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내내 날짜를 쓸 일이 있을 때면 멈칫하거나 핸드폰에 보이는 날짜를 확인하며 헤맨 적이 종종 있었습니다. 별 생각 없이 손에 익숙한 2015년이라고 적었다가 황급히 깨닫고는 어색하게 2016년이라고 고쳐 쓰곤 했었죠. 그랬던 2016년이 이제야 좀 겨우겨우 익숙해지려고 하던 참인데 그럴 새도 없이 또다시 어색한 2017년의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매년 점점 빨리 다가오는 새해의 속력이 놀랍습니다. 내년에는 더욱 빨리 돌아오겠죠? 올해도 날짜를 한참 틀리게 쓰다가 제대로 쓸 때쯤이면 내년이 되어있을 것 같습니다.
벌써 세 번째 새해 칼럼이라니… 제가 글을 쓴 지 3년이 넘었나 봅니다. 시간이 참 빠르게 흐르는 것 같습니다. 2015년 새해에는 자신의 고향을 그리워하고 그림 속에 눈이 펑펑 내렸던 ‘샤갈’과 그의 작품들을, 2016년 새해에는 한국을 그리워하면서 한국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박수근’과 그의 작품을 소개했었죠? 올해는 지난해들과 달리 작가나 작품이 떠오르지 않고 새하얀 캔버스만 자꾸 떠올랐습니다. 캔버스의 새하얀 흰색이 머릿속을 맴돌며 가득 채우고 있더라고요. 떠올린 캔버스들 위로 유난히 다사다난했던 지난해의 기억들이 완성과 미완성의 모습으로 머릿속에 천천히 지나갑니다.
연필로 스케치만 하고 채색은 엄두도 못 낸 그림 같은 연초에 세웠던 야심찬 계획들. 손 가는 대로 목탄 가는 대로 제멋대로 변화하는 목탄화처럼 당장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이 어려운 남의 나라에서의 하루하루. 열심히 일했는데 여전히 쌓여있는 뿌연 색연필화 같은 산더미 일들. 주체하기 힘든 물조절마냥 어디로 튈지 몰라서 시작하기 전에 겁부터 한 움큼 먹는 수채화스러운 인간관계. 지우개로 지우고 싶지만 지워지지 않는 펜화 같은 이미 쏟아버린 말이나 실수들. 그로 인해 상처받은 페인팅 나이프로 벅벅 긁어버린 자국같은 감정들. 저질체력이 되어서 몸살이 나거나 피곤할 때에 내 몸을 여러 개 찍어낸 판화가 있었으면 하고 바라봅니다.
새해의 캔버스에는 앞으로 어떤 그림이 그려질까요? 어떤 캔버스에 그려질까요? 과거의 상처나 아픔을 딛고 일어난 것 같은 예전의 그림을 밑칠로 덮어버린 두껍고 울퉁불퉁한 헌 캔버스일 수도 있고, 새로운 마음으로 한 해를 시작하려는 새 나무틀에 새 천을 박아놓은 캔버스일 수도 있습니다. 항상 ‘올해보다 바쁠수는 없어. 올해가 제일 바쁠꺼야. 조금만 견디자.’ 하고 생각하지만 다음해가 오면 더 바빠져 매년 바쁨의 레벨을 최고치로 경신하곤 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모두들 새해가 빨리 돌아오는 것처럼 느껴지는 만큼, 시간이 빨리 흐르는 만큼 더욱 더 자신의 자리에서 바쁘고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생활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작품만 그려지면 좋겠지만 예술 작품 중에 항상 보기 좋고 아름다운 작품만 있지 않는 것처럼 한 해 동안 항상 기쁘고 행복한 일만 있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올해도 어김없이 새해가 돌아온만큼 스스로 자신의 삶의 예술가가 되어서 앞으로의 올해를, 나아가서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구상할지 계획해보고 1년 뒤 연말이 되어서 전시회처럼 되돌아보며 감상해본다면 더욱 풍요로운 한 해가 되지 않을까요? 1년이라는 캔버스에 새해부터 한 해의 이야기가 역사화처럼 웅장하게 그려질 수도 있고, 한 달씩 나누어져서 그려질 수도 있고, 일기처럼 하루씩 일러스트처럼 그려질 수도 있고, 낙서처럼 자유분방하게 그려질 수도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예술가이자 예술 작품입니다. 꼭 그림의 형태, 그럴싸한 작품의 형태가 아닐지라도 작가가 의도를 가지고 표현을 한다면 예술 작품이 될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그리고 스스로의 삶을 멋지게 디자인하고, 구상하면서 길면 길다고, 짧으면 짧다고 느껴질 수 있는 올 한 해를 지난해보다 더욱 즐겁고 의미 있게 보내보도록 노력해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