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관념 깨기
제가 속해 있는 베트남 호찌민 미술 협회에서 하는 여러 활동 중에 특별한 활동이 하나 있습니다. 협회의 지원을 받아서 미술 협회의 화가들이 협회가 선정한 여러 장소들 중 하나를 선택해서 창작 여행을 가는 것입니다. 거기서 회원들은 친목을 다지면서 그 곳의 풍경을 그리거나 자신의 새로운 작품을 창작합니다. 그리고 후에 그 작품들로 혹은 그 때의 스케치로 작업한 작품들을 모아서 ‘Sáng tác mới’ 라는 제목으로 전시를 하곤 합니다.
올해는 8월에 그 전시가 호찌민 미술관에서 열렸습니다. 우선 전년도보다 더 많아진 작품 수와 크기가 커진 작품들, 그리고 제 또래부터 백발의 화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한 자리에 모여 있어서 놀랐습니다. 그 중 더욱 더 저를 놀라게 한 눈에 띄는 한 작품이 있었습니다.
캔버스 두 개를 붙여서 작업한 대작(약 2m)의 크기도 크기이거니와 색감부터 완성도까지 ‘괜찮네’ 라는 생각을 들게 한 이 작품이 특히 (물론 좋은 작품들도 많았지만) ‘나 너무 잘 그리지 않어?’ 하고 학생처럼 기교만 뽐낸 작품들 사이에서 유난히 돋보였습니다.
작가가 궁금해서 누군가 하고 작품 건너편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자신의 작품과 함께 사진을 찍으러 꽃다발을 들고 활짝 웃으며 작품 옆에 선 낯익은 얼굴의 그녀는 … 바로 호찌민 미술 협회의 회계사였습니다. 미술 협회 안에서 일하면서 작가들과 만나고 그들의 작품을 보며 지내다가 항상 비슷하고 지루한 사무실 업무에서 벗어나고 싶었다고 합니다. 머리 속 생각만으로 그치지 않고 스스로 실천에 옮긴 그녀를 보며 박수가 절로 나왔습니다.
오늘 칼럼의 주인공도 처음부터 화가의 길을 걷지 않았습니다. 단순한 통행료 징수 업무를 했던 세관원이었던 오늘의 주인공, 그래서 평생 그의 별명도 ‘두아니에(세관원이라는 뜻)’ 였다고 합니다. 소개합니다. 하급 세관원에서 일요일에만 작업하는 일요 화가를 거쳐 그리고 미술사에 이름을 올린 자칭 ‘리얼리스트’ 였지만 원시적이고 신비로운 꿈 속의 어딘가를 그렸던 화가 ‘앙리 루소’ 입니다. 22년 만에 화가의 꿈을 이룬 루소의 무명 시절 그림을 고물상에서 구입해서 가지고 있었던 피카소는 ‘그의 그림은 단순하고 천진성이 돋보이는 작품’ 이라고 말했습니다.
루소의 작품들은 현실과 꿈의 환상이 한 그림 속에 담겨있어 초기에 당대 미술계의 냉대를 받았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보면 ‘꿈 속 같은 그림이네, 그림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 라는 생각이 들지만 아카데미적인 화풍과 인상주의적인 화풍이 충돌했던 그 시대엔 두 군데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루소의 독특한 분위기의 그림은 더욱 더 받아들여지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그림들은 후에 등장한 초현실주의에 많은 영감과 영향을 주게 됩니다.
그럼 이제 그의 그림들을 볼까요?
이 작품은 ‘꿈’ 입니다. 이 그림은 루소가 사망하기 몇 달 전에 그린 그림으로, 그의 마지막 작품이면서 최고 걸작으로 평가를 받고 있는 그림입니다. 누드의 여인이 소파에 누워있고 주변은 밀림으로 둘러 쌓여져 있습니다. 파리의 소파 위에 누워서 루소의 꿈 속 공간을 보고 있는 ‘야드비가’ 라는 여인은 누군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루소의 젊은 날의 연인, 일찍 사별한 그의 아내 클레망스, 그의 죽은 딸 줄리아 등 여러 해석이 있습니다. 누구인지는 아마 루소만이 알겠지요.
두 번째 그림은 ‘잠자는 집시 여인’ 입니다. 밤을 좋아하고 밤을 즐겨 그리는 저에겐 너무나도 마음에 쏙 드는 그림입니다. 고요한 한 밤 중 꿈 속 같은 풍경 속에서 꿈을 꾸고 있는 집시 여인과 그 옆에 사자 한 마리가 있습니다. 보통 사자가 등장하면 무서워 보일 것 같은데 이 그림 속의 사자는 마치 집시 여인이 깰까봐 조심조심 살금살금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지나가다 잠시 멈추어 서서 강아지처럼 냄새를 킁킁 맡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구요. 그림에 맴도는 고요하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가 어떻게 보면 꿈 속 같고 어떻게 보면 현실처럼 느껴져 보는 이의 눈길을 한번 더 사로잡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이 그림 본 어느 비평가는 일부러 이상한 그림을 그려서 주목 받으려 한다고 심하게 욕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작 루소 자신은 이 그림을 상당히 자신 있게 여겼다고 합니다.
25년간 하급 세관원으로 일하다가 49세에 전업 화가로의 전향을 위해 사표를 냈던 루소를 많은 사람들이 무시하고 조롱했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루소의 그림이 그냥 아마추어 화가의 그림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그런 반응에도 아랑곳없이 루소는 진지하게 자신이 위대한 화가라고 믿었다고 합니다. 스스로 피카소와 자신만이 당대 최고의 화가라고 말하며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의 줄임말)을 마구 어필했다 합니다. 결국은 미술사에 낯설면서도 생생한 독특한 그림으로 당당히 이름을 남기고 후대에 많은 작가들도 그에게 많은 영감을 받습니다.
근자감을 자부심으로! 누군가가 나를 비웃으며 조롱한다 해도 나 자신 이외의 다른 사람은 누구도 나를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고 그 반응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기 보단 자신을 믿고 꿈을 향해 나아간다면 어느새 스스로 만족하는 즐거운 삶은 물론, 꿈도 함께 덤으로 이뤄지지 않을까 하고 행복한 생각을 하며 오늘 칼럼을 마무리합니다.
<전시 소개>
베트남 여성의 날(10월 20일)을 기념하여 호치민에서 활동하는 여성 작가들 11명이 몇 달 전부터 직접 기획하고 준비한 전시가 10월에 호치민시 미술관에서 열립니다. 11명의 작가들의 신작을 포함하여 각각 10점씩 출품하여 총 100점 이상이 전시됩니다. 다양한 연령과 활동 경력을 가진 여성 작가들의 그룹전이라 아직 오픈 전인데도 불구하고 각종 매체는 물론, 호치민시 미술관과 호치민 미술 협회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베트남 작가들의 초대로 저도 혼자 한국 작가이자 막내 작가로 참여합니다. 이 전시를 준비하느라 자는 둥 마는 둥 바쁘게 작업하며 보냈으니 많이 보러 와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전시 ‘Hoa Rừng (야생의 핀 꽃)’
장소 : 호치민시 미술관 97 Phó Đức Chính, Q.1, Hồ Chí Minh
개막식 : 2015년 10월 10일 오전 10시
전시 기간 : 2015년 10월 10일 ~ 2015년 10월 18일 (월요일 휴무)
<화가 소개>
앙리 루소 [Henri Rousseau] 1844.5.21 ~ 1910.9.2
프랑스의 화가. 그의 작품은 사실과 환상을 교차시킨 독특한 것으로 이국적인 정서를 주제로 다룬 창의에 넘치는 풍경화*인물화를 그렸다. 순진무구한 정신에 의해서 포착한 소박한 영상이 참신한 조형질서에 따라 감동적으로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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