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그들의 그림을 보는 것은 참 재미있습니다. 그림은 신기하게도 거짓말을 하지 않아서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성격인지를 얼추 알 수 있습니다. 처음 그림을 배우러 와서 틀릴까 봐 혹은 망칠까 봐 조마조마해서 그린 그림 속에서는 불안감이 보이거나(연필이 익숙하지 않아서 떨리는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분위기에 위축되어 조그맣게 그리는 학생도 있고, 처음이지만 오히려 ‘난 처음인데 잘 못 그리면 어때, 틀리면 뭐 어때’ 라는 바람직한 생각과 함께 위축되지 않고 자신만만하게 그림을 그리는 학생도 있습니다. 석고 도형이나 정물 등 그려야 할 대상을 똑같이 제시하고, 같은 재료로 그릴 때에도 그리는 사람에 따라서 모두 다른 그림이 나오기도 합니다. 자신의 실력을 너무 자신한 나머지 위험한 자만감이 가득 차서 얼핏 보면 괜찮아 보이지만 왠지 모르게 거부감을 주는 학생의 그림도 있고, 형태나 명암 등 기술적인 부분이 아직 엉성한데도 불구하고 그림 속에서 느껴지는 진심과 감정이 앞의 엉성함을 모두 가려버릴 만큼 눈길을 확 잡아 끄는 학생의 그림도 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의 그림을 보았을 때 들었던 생각은 ‘그림에서 착함이 느껴진다. 그림의 내용도 착하고 따뜻하고 경건하고 진지하고 왠지 이 그림들을 그린 작가도 이런 사람일 것 같다’ 였습니다.
화려한 색과 기술로 무장되어 시선을 확 잡아 끄는 그림들은 아니지만 그림 속에 조용하면서도 우아한 분위기가 깃들여져 있습니다. 맵고 짠 자극적인 음식들만 먹다가 아주 담백한 음식을 먹은 것 같은 느낌입니다.
소개합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특히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너무나도 대중적인 인기로 유명해서 어느 곳에 가거나 늘 만날 수 있는 복제화로 유명한 ‘이삭 줍는 여인들’과 ‘만종’을 그린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 입니다.
지금은 보통의 인간과 평범한 일상들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거나 그런 그림들을 감상하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밀레’의 시대인 19세기에는 너무도 파격적인 일이었답니다. 르네상스 이후에 400년 이상 한결같이 영웅이나 성서 속의 인물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던 전통을 깬 이가 바로 ‘밀레’ 이기 때문입니다. 밀레의 작품을 보며 얼굴을 울그락불그락 붉히고 있는 그 시대 보수적인 기성 미술계 사람들이 상상이 됩니다. 미술사 속 새로움을 여는 도발적이면서도 신선한 작품들의 등장은 항상 흥미진진합니다.
이제 밀레의 그림들을 볼까요? 이 작품은 ‘씨 뿌리는 사람’ 입니다. 어딘가 낯이 익은 느낌이죠? 고흐가 이 작품을 여러 차례 따라 그렸다고 합니다. 이 작품 외에도 10년 동안 300여점 정도 모방했다고 하니 밀레를 향한 고흐의 존경심은 상상 그 이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림 속의 인물을 실제보다 마치 신처럼 더 근사하게, 이상적으로 표현하기보단 자연스럽고 평범하게 인간의 모습 그대로 표현한 것이 보이시나요? 밀레 덕분에 그 이후의 그림들이 좁고 갇힌 전통적인 주제에서 벗어나 다양한 주제들로 변화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다음 작품은 ‘양 치는 소녀와 양떼’ 입니다. 앞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인물을 주제로 그린 그림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본 밀레의 그림들 중에 가장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그림 속에는 제가 좋아하는 소녀와 양들이 등장하고 우아하면서도 아름다운 색감과 고요하면서 평온한 분위기가 마음에 쏙 들어서 이 그림을 보는 순간 제 입에서 저도 모르게 ‘와아~’ 하고 탄성이 나왔습니다. 이 작품은 밀레에게 1864년 살롱전에서 좋은 반응은 물론 정부의 상까지 안겨주며 많은 이의 인정을 받은 작품입니다.
오랜 시간을 들여서 작업을 하면 좋은 작품이 나올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그리기만 한 작품보다는 비록 작품 위에 표현하는 시간은 짧더라도 그 속에 작가의 생각과 고민이 듬뿍 담긴 작품을 보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화려한 색이나 기교의 힘으로 시선을 끌지 않고 마치 밀레의 작품처럼 담백하면서도 작가의 마음이 느껴져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들을 많이 만나게 되길, 또 그런 작품들을 그릴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하면서 오늘 칼럼을 마칩니다.
<화가 소개>
장 프랑수아 밀레 Jean François Millet
1814.10.4 ~ 1875.1.20
프랑스의 화가. 진지한 태도로 농민생활에서 취재한 일련의 작품을 제작하여 독특한 시적(詩的) 정감과 우수에 찬 분위기가 감도는 작풍을 확립, 바르비종파의 대표적 화가가 되었다. 그러나 다른 화가들과 달리 풍경보다 농민생활을 더 많이 그렸다. 주요 작품으로 《씨뿌리는 사람》, 《이삭줍기》, 《만종》등이 있다.
<참고 작품>
1. 건초더미 : 가을 1874
2. 이삭 줍는 여인들 1857
3. 만종 1857 – 1859
4. 양치는 소녀와 양떼 1863
5. 씨 뿌리는 사람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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