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한 학생들이 얼굴을 붉히며 화실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하소연합니다.
“선생님, 오늘 또 학교에서 미술은 공부 못하는 애들이나 하는 거라고 무시 받았어요.”
그 순간 제 머리 속에 ‘아직도?’ 만 맴돌았습니다.
성적이 비교적 잘 나오는 학생이 학교에서 진로 상담을 받았을 때 이런 말도 들었다고 합니다.
“이 정도 성적이면 미술하기는 아깝네”
도대체 어느 정도의 성적이 나와야 미술하기에 아깝지 않을 까요?
가끔 친구들에게 이런 부러움과 얄미움, 무시와 무식함이 섞인 말도 많이 듣는다고 합니다.
“나중에 별로 하고 싶은 것도 없는데 나도 그냥 미술이나 할까?”
“나도 요새 성적이 많이 떨어졌는데 그냥 미술해서 대학갈까?”
“미술 그거 뭐 어렵나, 그냥 똑같이 그리면 되는 거 아냐?”
예전이나 지금이나 아직도 미술 하는 학생들이 그런 취급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까웠습니다.
일찍부터 미술 전공을 결심하고 준비하고 있는 학생들도 때때로 힘이 드는데 다른 것에 도망치듯이 선택한다면 정말 생각대로 편하기만 할까요? 마음 먹은 대로 안 따라주는 손이 야속하고 그림도 술술 잘 안 풀려서 좌절도 하고, 나보다 뛰어날 것만 같은 친구의 재능을 보며 부러워도 하다가 질투도 하다가, 아직 어리기에 자신의 그림에 대한 여러 사람들, 그 중에서도 특히 부모님의 반응에도 크고 작은 상처를 받습니다.
그래서 오늘 칼럼은 작품을 출품 할 때마다 온 파리를 떠들썩하게 만든 화가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아마 학창 시절 미술 교과서에서 이 그림들을 본 적이 있을 겁니다. 그림이 발표될 당시에는 온갖 비난을 받았고, 그 후에는 미술사에 큰 획을 긋고 많은 영향을 준 작품들인 ‘풀밭 위의 점심’과 ‘올랭피아’ 를 그린 사람. 누군지 벌써 눈치챘을 것 같습니다. 소개합니다. 오늘의 주인공, 인상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에두아르 마네’ 입니다.
그럼 이제 마네 만의 독특한 느낌이 담겨있는 그의 작품들을 볼까요? 첫 번째 그림은 ‘발코니’ 입니다. 처음 이 그림을 보았을 때 ‘우와, 색이 참 아름답다’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러나 마네가 이 작품을 살롱에 출품했을 당시에 대부분의 비평가들은 그림 속 인물들의 모습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조잡한 초록색을 사용한 것 같다며 많은 비난을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마네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의 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마네 또한 이 작품을 자신의 화실에 죽을 때까지 걸어 놓았다고 전해집니다.
마네의 작품들을 보며 들었던 생각은 ‘그림이 참 시원시원하다’ 였습니다. 색도 표현도 시원하게 느껴졌습니다. 왜냐하면 마네는 이전의 전통적인 회화 기법을 파괴하고 중간 단계를 생략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네 이전의 그림처럼 색이 부드럽게 이어지기보다는 색채가 대비가 되며 만드는 선명하고 시원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마치 전개가 빠른 드라마를 보고 있는 것처럼 후련합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네는 ‘명암법’도 모른다고 그를 비웃고 조롱하곤 했습니다.
저에게 이렇게 시원하게 느껴졌던 그의 그림이 어떤 이에게는 답답하게 느껴졌다고도 합니다. 그 이유는 마네가 전통적인 원근법을 무시했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그림이 평면적으로 보여서 답답하게 느껴졌나 봅니다. 다음 그림을 한번 볼까요? 우리에게 많이 익숙한 그림이죠? 마네의 ‘피리 부는 소년’ 입니다. 그 당시 초상화들은 보통 인물 주변에 화려하게 많은 장식을 넣었지만 마네는 과감하게 모든 배경을 생략합니다. 그리고 그림 속 인물의 크기 또한 실물 크기로 가득 차게 그렸습니다. 지금 보면 ‘음, 이렇게 그릴 수도 있지’ 하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에는 너무나도 파격적인 시도였기에 살롱전에서 낙선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마네하면 떠올리게 되는 그의 수작이 되었지요.
이렇게 당시에 여러 번 획을 그으며 자신의 작품을 미술사에 남겨 놓은 마네이지만 사실 그가 화가가 되기까지가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법무성의 고관인 아버지와 스웨덴 대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마네에게 그림 공부는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부모님은 마네를 그의 뜻과 상관없이 법률가가 되기를 바랬다고 합니다.
만약 그 당시 부모님 뜻을 따라서 마네가 화가가 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어쩌면 ‘현대 미술’ 이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을 수도 있고, 어쩌면 아직까지도 보통 여인들의 누드화는 금지되고 전통적인 신화 속 여신들의 누드화만 그리고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은 마네 대신 다른 사람이 등장해서 서양 미술의 전통들을 마네처럼 혹은 마네보다 더 훌륭하게 바꿨을 수도 있었겠죠? 그 다른 사람이 먼 곳이 아닌 지금 우리 옆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무심히 던진 한 마디의 말이 마네처럼 위대한 인물이 탄생할 수도 있는 걸 막게 될 수도 있으니 자신의 꿈을 갈고 닦는 아이들을 비난하거나 무시하기보다는 많은 격려와 응원을 보내주길 바라며 오늘 칼럼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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