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갤러리와 화실 운영이라는 즐거운 족쇄에 붙잡혀서 예전처럼 자주 훌쩍 멀리 못 떠나지만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두 달 넘게까지 스케치 여행을 다니던 때가 있었습니다. 일상에서 벗어나 스케치 여행지에서 지내는 동안 하는 일은, 아침에 그림 그리러 가거나 그림 그릴 장소를 탐색하고 저녁에 돌아와선 그림을 수정하거나 다음 날의 계획을 짜고 잠들 곤 했습니다. 먹고 그림 그리고, 자고 그림 그리는 아무 걱정 없는 생활을 반복하다 보면 천국이 따로 없어서 집에 돌아가야 될 시기가 다가오면 하루 하루가 지나는 걸 아쉬워하다가 억지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렇게 스케치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할 때마다 매번 떠나기 전 보고 감탄하며 ‘이렇게 그리고 싶다’ 하고 우러러봤던 그림들이 있었습니다.
소개합니다. 약 30년 동안 열두 차례의 해외 여행을 다니며 색다른 자연과 풍물을 생생하고 독특한 드로잉으로 남긴 화가. 오늘 칼럼의 주인공 천경자 화가입니다.
외국 작가들에 대한 글을 쓸 때에는 예를 들면 ‘벨라스케스가…’
‘다빈치는…’ 하고 써도 어색하지 않은데 유독 한국 화가들에 대한 글을 쓸 때에는 이름 뒤에 붙이는 호칭 선택에 고민이 많이 됩니다. 자칫하면 예의가 없게 보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외국어와 한국어의 차이겠지요. 외국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화백 대신 작가 혹은 화가로 통일해서 쓰겠습니다.
천경자 화가의 그림 속엔 꽃과 여인이 중심을 이루고 있어서 ‘꽃과 여인의 화가’ 라고 불리기도 하고, 그림 속 인물의 눈빛이 혼이 있는 것처럼 생생하여 ‘꽃과 영혼의 화가’ 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꽃과 여인의 화가’ 이니 아름다운 그림만 있을 것 같죠? 하지만 그녀를 세상에 알린 그림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6.25 전쟁 중 부산에서 발표된 이 그림, 35마리의 징그러운 뱀이 우글거리며 뒤엉켜있는 그림 ‘생태’ 였습니다.
“나는 무섭고 징그러워 뱀을 참 싫어한다. 그러나 가난, 동생의 죽음, 불안 등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친 듯이 뱀을 그렸다. 징그러워 몸서리치며 뱀 집 앞에서 스케치를 했고, 그러면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녀의 강한 의지 덕분일까요. 사진처럼 혹은 극사실주의처럼 또렷하게 묘사되어 있는 그림은 아니지만 마치 뱀이 꿈틀꿈틀 살아 있는 것 같고 곧 모두 몸을 비틀며 그림 밖으로 흩어질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지금 봐도 충격적인데 풍경화와 정물화가 주를 이루던 그 때에는 얼마나 더 충격이었을까요. 그리고 젊은 여성 화가가 뱀이라는 소재를 선택했다는 것도 그 당시에는 혁신적인 일이었답니다.
이렇게 자신만의 개성이 뚜렷하고 독창적인 천경자 화가에게 그녀 마음에 크게 상처를 내는 ‘위작 사건’ 이 발생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소장하고 있는 ‘미인도’가 진품이라고 주장하고, 천경자 화가는 그 작품을 그리지 않았다고 한 사건입니다. 천경자 화가는 “자기 자식을 몰라보는 부모가 어디 있느냐” 고 반박하지만 그 당시 화랑협회 감정위원회가 만장일치로 진품 감정을 내리고, 결국 모든 이가 ‘자기 그림도 못 알아보는 정신 나간 작가’ 로 취급하여 그녀는 절필 선언을 하고 미국으로 떠납니다.
천경자 화가는 정말 자식처럼 작품을 아꼈다고 합니다. 망설임 끝에 그림을 팔았다가도 다음 날 다시 그림을 돌려달라고 했던 일화나 그림을 팔고 나선 ‘자식을 팔아먹는 부모의 심정’ 이라며 밤새 한잠도 못 잤다는 일화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위작 시비’ 전인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하기 전에도 화랑보다 그녀 자신이 직접 소장했던 작품의 수가 훨씬 많았다고 합니다.
“나는 부자가 되기를 원해 본 적이 없다. 또 어떤 명예를 걸머지기를 원했던 것도 아니다. 다만 그림을 계속해서 그릴 수 있는 세계로 뚫고 가고 싶었던 것이 나의 참된 꿈이요, 운명이라는 걸 지금 알아차린 것 같다.”
그림에 있어서 그녀는 완벽주의자였습니다. 완벽하지 않으면 사인을 하지 않았기에 미완성작도 많고 완성된 작품의 수도 적습니다. 그러나 드로잉과 스케치는 1000여장이나 남겼습니다. 인기 작가가 되어서도 프로 작가가 되어서도 평생 완벽한 그림을 위한 공부와 노력을 멈추지 않은 것입니다. 만약 위작 시비가 붙은 그 그림이 아무리 별로이고 창피하더라도 진품이었다면 모두가 아니라 할 때 당당히 ‘내 그림이다. 내 자식이다.’ 하셨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말썽쟁이 자식일 지라도 자신의 아이이니까요. 한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데 몰라보고 싶어도 외면하고 싶어도 몰라볼 수 없으니까요.
이건 100% 제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꼭 써놓고 싶습니다. 같은 재료를 썼는지, 같은 소재가 그려 졌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위작을 만든다면 당연히 그렇게 따라서 만들지 않을까요. 제가 보았던 그녀의 다른 작품에서는 고요하면서도 강인한 그러면서도 은은한 여인의 분위기가 흐른다면 문제의 ‘미인도’ 는 색도 우중충하고, 다른 작품에는 흐르지 않는 우울한 분위기만 느껴집니다. 감상자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정말 백 번 양보해서 진품일지라도 창작자가 부정하는 작품, 작가라면 찢어서 휴지통에 곧 쳐 박힐 찢어진 원고지, 도예가라면 이미 산산 조각 내버린 도자기 조각 같은 것을 진품이라고 우겨서 얻어지는 것이 무엇일까요. 창작자를 존중하지 않으면서 또 그 창작자가 부정하는 그림을 그 창작자의 그림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이러니합니다.
이러나 저러나, 천경자 선생님!
지금쯤 바라시던 우주 마녀, 우주여행가가 되어 이 별, 저 별로 여행하고 계실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삶과 작품들을 존경합니다. 그리고 이제 편히 쉬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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