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과 삶의 척박함 속에서 태어난 그 아름다움과 관능의 몸짓
아르헨티나 탱고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아르헨티나 탱고 마에스트로이며, 이번에 베트남에서 문화예술의 하나로써 취미생활의 제일 마지막이라는 아르헨티나 탱고를 한인사회에 소개하고 아르헨티나 탱고의 이해를 통하여 아르헨티나 탱고를 통한 문화 예술생활 및 활동 기회와 동기를 제공하기 위하여 아르헨티나 탱고의 탄생부터 탱고의 정서와 문화, 탱고가 무엇이며, 어떻게 배우고 즐기는 것인가를 나누고자 합니다. 글_ El Tango James (Argentine Tango Maestro)
18 00년대 말경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부유하였고 남미의 유럽(파리)이라고 불리던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좀 더 나은 삶과 부를 꿈꾸는 많은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등의 가난한 유럽인들의 이민 정착지가 되었다.
이들 중 대다수는 이탈리아 남부지방 출신이었고 이들이 정착한 지역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보카지역과 우르과이 몬테비오일대 리오플라텐세(Rio de la Platenese)라는 항구지역이었다.
현실과 멀리 떨어져있는 꿈을 이루기 위하여 부두노동, 조선소, 도살장, 피혁공장 등에서 고단하고 척박한 일상의 삶을 영위하고 있었으며 지친 일상 속에서 하루의 일이 끝나면 거칠고 힘든 노동이라는 고단한 단어를 뒤로 하고, 떠나 온 고향과 두고 온 가족들을 그리워하면서 그 들의 삶의 현장의 또 다른 얼굴인 밤 항구 빈민가의 술집, 카페, 음식점을 방황한다.
그 현장에는 부두, 공장, 도살장의 노동자뿐 아니라 먼 곳을 배를 타고 들락거리는 뱃사람과 범죄자 그리고 가축의 키우고 판매하는 가우쵸나 꼼빠드레또(Compadreto)라 불리는 이민 2세 목동들이 드나든다. 그 곳에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 이룰 수 없 는 사랑,여인의 배신, 친구의 배신, 밤거리 여인과 그들의 울부짖음, 싸움, 슬픔, 고독, 정열, 낭만, 상실 등 사람이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삶의 희노애락이 담긴 끈적이는 단어들이 몸속을 흐르는 붉은 피와 같이 끈끈하고 외면하지 못하는 삶의 배경속에서 라틴아메리카 본토 음악과 춤이 이민과 함께 대서양을 건너온 유럽의 춤과 음악 그리고 흑인의 춤과 음악이 혼합되어 탱고는 잉태되었다.
당시 드넓은 영토에서 이루어지는 아르헨티나의 목축업은 매우 발달되어 있었고 주요 산업이다. 그 중심에는 커다란 초원에 크고 작은 목장들이 있었고 초원의 실제 주역이라 불릴만한 가우초(Gaucho)와 이민 2세대로서 꼼빠드리또(compadrito)라 불리는 토착원주민과 흑인노예 그리고 스페인의 혼혈인들은 전 세계 대부분의 이민자와 그 2세대들이 그렇듯이 그들도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났으나 뿌리는 멀리 바다 건너편에 있었기에 정신적으로는 어느 곳에도 융화되지 못하고 이방인으로 살아가며, 드넓고 거치른 초원을 누비며 생활하고 가축을 사육하고 다 자란 가축
꼼빠드리또들은 노동으로 단련된 강한 몸과 가우쵸(목동)의 특유의 복장으로 남성미가 넘치는 이들이 가축을 판매하러 도시를 드나들면서 탱고 초기의 음악인 밀롱가를 도시의 빈민가로 가져 온다. 이들의 행동, 복장, 언어는 당시 놀이와 문화가 충분하지 못한 빈민가 청년들에게는 유행과 놀이와 문화가 되면서 꼼빠드리또의 외모적 특징인 챙이 큰 모자와 스카프를 착용하고 나이프(칼)의 소지를 따라하며 그들이 즐기는 밀롱가 음악과 춤을 흉내내기 시작했다. 다른 한 편으로는 꼼빠드리또들도 가축판매을 위하여 도시로 드나들며서 흑인 구역에 가서 니그로 음악과 춤을 즐기고 흉내 내었다.
이렇게 초기 탱고 음악인 밀롱가(Milonga)는 깐돔베(Candombe)라는 흑인 음악과 섞이고, 탱고가 탄생하게 된다.(주. 탱고는 춤이기도 하지만, 음악이기도 하다.)
사람 사는 곳의 보편적인 현상이지만 당시 아르헨티나에도 보통 하층민의 문화를 멸시했던 중산층과 상류층은 탱고를 멀리했었지만 그런 탱고가 널리 퍼지게 된 계기는 탱고가 유럽, 특히 파리에서 굉장한 인기를 끌면서 유럽의 상류층들이 탱고를 즐기게 되고 후일 유럽 탱고가 만들어 지면서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는 상류층이 탱고를 자신의 문화로 받아들였다. 중산층들에서 탱고는 주로 가족들 사이에서 추어졌었다.
이렇게 거칠고 지친 삶과 함께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라는 도시의 밑바닥에서 탄생한 탱고는 시간이 흐르면서 춤과 음악에 근본적으로 담긴 삶의 희노애락이 담긴 정서와 끈적거림이 열정, 사랑, 유혹의 몸짓과 소리로 표현되지만 이러한 겉모습보다는 음악과 춤이 우아하고 감성적인 탱고의 보존할 가치가 유엔 유네스코에 인정되어 2009년 9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음악과 노래, 춤, 시 등의 장르를 통해 미국과 유럽, 멀리는 아시아 일본, 홍콩, 대만, 한국 등에서도 인기를 누리면서 강습 및 동호회 활동이 늘어 나고 있으며, 최근에는 동남아 개발도상국에서도 탱고를 추는 밀롱가(탱고까페 또는 탱고바)와 강습회가 왠만한 도시에는 거의 다 있게 되었다.
한국에서 아르헨티나탱고 첫공연은 1999년 있었고, 그것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공연인 ‘포에버 탱고(Forever Tango)’다.
탱고를 두고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다.
한 가슴 네다리, 3분간의 사랑이라는 말등 여러가지 탱고를 가리키는 말들이 있다. “포에버 탱고” 공연을 보았다면 이런 말들이 쉽게 공감이 갈 것이다.
그 공연중 까를로스 가비또라는 머리 희끗한 50대 노신사와 그 파트너가 추었던 탱고는 인생의 희노애락을 모두 음악에 담아서 탱고 예술로 표현했던 것으로 탱고가 무엇인지를 노신사의 몸으로 절절하게 보여주었었다.
두 사람, 남성(리더)와 여성(팔로워)가 아름다운 탱고의 선율에 맞추어 탱고를 추는 순간 만큼은 서로의 심장을 연결하여 한 몸이 되고, 탱고음악과 상대 그리고 자신에 몰입하여 명상을 하듯이 때로는 역동적으로 때로는 관능적으로 각자 인생 역정의 희로애락을 담아서 탱고를 추기 때문에 한 가슴 네 다리라는 것을 느끼며 그런 표현들을 한다. 아르헨티나 탱고를 두고 3분간의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탱고음악은 한 곡이 보통 3분 이내이다. 그렇게 한 곡 3분간을 추는 동안에 탱고를 모르는 사람은 상상을 할 수 없는 엄청난 세계가 탱고를 하는 사람에게는 열리기 때문이다. 이것이 탱고가 주는 여러가지 매력중 한 가지이기도 하다.
지금의 한국탱고는 서울, 부산, 대구뿐 아니라 대전, 광주, 순천, 청주 등의 거의 전국의 중소도시에도 밀롱가(탱고까페. 탱고바)가 있어서 탱고를 즐기는 인구가 제법 된다.
탱고는 둘이 추는 춤이지만 혼자 추는 춤이라고 한다. 척박함 속에 지구의 한 도시 빈민가에서 태어난 탱고가, 유럽, 미주를 거쳐 이제는 아시아의 도시들에서 유행을 한다. 세상은 살기 편해지고 풍부해졌지만 우리들의 마음은 반비례로 더 공허해졌고 외로워진 삶을 살고 있다. 지금은 1세기전에 척박한 이민자의 생활보다 더 각박하고 외롭기 때문에 스스로 또는 남으로부터 위안을 받기 위하여 방황하는데 탱고가 그 외로움과 각박함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적당한 음악과 춤이기 때문에 이제는 탱고를 알고 배우고 즐기려는 사람들이 전세계적으로 많아 졌다.
이러한 탱고의 탄생 이유가 지구 남미의 한 편의 한 항구에서 태어난 탱고가 전 세계에 유행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그 이유는 당신도 탱고를 찾게 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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