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하고 이제 더 이상 시험과 숙제가 없다고 생각한 순간을 기억하는가? 16년간의 시험과 숙제 스트레스여, 안녕! 드디어 해방이다! 라고 외쳤지만, 그도 잠시. 사회인이 되어 겪은 고난이도의 인생 시험, 인생 숙제에 비하면 학창 시절의 그것은 오히려 단순 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학생들이 겪는 스트레스가 어른의 것보다 가벼운 것은 아니다.
모든 이에게는 각자 인생의 무게가 있는 법. 어린이에게나 어른에게나 시험과 숙제가 어렵기는 매한가지이다. 특히 학교 숙제, 학원 숙제 등으로 모든 여가를 숙제 하기에 바쳐야 한다는 아이들로서는 ‘숙제 없는 세상’을 천국으로 여길 법도 하다. 송파에서 일할 때 한 초등 친구와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영어 독후감을 안 써 와서 개인 면담을 한 것이었는데 ‘새벽 3시까지 수학 숙제 했어요.’ 라고 울면서 시작한 이야기가 결국 가정사까지 이어져 ‘우리 엄마는 맨날 친구들이랑 놀고 아빠는 쉬는 날엔 골프만 쳐요.’ 라는 푸념으로 막을 내렸다. 내 입장에서는 본전도 못찾은 대화였다. 아이는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숙제를 하는 자신의 처지가 슬픈 한 편, 만날 노는 듯한 부모님을 보니 (아이 입장에서) 세상이란 참 불공평 하기 짝이 없구나 생각했던가 보다.
나중에 어른 되면 안다, 류의 하나 마나 한 소리는 접고 도대체 우리 아이 숙제,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해 보자.
우리 아이는 숙제를 세 시간씩 해요.
만일 그렇다면 세 가지를 가정해 볼 수 있다.
첫째, 숙제 할 수 있는 가정 환경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
동생들이 방해하거나, 항상TV가 켜져 있거나 손님이 자주 들락거리거나 부모님이 싸우거나 아이가 주로 피곤한 상태이거나. 100개의 가정에 100개의 사연이 있을 것이다.
여하간 아이가 책을 펼쳐 놓고 오랜 시간 앉아 있다고 해서 숙제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건 그냥 경험치로 알 수 있는 일이다. 간혹 남아서 도서관에서 숙제를 하는 아이들을 들여다보면 40분 이내에 그 날의 숙제를 거뜬히 끝내는 것을 본다. 같은 양의 숙제를 집에서는 세 시간 한다는 것이 학부모들의 증언이다.
이 때문에 아이들은 자신이 집에서는 항상 숙제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학부모들은 아이가 항상 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루에 30~40분은 무조건 숙제 하는 시간으로 정해 놓고 훈련하는 수 밖에 없다. 그 때에는 당연히 숙제를 할 수 있도록 주변 환경을 정리해 주고 시간을 확실하게 확보해 주어야 한다. 그것이 학부모의 역할일 것이다. 그렇게 해도 그 안에 끝내지 못한다면 다른 가능성을 검토해 볼 수 있다.
둘째, 레벨이 잘못 되었을 가능성이다. 앞에서 만난 친구가 여기에 해당된다. 새벽 3시까지 숙제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건 틀림없이 너무 어려운 공부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특히 영어의 경우, 적당한 레벨에서 적당한 책으로 공부하고 있다면 숙제는 30분~1시간 이내에 끝나야 한다.
숙제를 장시간 끙끙거리며 하고 있다면 적신호로 여겨야 한다. 어렵게 공부하는 게 오히려 좋은 것 아니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과도하게 어려운 공부를 하고 있다면 배우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마지막으로, 숙제를 몰아서 하고 있지 않은지 점검해야 한다. 대개의 경우 숙제가 감당 못할 정도로 많은 것이 아니라 일주일 숙제를 몰아서 한꺼번에 하려고 할 때 문제가 생기는 법이다. 그런 날은 집안에 먹구름이 낀다. 아이도 어둡고 옆에 앉은 엄마도 표정이 어둡다.
이런 식의 벼락치기는 고통스럽긴 하지만 어렵진 않다. 하루 힘들면 되니까. 정말 어려운 것은 매일 시간을 일정하게 쪼개어, 숙제 하는 패턴을 만드는 것이다. 그 패턴은 좋은 습관이 된다. 좋은 숙제 습관을 만드는 것은 다이어트와 같다. 힘들지만 매일 하면 반드시 보상을 받는다.
아이 숙제는 엄마 숙제인가?
집에서 영어 숙제를 어느 만큼 도와야 하는가?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정답에 가까운 것은, 아이가 질문을 할 때만 대답해 주면 된다, 이다. 아이 숙제는 엄마 숙제가 아니다. 스스로 해야 한다. 아이가 학원이나 학교에서 제대로 배우고 왔다면 집에서 숙제를 어려워 할 리가 없다.
집중해서 숙제 할 수 있도록 장애물을 제거해 쾌적한 숙제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면 반드시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한다. 계속 도와 주었다 가는 엄마가 곁에 있어야만 숙제를 하게 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학부모가 숙제를 도와 주다가 아이와 사이가 멀어진다는 점이다. 다른 일로는 아이와 싸우지 않는데 유독 숙제 하다가 싸운다. 아이들이 영어를 싫어하게 되는 계기는 다른 게 아니다. 엄마랑 숙제 하면서 싫어진다. 숙제 하면서 듣는 꾸중과 핀잔이 아이의 자신감을 앗아가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이는 스스로 영어를 못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영어를 배울 때 자신감은 아이에게 중요한 학습 동기이다. 절대 꺾어서는 안된다. 학부모와 아이의 관계가 학습에 끼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에 대해서는 여러 연구를 통해 발표된 바 있다.
혼자 하게 두면 엉망이 돼요, 라고 학부모들이 얘기한다.
도와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글씨도 엉망이고 답도 엉터리인것이 엄마는 견디기 힘들다. 하지만 엄마만 견디면 된다. 아이는 스스로 한 공부에 자긍심이 있기 때문이다. 공부는 한 달 두 달 하고 집어치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좋은 습관을 들여 평생을 친구 삼아야 하는 것이 공부인 만큼 어릴 때부터 스스로 하며 자신감을 획득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못 하는 걸 보고 있는 게 도 닦는 것 보다 힘들어요. 왜 아니겠는가. 아이가 숙제 할 동안은 힘을 내서 멀리 떨어져 있자.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