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엘리트 교육’을 받고 ‘엘리트’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교육 시장에는 ‘엘리트’라는 말 혹은 이와 비슷한 느낌의 단어들이 많이 애용된다. 하지만 과연 엘리트 교육을 내세우는 사람들 중에 누가 실제로 아이들에게 ‘엘리트’가 되는 교육을 제공하는지를 부모님들이 구분할 수 있을까? 오늘은 엘리트 교육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지를 알아보자.
엘리트 교육이란, 그릇을 키우는 교육이다!
엘리트 교육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지식을 눌러 담는 교육이 아니라 그릇을 키우는 교육이다. 그릇이 작은데 아무리 눌러 담아봐야 결국에는 다 흘러 넘친다. 그나마 그냥 흘러 넘치는 정도면 다행이지만 더 담으려고 억지로 누르다 그릇이 새거나 심하면 깨진다. 새는 그릇은 어떻게 든 수선이 가능하지만 깨진 그릇은 그냥 답이 없다. 나는 그런 상황을 볼 때마다 화가 치미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에 더 화가 나고 참담한 심정이 될 때가 많았다.
여기 아주 간단한 판별법을 제시하니 한 번 테스트해 보기를 바란다. 아이가 답이 무엇인지만 관심이 있고 왜 그것이 답인지에는 관심이 없거나 성적에 반영되는 것 외에는 지적 호기심을 보이지 않거나 자신의 눈에 비친 세상에 대해 별다른 질문이 없다면 위험한 것이고 두 가지 이상 해당되면 이미 그릇에 금이 가고 있는 상황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천재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에 대해 갖는 가장 큰 오류가 그런 사람들은 원래 천재로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소위 신동이라고 불리는 아이들이 가끔 언론에 화제가 되는데 그들이 어른이 된 뒤에도 천재로 남는지를 보면 쉽게 그 답을 알 수 있다. 반대로 공자부터 뉴튼, 아인슈타인에 이르기까지 천재적 인물들은 태생적인 천재인가를 생각해 보면 나는 주저없이 ‘아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
논어에 보면 공자는 자신에 대해 “나는 보통사람과 같다”라는 말을 두 번 했고 그 외에도 비슷한 맥락의 말을 반복하고 있다. 논어 위령공에 따르면, 어느 날 공자가 제자인 자공에게 묻는다. “사야, 너는 내가 많이 배워서 알고 있는 사람인 것 같으냐?” 자공이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하자 공자는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니다. 나는 하나로 관통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이치로 모든 것을 꽤 뚫는다!
일이관지(一以貫之), 하나의 이치로 모든 것을 꽤 뚫는다. 이것이 보통사람인 공자를 보통사람이 아닌 사람으로 만든 핵심 위드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천재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을 관통하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일이관지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는 다양하지만 쉽게 풀이를 한다면 세상의 모든 이치는 하나로 통한다는 말인데 세상의 이치를 깨닫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배워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이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를 통달할 정도로 깊은 공부를 한다면 세상의 모든 이치를 깨달을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공자가 평생을 두고 매진한 키워드는 바로 인(仁)이었다. 그는 인을 통해 세상사를 통달할 수 있었다.
결국 천재들이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아는 것은 그들이 천재로 태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일이관지(一以貫之), 자신이 잘 알고 관심있는 분야에 매진한 덕분에 남들이 보지 못하는 무엇을 깨달은 것이라고 믿는다.
피카소가 말하기를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예술가로 태어난다. 문제는 성장하면서 그렇게 남을 수 있는 가에 있다.” 나는 피카소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내가 볼 때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엘리트의 자질을 가지고 태어난다. 바로 지적 호기심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이다. 진정한 문제는 성장하면서 그것을 유지할 수 있는가에 있다. 어린 아이들이 귀찮을 정도로 “왜”를 남발해서 어른들을 곤란하게 하는 경우를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했을 것이다. 아이들의 눈에 세상은 온통 질문 투성이인 것이다. 하지만 성장하면서 그런 질문들은 점차 사라지고 더 이상은 궁금해 하지 않게 변해간다. 그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그 엄청난 가능성이 죽어가고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물론 지식을 강제하는 교육시스템의 문제라고 쉽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것만으로는 모든 아이들 속에 내제된 지적 호기심을 완전히 소멸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불씨가 살아 있어도 오랜 기간 방치하면 결국 완전히 꺼져 버린다. 그리고 그 차이는 바로 지적 호기심을 어떻게 그리고 무엇으로 충족시킬 수 있는 지를 경험할 기회가 있는 가에 달려 있다. 불씨에 땔 감을 제공하면 스스로 활활 불타오르듯이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는 방법을 일깨우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아이들 스스로 그 답을 찾는다. 원래 엘리트 교육의 본질은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그것을 어떻게 충족할 수 있는지를 가르치는 교육이다. 그래서 소트라데스 나 공자의 가르침은 모두 토론식이었다. 강의를 하거나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고 요점 정리는 더더욱 아니었다. 스스로 문제를 생각하고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길잡이를 해 주는 교육인 것이다.
이 시점에서 이론상으로는 좋은데 현실적인 교육 환경상 그것이 가능하겠는 가라고 질문을 갖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결과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증명하는 유명한 실험이 있다. 인도에서 일어난 ‘Hole in the wall’ 실험이다. 인도에서 가장 가난하고 학교 취학률이 매우 낮은 지역을 선정해서 길거리 벽에 아이들 눈 높이에 맞는 높이로 방탄 유리 뒤에 컴퓨터 모니터를 설치하고 그 밑에 구멍을 내어 키보드와 마우스를 만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몇달뒤 그곳을 다시 방문해보니 영어를 전혀 모르던 아이들이 영어로 “좀 더 성능좋은 컴퓨터와 마우스가 필요해요” 하는 것이다. 그들 스스로 컴퓨터를 배우고 친구들을 가르친 것이다. 컴퓨터를 알기위해 스스로 영어를 학습하고 그것을 실생활에서 사용하고 있었다. 물론 불과 200자 정도의 한정된 영어 단어이긴 하지만.
원래 이 실험은 무언가 커다란 기대를 가지고 시작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모르는 새로운 것을 발견했을 때 아이들의 반응을 기록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그 뒤의 결과는 발표하더라도 교육 학자들이 도저히 믿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고 그것을 확실히 증명하기 위한 대대적인 실험이 이어졌다. 그리고 앞의 결과가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이 입증되었다. 이 실험을 주도한 수가타 미트라 박사의 삶은 한 순간에 바뀌어 버렸다. 그는 뒤에 “교육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면 스스로 일어나는 자연적인 현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엘리트 교육이란 아이들의 지적 호기심을 살려서 스스로 질문을 갖도록 유도하고 그 질문의 답을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고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다는 자신감과 만족감의 경험을 축적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지식을 담는 교육이 아닌 그릇을 키우는 교육인 것이다. 다음 번에는 구체적으로 엘리트 교육이 현실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적용되는지 그 방법론을 알아보도록 하자.
한동준 : 윌리암스 대학교 경제학, 수학 전공 / 전 아메리칸 하이어 에듀코리아 대표 / 청담어학원 ‘NAVI’ 프로그램 개발
BCM k-12.com 헤드 컨설턴트/ 현 유테카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