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워홀
크라잉넛의 GIVE ME THE MONEY (2013년에 발매된 7집 FLAMING NUTS의 타이틀곡) 의 가사로 오늘의 칼럼을 시작했습니다. 숨기지 않고 너무도 솔직하게 돈이 필요하다고 울부짖는 이 노래를 들으면 속이 시원합니다. ‘돈’을 목표로, 최우선으로 돌아가는 지금 세상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 같아서요. 이 글을 읽는 동안에 이 칼럼이 쓰여있는 종이에서 직접 이 노래가 흘러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요즘 보면 ‘금수저’니 ‘은수저’니 ‘흙수저’니 하며 집안 배경이나 부모님을 숟가락 색깔에 빗대어 저급하게 표현하기도 하고, ‘꿈이 뭐니?’라는 질문에 나오는 학생들의 대답은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요.’라는 대답을 듣기도 합니다. 이렇게 ‘돈, 돈, 돈’하는 세상이지만 예술가에게는 가혹합니다. 예술가가 ‘돈, 돈, 돈’하며 돈을 쫓아가면 ‘상업적이다’’초심을 잃고 변했다’라는 소리를 제일 먼저 듣습니다. 잔인하고 가혹하게도 사람들은 ‘반 고흐’처럼 평생 가난에 고통받으며 작업하다가 사후 유명해지는 예술가들을 전설처럼 찬양합니다.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내가 돈을 그리기 시작한 이유다.”
‘너무 지나치게 상업적’이고‘천박하게 예술을 격하시킨다’며 폄하를 하는 사람들이 이 작가가 살아있을 때에도 있었고 그리고 지금도 가끔 보입니다. 소개합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생전에 다양한 분야 예술 작품의 성공으로 부와 명성을 모두 거머쥔 미국 ‘팝아트의 제왕’ 앤디 워홀입니다.
현대 미술과 상업 광고 등 여러 분야에 아직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앤디 워홀’이 존경받아야 할 것 같은데 요즘 갑자기 불쾌한 일에 엮이고 있습니다. 지난 호 칼럼의 내용처럼 예술적 열정도 없이 유명세와 돈을 위해 아무도 모르게 다른 사람에게 대신 그림 그리기를 시킨 사람을 포장하기 위해 ‘앤디 워홀’을 언급합니다. 하루아침에 갑자기 ‘앤디 워홀’의 급이 예술가 흉내 내기 급급한 자의 급으로 전락하지는 않겠지만, 간간이 오해를 하는 분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즈니스 아트는 예술 다음에 오는 단계이다. 나는 상업 아티스트로 출발했지만 비즈니스 아티스트로 마감하고 싶다. 나는 아트 비즈니스맨 또는 비즈니스 아티스트이기를 원했다. 비즈니스에서 성공하는 것은 가장 환상적인 예술이다. 히피가 유행하던 시절, 사람들은 비즈니스의 개념을 격하했다 – 그들은 말하기를 <돈은 더러운 것이다>또는 <일하는 것은 추하다> 라고 했다. 그러나 돈 버는 일은 예술이고, 일하는 것도 예술이며, 잘되는 비즈니스는 최고의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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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가 만드는 영화가 상업적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예술이 상업의 물결 속으로 이미 들어가 있어, 현실 세계 속에 들어간 것으로 족했다. 우리의 영화가 예술 세계 안에 있는 대신 밖으로 나가 극장의 간판 위에 걸려 있는 것을 보는 것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은 무척 흥분되는 일이었다. 비즈니스 아트, 아트 비즈니스, 비즈니스 아트 비즈니스. 『앤디 워홀의 철학』중에서
성공 후, 항상 화려한 스타들에게 둘러싸인 앤디 워홀이라고는 상상이 안 되는 일반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가난한 예술가의 전설 같은 일화도 있습니다. 베트남에서 살면서 가끔 우리를 놀래키는 한국보다 월등히 큰 바퀴벌레를 상상하면서 읽으면 더욱 생생할 것입니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장시간 일한 것 외에 가장 많이 생각나는 것은 바퀴벌레다. 내가 묵었던 모든 아파트가 바퀴벌레 소굴이었다.『하퍼스 바자』의 편집장 카멜스노의 사무실에 내 포트폴리오를 들고 올라갔던 때 일어난 일은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포트폴리오 지퍼를 열자 안에서 바퀴벌레가 기어 나와 테이블 다리 밑으로 기어 내려갔다. 그때의 혐오감이라니. 그 여자 편집장은 내가 너무 안됐던지 일을 하나 주었다.
『앤디 워홀의 철학』중에서
무엇보다도 상업미술과 순수미술의 구분이 확고했던 시기에 그 둘의 경계를 넘나들며 무너뜨려버린 파격적인 그의 행보는 그를 현대미술의 아이콘으로 등극시킵니다. 그가 설립한 작업실 팩토리(FACTORY:공장)에서 찍어져 나오는 각종 대량생산의 이미지들. 작업실 이름을 어떻게 팩토리로 지을 생각을 했을까요? 정말 과감하고 파격적입니다.
미국의 작가인 그는 열렬히 미국을 좋아했습니다. 특히, 그에게 코카콜라는 참 미국적인 대상이였습니다. 지위가 높은 사람이 사던, 돈이 많은 사람이 사던, 그냥 평범한 사람이 사던 언제나 코카콜라는 한결같고, 누군가 아무리 돈을 더 많이 낸다고 해도 슈퍼에서 구입할 수 있는 보통의 코카콜라보다는 더 좋은 질의 코카콜라를 구할 수 없기에 그렇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의 활동 영역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참 방대합니다. 상업 디자이너로 시작하여 영화와 텔레비전 프로그램 제작을 하고, ‘인터뷰’라는 잡지를 발간하고, 자신의 철학이 담긴 책을 쓰고, 자신의 관심 분야들을 수집해서 600개 이상의 트렁크, 서랍과 박스로 타임캡슐을 만들어 남겨놓은 만큼 미술 작업뿐만이 아닌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했습니다. 그가 돈만 밝히고 어느 정도의 부에 만족하고 나태했다면 57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하기 전에 다양한 활동 경력을 남길 수 없었겠죠? 그리고 만약 그가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면 지금 우리는 그가 남긴 다양한 작품들을 볼 수 있었을까요?
‘예술과 돈’ 정말 어려운 상관관계인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돈에 구애 없이 맘껏,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는 삶을 바라며 칼럼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