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인공지능 번역기계와 인간의 번역 대결이 세간의 관심을 끌었습니다만, 많은 전문가들의 예상대로 인간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알파고가 세계 최강 이세돌 선수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여서 승리했던 것이 1년 전이니, 인공지능 기술이 1년 동안 더욱 발전하고 강해졌을 텐데도 번역 영역에서는 아직도 인공지능이 인간을 따라잡기가 역부족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죠. 그만큼 두개의 언어 사이를 오가며 언어를 구사하는 일이 “기계적”으로는 하기 어렵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습니다. 똑같은 의미를 전달하는 데에도 수많은 방식으로 말과 표현을 바꾸어 쓸 수 있기 때문이 그 이유 중 하나일테고요.
그렇지만 필자를 포함한 수많은 전문 “인간” 통번역사들은 연사가 하는 연설을 말 그대로 실시간으로, “동시에” 통역을 해냅니다. 인류가 탄생한 후 두번째로 생긴 직업이 통번역이라는 말도 있으니, 그 똑똑한 인공지능도 해내지 못하고 있는 일을 인간은 태초부터 해오고 있는 셈인데요, 그 비결은 두개의 언어 사이의 차이점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시시각각 필요한 단어와 표현을 찾아내는 능력에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어와 영어 사이의 차이점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발견하는 일이 두개의 언어를 정복하는 데 중요한 과제입니다. 특히, 맥락을 중요시하고(High-Context), 형식(Form)을 바탕으로 하는 한국어가 모국어인 우리는 맥락보다는 직관을 중요시하고(Low-Context), 형식보다는 의미(Meaning)를 우선시하는 영어를 구사할 때에도 한국어 처럼 접근을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효율성과 효과성 모두를 잃게 되는 경우가 많게 됩니다.
그래서 수많은 영어 전문가들은 영어를 사용할 때에는 영어의 문화에 맞도록 접근하기 위해서 몇가지 원칙을 지키라고 조언하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3C 법칙(The 3C Rule)”과 “키스(KISS)” 법칙입니다. 3C 법칙의 3C는 명확성(Clear), 간결성(Concise), 응집성(Coherent)이고, KISS는 “Keep It Short and Simple.” 즉, “문장을 짧고도 단순하게 만들어라”라는 문장을 줄여놓은 말로, 3C법칙 중 두번째 간결성을 특히 강조하는 원칙입니다. 똑같은 의미를 전달할 때 가능하다면 좀더 길이도 짧게(Short), 그리고 문장의 구조도 단순하게(Simple)하는 것이 영어답고, 효과적이고, 효율적이라는 뜻입니다. 혹여 Short와 Simple의 차이점을 혼돈하실까봐 덧붙이자면, Short의 반대말은 Lengthy (장황하게 길다는 뜻), Simple의 반대말은 Complex (구조가 복잡하다는 뜻)입니다. 같은 말을 할 때도 가급적이면 한 단어라도 덜 쓰면서, 그리고 가급적이면 한 문장 안에 주어+동사가 여러번 나오지 않도록 (소위 말하는 중문, 복문을 피하도록) 하라는 뜻입니다.
예를 들면, 담배갑에 경고문구를 쓰고자 할 때, 한국어로는 “흡연은 사망 및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됩니다” 처럼 형식을 지켜서 쓰겠지만, 영어로는 “Smoking kills.”라고 간단하지만 완벽한 문장을 씁니다. (Smoking 이 주어, kills가 동사로 쓰인 하나의 완벽한 문장입니다.) 물론 영어로도 “Smoking is a cause of death.”처럼 쓸 수 있습니다만, “Smoking kills.”로도 충분히 그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면 더 짧은 쪽을 선택하라는 것이 KISS 법칙입니다.
그렇다면 키스(KISS)를 잘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일단, 한국어에서 즐겨쓰는 “Be 동사” 그리고 “Have 동사”는 머리에 떠오를 때 마다 의식적으로 자제를 하십니다. 그리고 그 대신에 쉬우면서도 다양한 일반동사를 찾는 연습을 꾸준히 하셔야 합니다. 아까 위에서 말씀드린 Kill이라는 동사의 뜻을 모르시는 분은 거의 안계시겠지만, Smoking kills.처럼 쓸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계신 분도 많지는 않으시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kill이라는 동사를 이미 알고 있다면 이제 Smoking kills.를 익혀서 다음번에 써먹을 수도 있게 됩니다. 그래서 다음번에는 “중복은 죽기보다 싫다” 라는 말을 하고 싶을 때, “Redundancy kills.” 혹은 “어떤것은 죽는 것만큼이나 좋지 않다”라는 취지의 말을 하고 싶을 때, “그 어떤것”을 주어로 삼고 동사를 Kills로 쓸 수 있게 됩니다.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면, “그 이메일에는 이런 말이 쓰여져 있었다”라는 문장을 쓸때도, “The email has this message.”라고 쓰기 보다는 (역시 한국식으로 영어를 하면 Have 동사가 쉽게 나오게 되지요?) “The email reads,” 라고 쓸수 있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사고의 전환을 하려고 노력하면 더 나아가서, “간판에 ~라고 써있다”는 “The sign reads,” “이 펜은 잘 써진다”는 “This pen writes well.” 등으로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동사들을 활용하는 눈을 뜨게 됩니다.
이쯤 되면 눈치를 채신 분도 계실지 모르겠지만, “Be 동사”와 “Have 동사”를 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것은 달리 말해서 “수동태”나 “there is/there are”와 같은 말 그대로 “수동적인” 표현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정리하자면, 한국어에서 영어로 사고를 전환할 때는 “키스(KISS)”하기 위해서, “Be 동사”나 “Have 동사”가 먼저 떠오른다면 그 순간 자신을 멈추고 (Stop yourself) 한번 더 생각한 후 (Think twice) 다양한 기본동사를 찾아낸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동태”나 “there is / there are”와 같은 표현도 피한다. 한국어로 “쓰여져 있다” “써진다” 와 같이 수동태 표현이 있다고 하더라도 영어에서는 수동태를 피하려고 노력하면 반드시 방법이 있습니다. 또한, “~가 있다/많다” 처럼 “there is / there are”를 떠올리게 하는 말을 하고자 할 때도 반드시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예가 많다”라는 말을 영어로 하고자 할 때도, “There are a lot of examples.”라고 하고 만족한다면 한국식 영어를 극복하기 힘들지만, “Examples abound.”와 같은 문장을 찾아내는 연습을 꾸준히 한다면 반드시 한국식 영어를 넘어서서 영어식 사고방식을 장착하게 됩니다.
이성연 現 팀스영어학원 대표원장
한국외국어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졸업/헬싱키경제경영대학원 졸업
삼성그룹, SK Telecom 전속통번역사 / 한성대학교 영어영문학부 겸임교수 및 시간강사
한국경제신문사 GBC 과정 주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