.
한인회의 운영은 그때부터 공관의 업무 중에 하나가 됩니다.
지금은 공관이 왜 민간단체에 참견을 하냐고 항의하는 상황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한인회 관리가 공관의 업무의 하나로 이어왔다는 것은 안다면 그들의 행동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지금도 그런가요?
그런 태생적 문제점은 한인회 초기에 여지없이 드러납니다. 한인회에 무슨 일만 있으면 모두 공관으로 조르르 달려가서 의논을 합니다. 초기 한인회를 주무르시던 원로 분들이 만들어 낸 전통입니다. 한인회를 공관의 하부 조직으로 갖다 바친 셈이죠. 그 실례로 한 때는 총영사가 한인회장을 비토하는 바람에 한인회장이 사퇴를 하는 경우도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도 언젠가 실명을 공개하며 상세하게 기술할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외교부에서 파견 나온 영사는 한인회 분쟁에 대하여 공관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합니다, 반가운 일이라고 해야 할지 실제로 필요한 일에는 손을 빼는 게 공관원들의 특징이라고 해야 할지. 어찌되었든지 우리 교민들에게 공이 철저히 넘어 왔다면 제발 공관은 뒤로 돌아서야 합니다. 그런 자세가 그나마 지금의 혼란을 더 이상 확대하지 않는 길이기도 합니다. 즉 자신의 허물을 외부로 돌릴 기회를 제공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민의 비빌 언덕, 한인회
다시 한인회의 일반으로 넘어갑니다.
그럼, 한인회는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한마디로 정의하면, 개인이 못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민개인이나 기업 혹은 단체가 하는 일을 도와주는 일을 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라도 교민과 경쟁을 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더 이상 한인회는 공익단체가 아닌 사익단체로 대표성도 자동 상실됩니다. 자신을 대리하는 단체가 자신과 경쟁을 하겠다면 어떻게 그들에게 대표성을 줄 수 있겠습니까?
즉, 한인회는 교민들이 이곳에서 생활하는데 비빌 언덕이 될 수 있는 사업을 진행하여야 합니다. 어떻게 하냐고 묻지 마십시오. 그 답은 바로 한인회장이 되겠다고 나서는 분들의 몫입니다.
어떻게 교민들의 비빌 언덕이 될 것인가?
한인회의 숙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