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7년 3월 미국 뉴욕시의 여성노동자들은 거리에 나와 열악한 노동환경과 저임금에 항의 하는 시위를 일으켰다. 이후 1859년 최초로 노동조합을 결성, 1908년 3월 8일 다시 뉴욕 럿거스 광장에 모인 미국 여성 노동자15,000명이상의 여성들이 근무시간 단축, 임금향상, 투표권등을 요구하며 다시 뉴욕시로 향했다. 그들은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노동이 아니라 휴식이다!” “우리는 빵과 장미를 원한다!”라고 외쳤다. 빵은 굶주림을 해소할 생존권을 장미는 남성과 동등한 참정권을 의미했다.
1910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렸던 국제사회주의자대회에서 국제적인 성격을 띤 ‘여성의 날’을 지정하는 안이 17개국에서 모인 100여명의 여성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만장일치로 결의되었다.
1975년 UN(United Nations:국제연합)은 그 해를 ‘세계 여성의 해’로 지정하였으며, 첫 세계여성회의를 멕시코시티에서 개최하였다. 1977년 12월 UN 총회는 여성의 권리와 국제 평화를 위한 UN의 날을 지정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향후 덴마크 코펜하겐 (1980), 케냐 나이로비 (1985), 중국 북경 (1995)에서 열렸던 세계여성회의는 여성의 권리를 증진시키고 정치•경제•사회 분야에서 여성의 진출을 확대하는 데에 많은 역할을 담당하였다.
베트남에서는 3월 8일 국제여성의 날과 10월 20일 베트남 여성의 날, 두번의 여성의 날이 있다. 베트남의 3월 8일은 하이바쯩(Hai Bà Trưng)기념일이기도 하다. Hai Bà Trưng(두명의 쯩자매)은 AD 40년경 지금의 하노이 부근인 멜린에서 중국의 외적을 쫓아내고 다시 주권을 되찾은 민족의 영웅이자 베트남 여성의 자긍심과 의지를 드높인 역사적 주인공 자매다. 중국에 대항해 승리한 후, 언니 쯩짝 (Trưng Trắc)은 여왕으로 추대되어 Trưng Nữ Vương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하이바쯩의 승리는 민족의 독립에 대한 불굴의 의지를 드러낸 사건이자 동시에 나라를 지켜낸 베트남 여성의 역사적 표상이 되었다. 1965년 3월8일 호치민은 남부여성의 공헌을 기리기 위해 Anh hùng (영웅)– Bất khuất (불굴)– Trung hậu (충성)– Đảm đang
(역할)” 8자를 세긴 그림을 제작, 치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