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완벽한 중간 지점이란 것이 있을까? 중용(中庸)을 말하고 과유불급(過猶不及, 논어-정도를 지나치면 없는 것만 못하다)을 외쳐도 인간들은 늘 극단으로 치닫기 쉽다. 우리가 중간이란 회색지대에 머물 능력이 있었더라면 지난 세기 두 차례 세계대전 같은 참상은 목격하지 않았을 것이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서로가 완벽하다고 믿었던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도 모두 시차를 두고 실패한 제도임을 우리 또한 목격했다. 빛과 어둠, 천국과 지옥, 귀족과 노예, 자유와 억압, 진보와 보수, 신앙인과 무신론자, 천재와 바보 그리고 여자와 남자 – 셀 수 없는 상호 모순(矛盾, 창과 방패)들로 가득 차 있지만 거대한 이 세상은 그렇게 흘러왔고 또한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엉뚱한 행동을 나무라지만 아이들은 어른들의 세상을 이해하기 힘들다. 아이들의 눈에는 어른 모두가 바보다. 역사 수업은 전쟁얘기로 가득 차 있고 선생님은 특정 부류의 아이들만 선호하고 조종 실수로 하늘에서 비행기가 추락하고 법원에는 이혼 신청하는 어른들로 가득한 절대 이해 불가한 세상인 것이다. 세상의 아이들은 술과 담배, 성(性)을 과감히 섭렵하면서 어른들에게 반항을 시작한다.
마치 나쁜 습관이 우리 몸에 쉽게 베이지만 결코 쉽게 떨쳐 낼 수 없듯이.
홀든은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어 했다. “넓은 호밀밭에 어린애들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이 작품은 16살 소년 홀든 콜필드의 정신적 방황과 갈등을 다룬 성장소설이다. 뉴욕의 유복한 집안 출신인 홀든은 5과목 가운데 영어를 제외한 4과목을 낙제하고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결국 학교에서 쫓겨난다. 퇴학을 당한 홀든은 크리스마스와 방학을 앞둔 토요일 밤 펜실베니아 학교 기숙사를 떠나 뉴욕으로 돌아간다.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에서 2박3일간의 괴롭고 쓸쓸했던 어른들과의 세상경험을 독백으로 전해준다. 소년에게 세계는 거짓과 위선, 불의와 폭력, 모순이 가득한 곳이었다. 엄격하고 무관심한 아버지와 날카로운 성격의 어머니, 옷차림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교장, 유일하게 의지했던 학교선생에게 겪는 동성애적인 접근 등은 그를 세상 밖으로 밀어내고 냉소적인 반항아로 만든다. 그리고 세상은 다른 존재의 상처에 대해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센트럴 파크 남쪽에 있는 연못이 겨울에 얼어붙으면 그곳에 살던 오리들은 어디로 가게 될지 누구 하나 관심 갖지 않는 세상이다.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를 단박에 세계적인 작가로 만들어준 이 작품은 거침없는 언어(실제 원서에는 ‘젠장’이란 말이 수도 없이 나온다)와 사회성 짙은 소재로 인해 발간되자마자 미국의 많은 학교에서 금지 도서로 지정되었지만 되려 숱한 젊은이들을 열광케 했다. 1980년 비틀즈 멤버 존 레논의 암살범 마크 채프만이 암살 직후 이 책을 손에 쥐고서 “모든 사람들은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어야 한다”고 밝혀 전 세계에 충격을 줬던 작품이기도 하다. 숱한 영화감독들이 이 소설을 영화화 하려고 샐린저에게 요청했으나 끝내 거절당했는데 그 이유가 “소설 속 홀든이 영화를 싫어하기 때문이다”라고 알려져 세간에 화제가 된 적도 있다. 그 후 세계적인 명배우 제임스 딘을 스타 덤에 올린 <이유 없는 반항>(1955년)이 바로 이 소설을 토대로 했으며 사이먼&가펑클, 빌리 조엘 등 많은 뮤지션들이 ‘콜필드’신드롬에 빠졌으며, 우디 앨런의 영화에서도 주인공 홀든의 이미지가 여러 번 반복되거나 패러디 되었다. 이 후 작가는 자택에서 오랜 은둔 생활을 했으며, 1965년부터는 아무것도 집필하지 않았으며, 1980년부터는 아예 인터뷰를 일절 거부해왔다. 일전에 소개한 헤르만 헤세<수레바퀴 아래서>또한 청소년들이 겪는 정신적 모험을 다루고 있는데 한스라는 독일청년은 체제 순응적인 반면 홀든은 반항아라는 차이점이 있다. 이 둘을 비교해 읽으면서 자라나는 우리 청소년들, 그들만의 숲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길 필자는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